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제훈이 이종필 감독의 영화 '탈주'로 동료 구교환과 연기 호흡을 맞추며 소원 성취 했다. 스스로 북한 탈주병이 돼 체력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던 경험도 아마 마지막이 될 작품이다.
이제훈은 오는 7월 3일 개봉하는 '탈주'에 출연하며 지난 2020년 '도굴'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공공연히 구교환과 함께 작업 욕심을 내비쳤던 그는 이번에 그야말로 바라던 바를 이룬 만큼 작품을 본 뒤 만족도 역시 높았다.
"오랜 시간 인연이 있었던 램프 박은경 대표님께서 이 작품을 주셨는데 글을 쓴 권성희 작가가 저와 '점쟁이들'로 인연이 있었어요. 형의 데뷔작이었고 저도 신인이었던 시절을 지나 다시 읽으니 이 작품이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나면 극장에 나설 때 굉장히 '영화 잘 봤다' 하고 웃으면서 극장을 나오지 않을까. 그런 기분을 시나리오를 읽고 느꼈어요. 연기와 영상을 통해서 한번 잘 만들어보자는 목표의식이 분명히 생기면서 출연하게 됐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탈주'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4.06.21 jyyang@newspim.com |
영화 속 이제훈이 연기한 규남은 남한으로 탈주하려는 북한군 군인. 보위부 간부인 현상(구교환)과 과거 인연부터 끝없이 쫓고 쫓기는 탈주극으로 호흡을 이어 나간다. 이제훈은 "형을 따르며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고 촬영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구교환 형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는 매력도, 사람 자체의 매력도 어마어마했어요. 같이 하게 돼서 너무 신이 났죠. 형인데 어떻게 저렇게 아기같이 순수하지,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지. 연기를 하면서 정말 놀랐던 장면이 현상이 물티슈로 손을 닦고 원래 대본에는 차에 타서 핸드크림을 바른다가 다였는데 손을 닦은 물티슈를 집어넣는 표현을 하면서 마술로 비둘기가 나올 것 같은 표현을 해줬어요. 동시에 현상과 규남의 관계가 어릴 때 단순한 가족의 인연이 아니라 형, 동생으로서 특별한 지점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더라고요. 창작적으로 저렇게 유니크한 표현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했어요."
극중에선 현상이 규남을 일방적으로 쫓게 되면서 계속해서 규남의 행동과 모습을 주시한다. 반대로 규남은 현상을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어떤 적대감보다는 비슷한 인물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흐른다. 이제훈은 바로 이 부분을 포착해 연기적으로 녹여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규남에게 아문센이란 책을 준 게 현상이잖아요. 그 역시도 어떤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산 게 아닐까요. 동시에 규남에게도 이상향, 비록 실패할지라도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한 게 바로 현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현상도 마찬가지로 규남을 계속 어떻게 보면 쫓으면서도 자신이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치던,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살면서도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규남을 보면서 스스로를 투영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쫓고 쫓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는 지점이 끈끈하게 있는 설정 같고 특별하게 느껴지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탈주'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4.06.21 jyyang@newspim.com |
이제훈이 연기한 규남은 10년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먹을 것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후임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는 처지로 필사즉생의 각오로 남한으로 달린다. 실제 북한군의 비주얼이나 마음가짐을 위해 이제훈이 준비한 바 역시 평범한 마음가짐으론 완성될 수 없었다.
"캐릭터 자체가 지향하는 목적이 너무나 분명하고 타협이 없잖아요. 저 역시 거기에 반드시 도달을 해야 된다 생각해서 준비 과정에서도 극단적인 식단 조절과 에너지가 부족한 그런 상황을 만들려 했어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없으니 막 머리가 핑핑 도는데 당분을 섭취해서 정신을 들게 하는 것조차 맞는 것인가,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규남은 먹을 게 없잖아요. 연기하는 순간과 규남이 처한 어떤 상황의 괴리감을 스스로 없게끔 만드는 게 중요한 작품이었고 그게 큰 스크린을 통해서는 분명히 전달될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이제훈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체력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극한으로 몰아붙인 나머지 무릎 인대도 손상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그래야만 했던 영화라 후회는 없지만 앞으로 액션을 볼 수 있을지가 문제다. 그런 극한 상황에 몰린 규남을 보면서 관객들이 주로 느낄 만한 감정은 측은함, 또 의외로 북한의 잘 훈련된 군인에 대한 공포감이다.
"그게 규남이 특별한 이유이기도 했어요. 실질적으로 제가 훈련소에서도 예비군에서도 백발백중을 하지는 못했거든요. 원 안에는 그래도 들어왔죠. 규남이 쏘기만 하면 서치라이트를 그렇게 깨는 능력이 대본에는 써 있었어요. 나름 규남의 능력치에 대한 부분이 설명이 돼 있는데 신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좀 빠지다보니 놀라울 수 있죠. 기본적으로도 또 성실하게 군 생활을 했었던 친구고 부하들이 굉장히 따르다보니 솔선수범하면서 나름 군대 생활 능력치를 잘 갖춘 인물이었지 않나. 극한의 순간에서 기지와 능력을 함께 발휘하니까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저도 했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탈주'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4.06.21 jyyang@newspim.com |
이제훈은 영화 속 등장하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와 관련한 비화도 공개했다. 규남의 테마송처럼 삽입된 이 곡은 그가 전방에서 당직 보초를 설 때면 듣던 남한의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틀어주던 노래다.
"규남이 연회장에서 누군가의 차를 술 취한 장교를 업고 나서 타고 통과를 하는데요. 장교를 버리고 혼자 운전하면서 어쩌면 유토피아를 상상을 하면서 양화대교를 부르는 신이 있었어요. 부르면서 막 이제 신나게 가는 거죠. 그러다 과거 생각도 나고 눈물도 나고 하는 걸 찍었는데 부족한 노래실력 때문에 짤렸나 싶어요. 하하. 그래도 감독님은 되게 찍고 싶어 하셔서 자신이 없어도 막 부르고 감상에도 취했었는데 빠른 전개를 위해 결정된 것 같아요. 만약 이 작품이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아서 원하신다면 디렉터스 컷으로 충분히 좀 보여줄 수 있는 또 극적인 신들이 좀 있거든요. 그런 걸 기대하고 있죠."
이제훈은 규남이 꿈꾸는 불확실한 미래, 실패라도 할 자유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을 보며 자신의 과거 연기자를 꿈꾸던 시절을 떠올렸다. 진짜 실패하더라도, 밥을 벌어먹고 살지 못하더라도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도, 또 현재의 고민하는 청춘들에게도 가 닿을 만한 메시지를 품은 영화가 누군가의 '인생영화'가 되길 바라는 바람도 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이제는 제 삶과 뗄 수 없어졌지만, 어릴 때 영화를 보면서 제 가치관이 변한 경험도 많았어요. 인생에 어떤 생각을 갖게 하고 삶의 지침을 준 작품도 많죠. 자아 형성에도 영향을 줬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은 작품을 극장을 통해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즐겁고 재밌는 순간도 있고,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순간을 맞을 수도 있거든요. 거창한 얘기 같지만 한편으로 그게 '탈주'라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마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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