러시아, 서방 기술차단에 중국과 가스 생산·수출 추진
[뉴스핌=주명호 기자] 우크라이나 위기 고조로 서방과 러시아 간 제재 공방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천연가스 등 에너지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연합(EU)에 대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압박을 가하는 반면, 미국 등 서방세계는 기술차단으로 러시아의 가스 생산 및 개발에 위협을 가하겠다는 속셈이다.
천연가스 공급을 둘러싼 에너지전쟁이 본격화될 경우 우선 유리한 쪽은 러시아다. 서방으로선 막대한 러시아산 에너지를 당장 대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재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러시아가 받을 타격도 무시하지 못할 전망이다. 러시아 세수의 절반이 가스 매출에서 나오는 만큼 생산 감소는 곧 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러시아, 중국을 새 수출로로…유럽에 공급 중단 압박
러시아-중국간 가스관 건설공사 기공식에 참석한 장가오리 중국 상무부총리(좌)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 [사진 : XINHUA/뉴시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일 동부 시베리아에 위치한 야쿠츠크시(市)를 방문했다.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the Power of Siberia)' 건설 기공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중국 측에서는 장가오리(長高麗) 상무부총리가 참석해 양국 간 협력 관계를 공고히 했다.
푸틴이 직접 이 행사에 참여한 것은 그만큼 러시아가 중국으로의 가스 수출 사업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시에 유럽에는 새로운 수출지역 확보로 언제든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무언의 위협을 가한 셈이다.
수출뿐만 아니라 개발 및 생산 또한 중국의 힘을 빌어 서방기업들의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지다. 푸틴은 이날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로즈네프트가 중국기업에 러시아 유전 지분 매각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매각 대상으로 알려진 방코르 유전은 작년 한해 2140만t의 석유를 생산한 로즈네프트의 보석 같은 지역이다. 지분 인수가 가장 유력한 중국 측 기업으로는 최대 석유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가 꼽힌다. 중국석유화공집단(Sinopec)도 물망에 올라 있다.
러시아 기업들은 유럽으로부터 에너지 생산 장비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중국과 아시아로부터 보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고르 세친 로즈네프트 회장은 지난주 독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시추 장비 및 송유 시설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한국이나 중국에서 사오면 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 서방, 기술 제재로 맞대응…장기화시 러시아 타격도 무시 못해
서방 측은 석유 등 에너지 시추장비 및 기술 공유을 차단시켜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러시아가 주목하고 있는 북극지역 에너지 개발이 큰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내 에너지 탐사 및 생산은 서방기업들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들과의 협력이 끊길 경우 개발사업은 즉각 비상등이 켜지게 된다. 로즈네프트만 하더라도 미국 엑슨모빌과 이탈리아 에니(ENI), 노르웨이 스타토일과 합작사업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 2위 천연가스 기업 노바텍은 프랑스 토탈과 제휴를 맺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제재가 초반에는 러시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겠지만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무시 못할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컨설턴트는 "2020년까지 제재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러시아 에너지 생산은 현재보다 20% 가량 급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서방기업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포브스는 기술 규제 등으로 제재가 확대될 경우 엑슨모빌 등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엑슨모빌과 로즈네프트가 벌이고 있는 합작사업 규모는 32억달러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제르바이잔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던 매튜 브리자 국방연구국제센터(ICDS) 이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러시아에게 유럽은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판매시장이라며 푸틴이 가스 공급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주명호 기자 (joom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