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기관·전문가도 회의서 "세계유산 보존 가능성 의문"
이번엔 다르다는 정부, 경관 훼손 문제·주민 반대는 '여전'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태릉CC) 개발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관한 연구 용역에서 개발 시 세계유산인 태릉·강릉의 경관과 시야에 중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국토교통부와 LH,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태릉·강릉의 세계유산 지위가 훼손되거나 취소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부는 주택 공급 대책을 통해 태릉CC 개발 사업을 공식화했다. 정부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사업 추진을 강조하고 있지만, 주택 공급 규모와 이로 인한 문화유산 훼손 리스크는 문재인 정부 당시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태릉CC 개발의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LH 용역 "강릉 정자각·능침 시야 훼손 우려…인근 개발도 영향"

5일 국민의힘 김종양 의원실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서울태릉 세계유산 영향성 분석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와 뉴스핌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용역을 수행한 외부 연구기관은 태릉CC 개발사업에 대해 "태릉 정자각, 능침 등에서의 시각 영향은 적은 편이지만 강릉 정자각, 능침에서는 부정적 시각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강릉에서의 조망 경관을 고려해 개발이 진행되도록 조율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용역은 2020년 정부가 8·4대책에 태릉CC 개발사업을 포함한 데 따른 것이다. 태릉CC 개발이 인근 세계문화유산 태·강릉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세계문화유산영향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됐다. LH 의뢰로 고고학, 조경학, 건축학 등 전문가들이 2021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연구를 맡았다. 2021년 8월 정부가 태릉CC 주택 공급 목표로 세운 '6800가구, 최고 층수 10~18층'를 기준으로 분석이 진행됐다. 6800가구는 이번 1·29 대책에서 정부가 발표한 계획과 동일한 규모다.
당시 연구기관은 세계유산영향평가의 필수요소인 '시각영향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3D 시뮬레이션, 주요 조망점 사진 분석 등을 활용했다. 각 조망점별로 '심각한 부정적 영향(-5)~강력한 긍정적 영향(+5)' 7단계로 평가한 결과 ▲강릉 능침 앞 ▲태릉CC 옥상 ▲태릉CC 15번홀 등에서 '심각한 부정적 영향(-5)'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강릉 정자각 앞 ▲강릉 진입구 ▲강릉 홍살문 앞 ▲태릉 외부가로변 ▲강릉 외부가로변 ▲구리갈매지구 경관축 등에서는 '중간 정도의 부정적 영향(-3)'이 생길 것이라고 해석했다.
보고서에는 태릉과 강릉 앞에 위치한 왕릉숲의 폭이 각각 350m, 100m 내외로 다른 왕릉에 비해 얕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 때문에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외부로 시각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특히 강릉에 대한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또 왕릉숲이 높이 15m 내외의 큰 교목 위주로 조성돼, 나무의 몸통 부분 높이에서는 새로 지어질 아파트를 충분히 가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강릉의 경관을 위해서는 왕릉숲을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사업부지 내 구역별 건축물 최고 층수를 10~18층으로 설정해도 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봤다. 태릉CC 인근에 진행된 구리갈매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은 2019년 개발이 완료됐다. 이 사업으로 25~30층 높이의 고층 공동주택이 들어섰다. 또 현재 근처에서 구리 갈매역세권지구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들 사업으로 인해 강릉의 시야 범위에 15~18층 고층건물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태릉CC 개발 아파트의 층수를 추가로 낮춰야 전반적인 강릉 경관을 보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내부 회의서 "층수 10~18층도 높아"...세계유산 보존 확신 못해

이런 용역 내용에 대해 2022년 4월 국토부, LH, 국가유산청, 엔지니어링 컨설팅 기업, 외부 자문위원 등이 논의한 자리에서도 경관 훼손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참석자 A씨는 "(당시 계획안은) 6800가구를 기준으로 층 높이를 8층에서 15층까지로 배치하고 있는데 건물이 들어서면 압박감을 주게 돼 실제 방문해보면 다른 느낌일 것으로 보인다"며 "왕릉 앞쪽으로는 건축물 높이가 수목 밑으로 내려가도록 조정되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참석자 B씨는 "능과 주변의 조화는 여러 방안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능에서 밖으로 보는 시선에 대한 문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개발사업의 시행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강릉은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태릉지구, 갈매지구로 인해 시선이 가려지고 아래쪽 산까지의 시선 연결이 중요한데 이미 갈매지구에서 차폐된 상황"이라며 "(건설되는 아파트의) 층수 10~18층도 태릉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그것도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꽤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참석자 C씨는 "세계유산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보존할 것인가, 왜 이 대상지인가 고민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개발 위주의 정책이 계속되는 데 세계유산을 보존관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유산은 지역사회와 소통되지 않은 채 등재될 수 없는데, 공공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주민이 정확지 않다는 면으로 소통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40기 왕릉이 세계유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사안을 관계부처가 무겁게 생각해야 하고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 태릉CC 개발사업 재추진...사업 효율·주민 반대 '난관'

최근 정부는 1·29 대책에서 태릉CC 개발사업을 본격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태릉CC 개발사업에 대해 "전에 진행이 안 됐던 문제가 세계유산영향평가 문제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고 당시에 관계 부처와도 이견이 있으면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이번에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최대한 신속히 받고 이에 발맞춰 준비를 제대로 하면 충분히 (사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 사업의 좌초 원인을 '세계유산영향평가 준비 부족'으로 지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LH가 발주한 연구용역에서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 내용, 태·강릉의 유산가치, 해외 국가 사례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 당시 자문 회의 3차례, 실무진 회의 2차례, 문화재위원회 회의 1차례, 문화재소위원회 소위원회 회의 2차례를 거치면서 각종 관계기관 및 전문가들이 유산영향평가 대응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과거 태릉CC 사업이 중단된 가장 큰 이유로 태·강릉의 경관 훼손 문제 자체와 이로 인한 주민 반대가 꼽힌다. 현재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 29일 논평을 통해 "택지 개발 재추진은 공급 물량을 맞추기 위해 세계유산과 그린벨트라는 마지막 공적 자산을 손대기 쉬운 재고 물량으로 취급한 것"이라며 "한번 훼손된 세계유산의 경관과 생태계는 되돌릴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향후 사업의 핵심은 건물의 층수가 될 전망이다. 앞선 논의를 종합하면 경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부지 내 건축물의 최고 층수를 10층 이하로 하향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이에 따라 정부가 발표한 '6800가구'보다 주택 공급 규모가 축소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 경우 공급 효과 대비 토지·환경 훼손 비용이 크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문화재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교통 문제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반대, 노원구와의 입장차 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LH 관계자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를 이해하고 서울태릉지구 개발에 따른 세계유산(태·강릉)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과거 용역을 진행한 바 있다"며 "향후에는 서울태릉지구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및 세계유산영향평가 주무부처인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blue9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