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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아닌 게 어디 있나"…설탕·밀가루 등 10조원 '서민경제 카르텔'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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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검찰이 설탕·밀가루·한국전력공사 입찰 등 10조 원 규모 담합을 적발해 수십 명을 재판에 넘긴 배경에는, 이들이 노골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미 과거에도 담합으로 적발된 이들 업체는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수사를 예상하고, 수년 전부터 치밀한 대응 전략을 짜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 [사진=뉴스핌 DB]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민경제 교란사범 총 52명(6명 구속·46명 불구속)을 2일 기소했다. 가장 규모가 큰 담합 행위는 '밀가루'였다.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 등 제분사 7곳은 2020년 1월부터 6년동안 약 6조 원 규모의 담합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설탕 카르텔'인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업체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3조 2715억 원 규모의 담합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가스절연개폐장치 입찰에 참여한 효성중공업과 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일진전기 등 10개 업체는 2015년 3월부터 7년 6개월 동안 145건(6700여 억 원 규모)에서 담합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이 노골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특정 금액을 사전에 정해두고, 이에 맞춰 각 업체마다 금액을 조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예를 들어 '1500원 인상'을 목표로 뒀다면 A사는 인상액을 2000원으로 제시한 뒤 최종 단계에서 500원을 낮추고, B사는 1800원을 인상액으로 제시한 뒤 300원을 내리는 등이다.

인상액에 대한 잠정 합의가 이뤄지고 나면 다음은 '사다리 타기'가 진행됐다. 누가 먼저 가격을 올리고, 이를 B2B 업체에 통보하는지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대형 제분사 3곳이 가격을 설정하면 중소 업체들이 이를 따라가는 형식을 취해 담합 행위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다.

서울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소비자가 진열되어있는 설탕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스핌DB]

검찰은 '설탕 담합'의 경우 인상이 아닌 가격 인하도 담합 행위로 판단했다. 원재료값 상승을 이유로 설탕값을 올려놓고, 정작 원재료갑 하락 때는 단체로 가격 인하를 막는 단체행위를 통해 제당사들이 영업이익을 올렸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오너'를 보호하기 위해 실무자 선에서의 책임, 일명 '꼬리자르기' 행태도 보였다. 수사대상에 오른 직원들과의 면담에서 사측은 '너로 정리하는 건 꼬리자르기가 아니다'라거나 '회사가 끝까지 돕겠다'라는 등 설득작업은 물론, 수사기관에서 불리한 증언을 할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에 대해 '회사에 로열티가 없다'는 등의 평가도 문서화해 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 조사를 피하기 위해 직원 간 카카오톡 금지, 문자 지양, USB 암호화 등 대응책을 직원들에게 공유했으며, 폐기 시 망치로 부수라는 구체적 지시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업체에서는 내부 회의에서 담합에 대해 '담합 아닌게 어디있나, 재수없게 걸린 것'이라는 등 태도도 보였다고 한다.

수사를 흐리기 위한 '전략'을 쓴 정황도 포착됐다. 담합은 했지만 가격이 아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물량'에 대한 배분만 이뤄진, '물량 담합'만 이뤄졌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결국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되며 법인에 대한 벌금으로 끝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밀가루 코너에서 시민들이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검찰은 "공정위는 이 전략에 말려들어서 물량담합으로밖에 행정처분을 하지 못했다"며 "검찰에서 (가격담합)을 다 밝혀내 고발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담합 행위 근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정거래법 위반죄에 대한 법정형 상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 우리나라의 처벌 조항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미국은 담합 행위를 한 개인에게 징역 10년 이하 또는 100만 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영국은 징역 5년 이하 또는 '무제한' 벌금, 루마니아와 일본도 징역형의 경우 5년 이하가 기준이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처럼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득액 산정을 매출액의 15%로 명확히 규정해 처벌 수위를 높여 범죄 행위를 사전에 억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righ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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