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장·서울 은평갑 3선 의원
사회적참사법 제정 위해 단식·국민의당 등 타당 의원 적극 설득
"국민이 하루하루 행복한 물적 토대 갖춘 사회 만들고파"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자 3선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은평갑)은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면서도 사회적 참사나 의정갈등, 연금개혁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의정활동의 상당 시간을 쏟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에서 뉴스핌TV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거리의 변호사', '세월호 변호사' 등으로 불리던 때 "민주당에서 영입 제의를 받기 전에 다른 당에서도,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에서도 제안을 받았다. 민주당에서도 사실 여러 차례 제안이 왔는데 다 거절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와서 보면 정치에 대해 편향적 시각을 갖고 있던 것 같다"고 했다.
2016년 1월 당시 문재인 대표의 인재 영입으로 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그때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제가 활동했다는 걸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대 정당이 여론조사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역의 오랜 당원들도 명함이나 플래카드에서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색을 빼고, 문구도 빼라고 하셨다"고 정치 입문 당시 상황을 귀띔했다. 그럼에도 그는 "근데 저는 '세월호 관련 문구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국회의원에 당선돼서도 그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참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초선 때인 2016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유가족분들과 같이 단식했을 때 경험을 떠올리며 사회적참사 특별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1호 법안으로 지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박 의원은 "당시 국민의당 의원님들 설득하기 위해서 지역구에 따라가고, 안에서 고기 드실 때 겨울인데 밖에서 2시간씩 기다리면서 설득했다"고 전했다.
22대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서 의정갈등을 다루고 있는 그는 "(아직 갈등이 진행 중이긴 한데 공론화 기구라든지 민주당에서 처음 얘기한 것들을 의료계가 상당 부분 수용했다. 거의 최종 단계에 접근한 상태라고 본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차기 서울시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고민이 있다"고 말을 아꼈다.
박 의원은 "국민이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국민이 자신의 꿈을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추구하고 도전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춘 사회를 만드는 게 제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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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TV와 인터뷰하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뉴스핌DB] |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정치 입문 계기는
▲ 민주당에서 영입 제의를 받기 전에 다른 당에서도,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에서도 제안을 받았다. 민주당에서도 사실 여러 차례 제안이 왔는데 다 거절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정치에 대해 편향적 시각을 갖고 있던 것 같다. 제가 민주당에 영입될 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기가 상당히 높았을 때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자유한국당)이 200석 이상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민주당도 완전히 지는 선거라고 생각할 때였는데, 오히려 그때 거절을 못 하겠더라. (민주당 측에서 영입을 제안한 인사가) 같이 싸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 국회에서 야당이 무너지면 제가 (변호사로서) 해온 일들도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겠나, 라고 얘기하니 거절을 못 했다. 다만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 옆에 있을 때라서 가족분들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가족분들께 말씀드리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당 쪽에서) 다음 주 월요일에는 무조건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고 해서 직전 일요일 총회에서 '영입 제의가 왔다'고 밝혔더니 가족분들이 '빨리 가'라고 하시더라.
'어떤 분들은 어떤 정당에 가입하는 게 결혼할 때만큼 고민된다고 얘기하시는데 저는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전 결혼할 땐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정당 가입할 때는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인재 영입 때 제 기자 회견문 시작이 이랬다.
- 공천 이후 선거운동 과정도 화제가 됐던 걸로 기억한다
▲ 사실 영입되고 나서도 공천 기회는 오지 않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였는데 공천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서 포기했었다. 그러다 막바지에 서울 은평갑에 공천됐다는 사실을 보도를 보고 알았다. 그러니까 지역에 갔을 때는 굉장히 소진된 상태였다. (선거운동 초반에는) 되게 애를 먹었는데 당시 지역구 의원이던 이미경 전 의원이 본인 선거 조직을 저한테 넘겨주셔서 잘 됐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제가 활동했다는 걸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대 정당이 여론조사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역의 오랜 당원들도 명함이나 플래카드에서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색을 빼고, 문구도 빼라고 하셨다. 유가족분들도 참사를 추모하고 상징하는 것들을 다 떼고 오셨다. 근데 저는 '세월호 관련 문구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제가 잘 안 쓰던 약력인 대원외고 졸업, 서울대 법대 출신 이력을 넣는 대신 세월호 참사 유가족 법률대리인이라는 문구도 함께 넣기로 했다.
- 정치인이 되면 '이건 꼭 하고 싶다' 하는 일이 있었나
▲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 관련된 건 제가 하겠다고 했다. 많은 분이 기억을 못 해주시는데 세월호 관련된 법안도 제가 한 7번 제정, 개정을 했다. 그중에 4번째 개정안은 최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이다. 당시 민주당이 원내 1당이라고는 하지만 123석밖에 안 돼서 법안 처리는 어려웠다. 당시 국민의당 의원님들 설득하기 위해서 지역구에 따라가고, 안에서 고기 드실 때 겨울인데 밖에서 2시간씩 기다리면서 설득했다.
(2016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유가족분들과 같이 단식을 했다. 광화문에서 단식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회적참사 특별법)을 만들고 통과시킬까 궁리하다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 되겠더라. 당시 민주당이 유일하게 상임위에서 2/3 이상 인원을 차지한 곳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였다. 그래서 환노위로 가는 법을 설계하고 본회의에 올려서 150석을 넘기기 위해 다른 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 이번 국회에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서 의정갈등이나 연금개혁 등 갈등이 큰 이슈를 다뤘다
▲ 당시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위원회로 가서 두 현안을 핸들링해 보라고 제안하셨다. 사실 법사위원장을 가고 싶은 마음이 많았지만 알겠다고 했다. 대신 연금 문제는 특위 구조로는 풀릴 수 없다고 했다. 상임위에서 끝내겠다고 했다. 특위를 구성하면 여야 동수가 돼서 데드락(Deadlock, 교착 상태)이 걸린다. 아무튼 그래서 올해 초 합의 처리를 끌어냈다.
의정갈등은 진행 중이긴 한데 공론화 기구라든지 민주당에서 처음 얘기한 것들을 의료계가 상당 부분 수용했다. 거의 최종 단계에 접근한 상태라고 본다.
- 서울시장에도 거론된다. 지난해 10월에 출범시키신 새서울특위도 시장을 위한 큰 그림이 아닌가
▲ 여러 고민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미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게 없고 전시성 행정, 예산 낭비성 행정이 많다. 그래서 오 시장을 비판하면서도 시정을 견인하기 위해 국회 차원의 특위를 만들었다.
다만 지금은 이재명 정부가 안착하고 성과를 내는 게 시급하다. 의료대란 문제를 어떻게든 매듭짓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의 과제에 집중하는 상태다. 하지만 고민과 시선을 (서울시에) 두고 있긴 하다.
- 정치인으로서 최종 목표는
▲ 어떤 자리나 지위를 목표로 삼는 사람은 아니다. 늘 말하지만 국민이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 기본사회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자리를 대통령께서 주셨는데 저한테 잘 맞는 역할인 것 같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꿈을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추구하고 도전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춘 사회를 만드는 게 제 꿈이다.
heyj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