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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의 외교포커스] 북한은 왜 ARF에 등을 돌렸나

기사입력 : 2025년07월14일 07:20

최종수정 : 2025년07월14일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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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2000년 가입한 유일한 다자안보회의 불참
한국, 북한 비난에 아세안 동참시키는데 총력전
외교고립 피하려 가입했으나 오히려 '고립 심화'
北 국제사회 유인 기회 놓친 '대표적 실패 사례'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지난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아세안 회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32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북한이 대표단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ARF에 외무상을 파견하지 않은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아예 불참을 한 것은 2000년 ARF 가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말레이시아는 2017년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북한과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북한이 올해 ARF 불참한 것은 의장국이 말레이시아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북한이 ARF에 관심을 잃은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11일 열린 제 32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모습 [사진=외교부] 2025.07.11

2019년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후 북한은 ARF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고 아세안 국가들과의 외교 활동도 미미했다. ARF에서 얻을 수 있는 외교적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 ARF에 가입했을 때의 북한과 지금은 북한은 완전히 다른 나라다. 국제 정세도 변했다.

북한이 내년에 필리핀이 주최하는 ARF에 다시 참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다시 ARF에 돌아온다고 해도 이 회의가 과거처럼 남북 간 대화나 북·미 접촉의 창구로 유용하게 작동하던 시절은 오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ARF 가입 배경과 의미

ARF는 1994년 창설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의 다자안보협의체다. 아세안 10개국을 포함해 남과 북, 미·중·일·러·유럽연합(EU)·호주 등 27개국이 회원국이다. 북한은 2000년 7차 ARF부터 정식 회원국이 됐다.

북한이 ARF 가입 결정을 내린 배경은 복합적이다. 1998년 권력 승계를 완성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해 체제 보장·외교적 고립 탈피·경제적 실리 등을 얻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를 폈다.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을 적극 표명해 국제 여론과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지지도 한몫을 했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개선해 서방과의 외교 관계를 여는 통로로 활용하려 했다. '햇볕 정책'의 효과인 셈이다. 북한이 ARF에 가입했을때 정부는 "앞으로 각종 ARF 관련 회의에 남북한 대표가 함께 참석해 상호 신뢰구축, 역내 평화와 안정문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북한의 ARF 가입으로 과거 아·태 지역에서 적대적 관계였던 나라를 포함에 모든 나라가 매년 ARF에 모이게 됐다. 냉전 이후 아·태 지역의 안보에 대한 다양한 도전을 놓고 대화하는 협의체가 탄생하고 역내 평화를 증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북한으로서는 아세안과 역외 강대국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남과 북이 동등한 자격으로 입장을 펼칠 수 있는 외교 무대가 생겼다는 것이 큰 소득이었다. 특히 ARF는 내정 불간섭·평등·중립 등을 표방하는 아세안이 주최하는 협의체라는 점에서 북한에게는 최적의 외교 무대였다.

[싱가포르 로이터=뉴스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018년 8월 4일 오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리트리트(비공식 자유토론) 포토타임에서 강경화 외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2018.08.04

가입 당시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이 "ARF는 외세의 간섭을 배제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자주적 평화통일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북한이 ARF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남과 북은 ARF에서 격의 없는 장관급 접촉을 갖고 한반도 정세와 남북 간 현안,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다. 남북 간 문제는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데 남북이 공감하던 시절이어서 국제 무대에서 충돌도 자제했다.

남북 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통일 과정의 일시적 특수 관계임을 인정하던 때여서 ARF에서 남북 회담은 국가 간 양자회담과 달리 국기도 놓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또 북·미 간 핵협상이 난관에 부딪쳤을때 ARF는 북·미가 장관급 '고공 대화'를 통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역할도 했다.

◆남북 총력 대결장으로 변한 ARF

2008년 싱가포르 ARF는 아세안을 두고 펼쳐지는 '남북 총력전'의 시발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남북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북핵 6자회담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해 7월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은 남북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2주 뒤 열리는 싱가포르 ARF에서 이 사건을 정식 문제 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남북 간 사안을 다자외교 무대에서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국내 반대에도 정부는 ARF에서 북한을 맹비난하고 이를 의장성명에 반영하려 했다. 그 결과 의장성명에 '장관들은 금강산 사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이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하지만 의장성명에는 이명박 정부가 껄끄러워하는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지지'라는 북한 주장도 고스란히 실렸다. 대경실색한 정부는 회의 종료 이후에도 고위 당국자를 현지에 남겨두고 싱가포르 정부를 상대로 북한의 주장을 삭제해 달라고 매달리는 '뒷북 외교'를 폈다.

싱가포르 정부는 북한의 주장을 삭제했지만 이번에는 한국의 주장까지 삭제해 균형을 유지했다. 결국 남북한 주장이 모두 빠진 '수정 의장성명'이 다시 발표됐다. 사상 초유의 외교 참사이자 국가 망신이었다. 이 일로 유명환 당시 외교부 장관은 거의 목이 잘릴뻔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022년 8월 4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의장국 주재 환영 만찬에서 안광일 인도네시아 주재 북한 대사 겸 아세안 대표부 대사와 만났다. [사진=외교부] 2022.08.05

이 사건 이후 정부는 매년 ARF 의장성명에 한 줄이라도 더 유리한 내용을 넣기 위해 아세안 국가들을 상대로 총력전을 폈다.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아세안과의 현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아세안 국가들을 설득해 북한 비난에 동참시키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북한 문제는 최고 권위의 다자무대인 유엔의 안보리에서 이미 명확하게 성격을 규정해 놓은 사안임에도 정부는 큰 의미도 없는 지역안보협의체 의장성명에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비정상적 외교를 매년 ARF에서 반복했다. 한국 언론이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아세안 외교는 거들떠보지 않고 북한의 일거수일투족만 주시하는 기이한 취재 관행을 갖게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진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후 핵·미사일 개발에 폭주를 거듭하자 아세안도 중립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회의장에서 북한 외무상의 발언은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의장성명에도 누락되기 일쑤였다. 북한은 매년 ARF 종료 직후 숙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대표 발언을 언론에 직접 전달하는 '장외 외교'를 펴야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분위기가 잠시 반전됐지만, 이듬해 2월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북한은 더 이상 ARF에 장관급을 파견하지 않았다. 이때 북한은 이미 ARF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북·미 대화는 결렬되고 남북 관계는 단절 상태에 빠진데다 아세안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북한으로서는 ARF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을 완성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최고의 동맹 관계로 발전했다. '사회주의 국가와의 연대를 통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북한이 미·중 대결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는 아세안에 관심을 쏟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ARF는 국제사회의 대표적 '대북 외교실패 사례'

ARF는 역내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체가 아니다. 각자 이해 관계가 다른 27개국이 모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ARF는 지역 안보에 대한 회원국의 관점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신뢰를 구축하고 분쟁 발생을 예방함으로써 갈등을 줄여 나가기 위한 대화체로 역할을 할 뿐이다.

2024년 7월 2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리영철 라오스 주재 북한대사(가운데)가 북한 대표단과 함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4.07.27

ARF는 북한과 정례적인 대화가 가능한 안정적 통로를 확보하고 점진적인 개방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북한이 ARF에 가입한 것도 다양한 안보 현안 논의에 참여함으로써 외교적 고립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북한이 ARF를 통해 국제사회와 대화를 지속하고 ARF에서 논의하고 결정한 사안과 성명에 포함된 내용 등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회원국으로 남아 있었다면 북한을 조금씩 깊숙하게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는 단초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과 서방은 중립을 표방하는 아세안을 상대로 북한 핵문제에 대한 부정적 국제여론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ARF를 활용했다. ARF에서 북한 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주 의제가 되면서 ARF는 북한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북한이 ARF에 흥미를 잃게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아직 ARF 탈퇴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예년처럼 대표단을 보내고 형식적인 참여를 이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향후 극적인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북한의 ARF 합류로 예상됐던 많은 외교적 효과들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 대신 북핵 해결 앞세워 북한을 '때려서 내쫓은' ARF는 국제사회의 수많은 '대북 외교 실패' 중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opent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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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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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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