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상희 기자 =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으로 글로벌 경제는 1970년대 이후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공포에 다시 직면했다.
고유가 시대가 경제 성장률 둔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 속 글로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또한 무력화되고 있어 우려된다. 물가를 잡으면 경기가 죽고, 경기를 살리면 물가가 폭주하는 중앙은행의 정책 딜레마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치솟는 국제유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매커니즘을 AI 도구를 통해 분석해보고,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도래한 '고유가의 악몽'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 美 '국제유가 200달러 하의 경제 영향 검토'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약 34%, LNG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이스라엘·태국·일본 선적 선박 4척을 공격하며 해협 통행을 실질적으로 차단했고, 다수의 글로벌 해운사와 보험사들이 진입 기피·보험 취소·해상보험료 급인상에 나서면서 공급망 교란이 현실화됐다. 앞서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대 200달러까지 치솟을 경우 경제에 미칠 영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고유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촉발 메커니즘
고유가는 공급 충격(Supply Shock)을 통해 동시에 두 가지 악재를 경제에 투하한다.
① 인플레이션 재점화
원유는 제조·운송·농업 등 전 산업의 핵심 투입 비용이다. 유가 상승은 생산 원가를 일제히 끌어올려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자극한다. 이번 전쟁 이후 유가는 약 55% 급등했으며, 비료 가격도 톤당 700달러까지 치솟아 식량 인플레이션까지 번지고 있다. 소시에테 제네랄 이코노미스트들은 유가가 최소 3개월간 배럴당 90달러 이상을 유지할 경우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최대 1%포인트 상승하고, 전세계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② 성장 둔화·경기 침체 압력
IMF 계산법에 따르면 유가 10% 상승 시 세계 GDP 성장률이 약 0.1~0.2% 포인트 하락하며, 골드만삭스 역시 유가 100달러 돌파 시 글로벌 성장률 0.4%P 추가 하락을 경고하며 "공급 충격이 성장을 갉아먹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전형적 메커니즘"이라고 표현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투자 심리와 고용이 위축된다. 월가의 저명한 이코노미스트 모하메드 엘-에리안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이번 연속 충격의 누적 효과는 글로벌 경제를 관통할 새로운 스태그플레이션의 파도"라고 진단했다.
◆ 중앙은행의 정책 딜레마, 통화정책 무력화
고유가로 우려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장 위험한 이유는 통화정책의 무력화 때문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이는 이미 둔화 중인 경기를 더욱 짓누른다. 반대로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은 이란 전쟁 이후 금리 인하 기대를 뒤로 미루고 있으며, 시장은 올해 안에 금리 인하가 없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 에너지 수입국의 연쇄 타격, 공급망 마비
아시아·유럽 등 에너지 수입 의존국들은 수입 물가 급등→무역수지 악화→통화 약세→추가 인플레이션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번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를 넘어 비료·식량 공급망 마비라는 2차 충격을 동반한다. 이란발 비료 공급 차질로 농업 생산 비용이 상승하면, 저소득 국가들의 식량 인플레이션과 사회 불안 리스크도 함께 높아진다. 한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 분석가는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확률을 기존 20%에서 35%로 상향 조정했다.
◆ 1970년대 오일쇼크와의 비교
현재 상황은 1973년과 1979년 오일쇼크의 데자뷔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과 OPEC+의 증산 여력이 일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OPEC+ 증산 효과가 현실화되기까지 시차가 있고, 이미 시장 심리에 깊이 각인된 인플레이션 기대가 임금 협상과 소비 행동을 바꾸기 시작한다면 기대 인플레이션의 자기실현적 악순환이 전개될 수 있다.
고유가는 단순히 주유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는 모든 경제 활동의 근간이기에, 유가 급등은 물가를 올리는 동시에 성장을 꺾는 양날의 칼이 된다.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여부가 2026년 글로벌 경제의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pxx1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