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부동산 건설

속보

더보기

현대건설, 압구정2구역 '조합원 100% 한강 조망' 실현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조합원 전 가구 조망 설계 AI로 검증
조망에 약 2000억 투자
14m 하이 필로티, 2.9m 천장고
독일 '슈코' 창호도 재건축 최초 적용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현대건설이 압구정2구역 재건축에 '조합원 100% 한강 조망' 청사진을 29일 공개했다. 현대건설이 압구정2구역 재건축을 위해 제안한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도시'라는 미래 비전의 일환이다.

현대건설이 압구정2구역 재건축에서 내세운 핵심 제안은 바로 '한강 조망'이다. 조합원 전 가구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단지 배치, 최대 14m에 이르는 하이 필로티 적용, 세계 1위 알루미늄 시스템 창호 도입, 첨단 AI 시뮬레이션 검증에 이르기까지 '압구정2구역의 한강변 입지 프리미엄'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현대건설 '압구정2구역' 3면 개방 파노라마 한강 조망 이미지 [제공=현대건설]

서울을 굽이쳐 흐르는 한강의 변곡점에 있는 압구정2구역의 특성을 살려 주동 각도를 설계해 조합원 전 가구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단지를 배치했다. 그 결과 최대 225도에 달하는 파노라마 조망이 가능하며, 이는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강뷰를 검증했다. '조합원 100% 한강 조망'이라는 제안을 첨단 기술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한강 조망 확보를 위한 현대건설의 과감한 설계는 필로티에서도 드러난다. 일반 단지에서는 3~4m 수준인 필로티를 압구정2구역에서 최대 14m에 이르는 '하이 필로티'로 끌어올렸다. 통상적인 높이의 3~4배에 달하는 필로티 설계로 최하층 가구에서도 올림픽대로와 방음벽 너머로 시야가 트인 한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조망의 가치를 완성하는 마감재는 바로 '창호'이다. 현대건설은 전 세계 1위 알루미D늄 시스템 창호 브랜드인 독일 슈코(Schüco)를 적용한다. 슈코는 토마스 헤더윅의 'Coal Drops Yard', 노먼 포스터의 'Cambridge Law Faculty' 등 세계적 건축 거장들의 랜드마크 프로젝트에 사용된 브랜드로, 국내에서는 '에테르노 청담' 등 하이엔드 주거시설에 적용되어 왔다. 재건축 단지에서는 압구정2구역에 처음으로 도입되어 '최초'의 의미를 더하게 됐다.

압구정2구역에 도입되는 창호는 2.9m 천장고를 그대로 살려 실내를 가득 채운다. 초슬림 알루미늄 프레임에 바닥과 같은 높이의 '제로 레벨' 설계로 시야를 가리는 요소를 최소화한다. 실리콘 없는 결합 구조는 시야를 더 넓게 열어주고, 인테리어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심미성을 갖췄다. 최대 7.8m에 이르는 거실 와이드뷰는 파노라마 창을 통해 한강을 오롯이 누리는 경험을 선사한다.

'실내 개방감' 또한 한강 조망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현대건설은 우물 천장고를 최대 3m로 높여 공간감을 확장했고, 조합원 가구에 100% 포켓 테라스를 적용하여 거실과 이어지는 열린 외부 공간을 마련했다. 2층 높이로 설계된 포켓 테라스를 통해 바람과 빛을 한층 더 자연스럽게 유입시키며 개방감을 확보했다.

현대건설은 압구정2구역 재건축의 한강 조망 확보를 위해서 약 2000억원을 투자했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는 '압구정지구 재건축 첫 번째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한 현대건설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특히 현대건설은 단독입찰임에도 불구하고, 압구정2구역 '조합원 100% 한강 조망'을 위해 단지 설계와 가구 마감재 투자에 각별히 공을 기울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조합원 전 가구 한강 조망은 '압구정 100년 도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압구정2구역 재건축의 핵심 제안"이라며 "앞으로 새로운 주거문화를 창출하며 서울 고급주택의 새로운 기준이 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dosong@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사진
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