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변상문이 6·25전쟁 희생자를 기리며 ‘화랑담배’를 집필했다
- 제11연대가 26일 북한군 전차 돌파 뒤 문산 방어선을 되찾았다
- 북한군 증강 공격과 우측방 위협에 국군이 재공격을 준비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문산 돌출부
1950년 6월 25일 밤, 국군 제1사단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과 맞서고 있었다.
제11연대는 임진강 철교와 문산리 일대를 지켰고, 제13연대는 파평산–적성 일대에 방어선을 세웠다. 서울에서 출발한 증원부대가 전선으로 향하는 동안, 휴가·외출·외박 중이던 장병들도 부대를 찾아 돌아왔다. 제11연대의 병력은 배속 병력을 포함해 약 2,00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방어선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국군 제7사단이 덕정–축석령 선까지 철수하면서 제1사단의 우측방이 노출되었다. 북한군 제1사단이 구화리–가여울–적성 접근로를 돌파하면 파평산의 제13연대뿐 아니라 문산리의 제1사단 주력도 측방에서 위협받을 수 있었다.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있었다. 그들이 건너올 수 있는 임진강 철교는 전날 폭파에 실패한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산리 일대의 국군 방어지역은 적의 접근 방향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정면이 뚫리고 측방마저 밀리면 그 안의 병력은 퇴로를 잃는다.

문산 돌출부였다.
6월 26일 이른 새벽, 임진강 철교 부근 강변 둑을 지키던 제11연대 제2중대 장병들이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금속 궤도가 철교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북한군 전차가 나타났다. 한 대씩 다리로 진입한 전차는 모두 다섯 대였다. 전날 공병대가 끊으려 했던 철교 위를 T-34 전차들이 건너고 있었다.
전차들이 강 남쪽 1번 도로로 내려오자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57mm 대전차포가 사격했다. 포탄이 전차에 명중했지만,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포탄이 발사되었으나 전차는 계속 접근했다.
곧 북한군 전차포가 대전차포 진지 쪽으로 향했다. 국군 포병들이 맞서 사격하는 사이 전차는 철교 부근의 방어진지로 다가왔다.
철교와 그 후방 약 3.5km 지점인 별립산 일대에는 제11연대 제1대대가 종심 깊게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제1대대는 전차와 뒤따르는 북한군 보병을 향해 측방사격을 가했다.
기관총과 소총이 도로를 향해 사격했다. 박격포탄도 북한군 접근로에 떨어졌다. 전차의 장갑은 뚫지 못했지만, 장병들은 전차 뒤로 들어오는 보병을 막으려 했다.
북한군 보병이 진지 가까이 이르자 싸움은 참호 주변으로 번졌다. 수류탄이 터졌고, 국군 장병들은 백병전까지 벌였다.
그러나 T-34 전차는 1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움직였다. 전차포탄이 국군 진지에 떨어지고 기관총탄이 참호를 향했다. 뒤따르는 보병도 방어선의 틈으로 들어왔다.
제1대대는 더 이상 현재 진지를 지킬 수 없었다. 장병들은 부상병과 옮길 수 있는 화기를 수습해 문산리 남쪽 구릉지대로 철수했다.
북한군 선두가 문산리 북쪽까지 내려왔다.
문산리에는 제1사단의 지휘시설과 보급로가 있었다. 이곳까지 빼앗기면 임진강에서 싸우는 부대들의 뒤가 위태로워진다. 북한군의 포격이 문산리 일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11연대의 방어선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문산 돌출부의 우측방을 맡은 제2대대는 여전히 주저항선을 지키고 있었다.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은 북한군이 돌파한 자리를 굳히기 전에 역습하기로 했다. 철수한 제1대대 병력을 수습하고 제3대대와 육군보병학교 교도대를 공격에 투입할 준비를 했다.
공격 개시 시각은 6월 26일 14:40이었다.
목표는 빼앗긴 주저항선을 회복하고 임진강 철교까지 다시 진출하는 것이었다.
제1대대장 고한조 대위는 대대의 상태를 살폈다. 새벽 전투로 일부 병력이 흩어졌고 탄약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병력으로 공격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그래도 역습은 시작되어야 했다. 동요하는 장병들을 수습하고 전방으로 나섰다. 제1대대와 제3대대, 육군보병학교 교도대가 북한군이 점령한 진지를 향해 움직였다.
장병들은 구릉과 논두렁을 이용해 전진했다. 북한군 기관총이 사격하면 몸을 낮춰 맞서 쏘고, 사격이 약해지는 틈에 다시 앞으로 나갔다. 박격포탄과 수류탄이 진지 사이에 떨어졌다.
조금씩 북한군의 전열이 밀렸다.
역습을 시작한 지 약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제3대대가 64고지 부근까지 진출했다. 그곳에서 북한군의 저항이 강해졌다. 증원된 병력이 정면과 측방에서 사격하자 제3대대와 그 우측 제1대대의 전진이 둔화되었다.
제2중대장은 정면의 저항을 그대로 받아내며 나아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중대를 측방으로 움직여 북한군 진지를 공격했다.

북한군의 사격이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그 틈에 제1대대와 제3대대가 다시 전진했다. 장병들은 64고지를 지나 임진강 철교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벽에 잃었던 진지를 하나씩 되찾았다.
마침내 국군이 철교 남단에 다시 섰다.
제11연대의 주저항선이 회복되었다. 장병들은 무너진 참호를 정비하고 기관총과 박격포를 재배치했다. 진지에는 전
사한 전우와 파괴된 장비가 남아 있었다.
국군은 북한군 포로 여섯 명을 생포했다. 신문 과정에서 그날 저녁 전차로 증강된 북한군 1개 연대가 공격할 예정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제11연대는 철교 정면을 되찾았지만, 다음 공격에 대비해야 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임진강 북쪽에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사이 문산 돌출부의 우측방에서도 상황이 나빠졌다.
북한군이 전차를 앞세워 제13연대 방어지역을 압박했다. 제13연대가 320번 도로 방면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제11연대의 측방이 위협받았다. 최경록 대령은 제2대대를 화석동 무명고지로 재배치했다.
제11연대 장병들은 하루 사이에 철교 앞 진지를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나 되찾은 진지를 지키려면 정면의 북한군뿐 아니라 우측방으로 내려오는 병력에도 대비해야 했다.
해가 기울었다.
장병들은 남은 탄약을 나누고 무너진 참호를 고쳤다. 교도대원들도 경계 위치에 들어갔다. 앞에는 임진강 철교가, 우측에는 파평산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이 있었다. 뒤에는 문산리와 서울로 향하는 1번 도로가 놓여 있었다.
북쪽에서 전차 엔진음이 들렸다.
제11연대가 철교를 지키는 동안, 파평산 동쪽 357고지 방면에서도 북한군이 움직이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