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보은 회인국가유산야행이 3만명 넘게 모였다
- 저소득층 노인 복지와 전입 증가도 확인됐다
- 축제는 사람을 모으는 데서 관계를 만들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전혜연 문화 기획자(문화유목민 대표)
축제는 본래 사람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다. 거대한 자본과 기획력은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행사는 성공적인 지표를 남긴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는 조금 더 본질적이고 아픈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누구를 더 많이 모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사람을 모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충북 보은의 '회인 국가유산 야행'을 직접 걸어보고 나서, 나는 전국의 작은 도시마다 이런 밤이 하나쯤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은은 대한민국 지방소멸의 현실을 가장 가깝고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역이다. 3만 명이라는 마지노선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0퍼센트를 훌쩍 넘는 전형적인 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흔히들 이 숫자를 마주하면 쇠락과 침체만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은군의 담당자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고령 인구가 40퍼센트를 넘어가는 혹독한 조건 속에서도, 이곳은 거꾸로 저소득층 노인들이 살아가기 좋은 촘촘한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설명이었다. 숫자로만 환산되던 소멸 위기의 이면에, 행정과 주민이 결속해 삶의 온기를 지켜내고 있는 단단한 일상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최근 보은이 보여주는 변화의 양상은 더욱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책이 실제 지급되기 전부터 나타난 인구의 움직임이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6월 11일 이후 두 달 동안 1,227명이 보은으로 전입했고, 전출은 351명이었다. 3만 695명이던 인구는 3만 1,516명으로 늘었다. 물론 이 증가를 기본소득 하나의 효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귀농·귀촌과 청년마을, 스마트팜 등 다른 정책들도 함께 작용했다. 그럼에도 인구를 붙잡기 위한 정책이 실제 사람의 이동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시 묻게 된다. 사람과 돈을 지역에 머물게 하는 것만으로 진정한 의미의 지역 재생이 완성될 수 있을까.
그 답의 실마리를 나는 이번 회인국가유산 야행에서 찾았다. 인구 3만 명 남짓한 지역에서 3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모였다는 숫자 자체도 놀라웠지만, 현장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대형 이벤트의 스케일이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이었다.
관광객 구경꾼을 위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었다. 온 군민이 밖으로 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행진하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그곳에서 주민들은 행사의 객체가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수원 같은 대도시에서 거대한 미디어아트와 첨단 볼거리로 관광객을 사로잡는 화려한 축제와는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회인의 밤에는 현란한 디지털 미디어아트도 아이돌도 없었다. 대신 7080 포크 음악을 80년대처럼 DJ가 신청곡을 받아 틀어 주고, 마을 곳곳에서 삼삼오오 앉아 먹거리를 즐기고 있었다. 사직단과 인산객사 등 오래된 역사문화자원이 품은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시골 장터 같은 소박한 온기가 펼쳐지는 그 자체로 강렬한 매력을 뿜어냈다.
특히 행사장 한켠에서 마주한 지역 전통 장인의 작업 현장은 이번 순례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장인의 손끝에서 우리 문화유산의 실질적인 승계와 살아있는 문화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용했지만 작은 지역만이 가질 수 있는 정감과 깊은 스토리가 들려오는 형태의 축제였다.
행사 기간 중 군수님과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에게서 지역의 사적을 가꾸고 전통을 계승하는 일에 대한 진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행정의 수장이 가진 그 뚜렷한 애정과 자부심이야말로 유산이 박물관에 갇히지 않고 주민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일 것이다.
우리에겐 일찍이 함께 농사를 짓고 서로의 안부를 살피던 두레와 향약의 공동체적 유산이 있었다. 하지만 도시화와 개인화는 그 자연스러운 관계의 장치들을 지워버렸고, 우리는 이제 이웃을 만나기 위해서조차 거창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적 정착이 사람과 돈을 머물게 하는 일이라면, 문화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주소지를 옮기고 집을 구하는 것만으로 이주민이 곧바로 정착할 수는 없다. 이웃을 만나고, 지역의 공간을 호흡하며, 문화적 기억을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정착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문화는 지역소멸을 막는 가장 근본적인 연대의 언어가 된다.
공공의 문화예산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내년에 예산이 부족해 행사를 이어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현장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이 축제가 왜 지속되어야 하는지 더욱 확고해졌다. 인구 3만 명의 지역에서 주민들이 함께 나와 웃고 걸으며 유대의 감각을 확인하는 일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인구소멸의 시대, 지역의 축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은의 회인국가유산야행은 우리에게 조용히 답한다. 사람을 모으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서로 만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보은의 밤은, 비단 보은에만 머물지 않고 쇠락해가는 전국의 모든 작은 도시들이 마땅히 되찾아야 할 '함께 살아가는 감각'의 가장 선명한 청사진이 되고 있다.



*전혜연은 여성인권·미디어아트·도시교류를 통해 예술을 사회변화의 도구로 만드는 행동하는 큐레이터다. 2014년 글렌데일 '위안부의 날 특별전'을 시작으로 소녀상 지키기 국제 연대전을 이끌었고, 2017년부터 글렌데일시 공식 행사로 승격, 8개국 100여 명 작가가 참여했다. 국내에선 《여성인권이야기: 행진》을 성북, 부산, 보은, 고성, 포항, 인천, 김포, 파주 등 지방정부와 함께 이어가고 있다. 2018 평창올림픽 미디어아트 기획을 계기로 공공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열었고, 수원문화축전·국립극장 등에서 지역 역사와 장소성을 담은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김포-글렌데일 교류전은 '경계'와 '자유'를 주제로 일상 공간에 공공미술을 설치했으며, 2024년에는 김포의 지역 의제를 다룬 '다양성'이란 전시로 네 지역을 아우르는 28명 작가 참여한 대규모 미디어아트전도 기획했다. 최근에는 사이버불링을 여성인권 의제로 삼아 국회 논의·전시·온라인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예술이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 대안과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 국제예술생태연구협회 대표, 귀주사범대 동아시아미디어센터 책임연구원, 비영리 단체 문화유목민 대표, 전시 기획사 SR Comm 대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