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 반도체 인력 5만 이상 부족
계약학과 운영에도 공대 기피 현상 심화
경쟁국도 인력난…'고급 인력'이 반도체 성패 가려
기업들의 구인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인재를 찾아 국내외를 발로 뛰는 기업들이 여럿이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들의 구인난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예측이다. 기업들의 인력 부족 현상과 대응 전략에 대해 살펴봤다.
[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국내 산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에서 기업들의 구인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반도체는 첨단 기술이 집적된 분야인 만큼 인재 확보가 어떤 산업보다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의 수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기술 발전이 급격히 이뤄짐에 따라 하루 빨리 글로벌 반도체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집중해야 하는 기업들로써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우수 학생들의 공대 기피 현상도 심화되면서 향후 반도체 인력 수급 전망은 더 암울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장 반도체 구인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뒤처지는 일은 시간 문제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 반도체 인력난 가속화…"기업 비상"
21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오는 2031년 국내 반도체 인력 규모는 30만4000명으로 증가하지만 2021년 기준 반도체 인력 규모는 17만7000명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 같은 수준이 지속될 경우 2031년에는 무려 5만4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전망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약 3000명의 반도체 인력이 꾸준히 부족한 셈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요구되는 인력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인력 충원 규모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연간 반도체 관련 취업자 수는 5000명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취업자 수는 크게 늘지 않고 있어 기업들의 인력 부족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AI) 및 서버 산업의 확대로 2·3나노급 첨단 미세 공정과 이를 위한 반도체 설계 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국내 기업들은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고 설계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요구할 수 밖에 없지만, 현재 고급 인력 양성 규모 자체는 턱 없이 작다.
현재 현장에 충원되는 반도체 인력 중 절반 이상은 대부분 직업계 고등학교와 전문 학사 등 초급 인력이 차지하고 있다. 대학 전공 졸업생은 650명이고 고급 인력인 석·박사 졸업생은 150여 명에 불과하다.
특히 반도체 인력을 양성해야 할 대학에서의 반도체 관련 학과 기피 현상은 해가 지날수록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주요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들도 '의대 열풍'에 밀려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한양대 반도체공학과의 등록 포기율은 무려 275%인데다, 삼성전자의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등록 포기율도 130%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양대와 연세대의 반도체 관련 학과의 경우 1차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한 셈이다.
SK하이닉스의 계약학과인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도 등록 포기율이 72.7%에 달했으며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80%를 넘었다. 계약학과를 졸업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취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등록금도 전액 지원받을 수 있지만 학생들의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관련 학과에 지원했던 학생들 대부분이 의대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2024학년도 대학 수시 경쟁률에서도 주요 대학의 의대 평균 경쟁률은 46대1로 나타나 지난해보다 상승 추세다. 반면 반도체 등 첨단학과의 평균 경쟁률은 16대1 수준으로 의대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대와 반도체학과 등에 동시 합격하면 반도체 등 첨단학과를 포기하는 현상이 여전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이 기업들이 대학의 계약학과 설립을 고육지책으로 내놨지만 반도체 인력 충원 효과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의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사이 현장에서 부족한 인력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최근 학생들 사이에 반도체 분야는 '꼼꼼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어 기업의 인력 확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는 연구개발이 굉장히 중요해 정부의 지원을 통한 대학원과 연구기관의 활성화가 필요하지만, 최근 관련 지원 예산은 되레 삭감됐다"며 "아직 기업들의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 규모도 크지 않아 인력 확보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최근 기업들이 국내 주요 대학에 계약학과를 공격적으로 설립했지만 계약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 인력 또한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삼성과 SK하이닉스는 평택과 용인 등에 수백조원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는 만큼 앞으로 우수 인력이 더 필요하지만 절대적 인력 풀이 작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수 인력 확보에 기업의 미래가 달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계약학과가 생겨도 현재 교수 수가 부족해 인력 양성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는 금방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별도의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경쟁국도 구인난…인력 확보에 반도체 성패 달려
국내 뿐만 아니라 반도체 경쟁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국들도 반도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첨단 반도체 시장의 선점 여부는 기업들의 반도체 인력 확보에 달릴 전망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오는 2030년 기준 자국의 반도체 일자리는 11만5000개까지 늘어날 전망이지만 그 중 6만7000개가 채워지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대학의 반도체 인력 배출 규모 등을 감안하면 미국도 향후 인력 부족이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자국 반도체 산업 규모를 키우고 있어 필요 인력이 더 커지고 있지만, 인력 수급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한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본전자정부기술산업협회(JEITA)는 도시바와 소니 등 주요 기술 기업에 3만5000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일본은 최근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등 자국 대기업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를 세우면서 반도체 인력 수요가 본격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년간 파운드리 등 반도체 산업에 힘을 쏟지 않았던 탓에 당장 일본 국내에서 반도체 인력 풀 자체가 부족하다.
대만의 경우 반도체 전문 인력이 부족해 당장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가 400억 달러(약 53조원)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의 가동이 숙련 인력 부족 문제로 내년에서 2025년으로 미뤄졌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경쟁국가들이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향후 첨단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인력 확보'에 우선 투자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비교적 단순했던 기존의 반도체 공정과 비교하면 최근 급격한 기술 개발과 AI 시장 확대 등으로 연구·개발(R&D)의 중요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전자와 TSMC뿐만 아니라 인텔과 라피더스 등이 2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 경쟁에 뛰어들면서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을 놓고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반도체 규모 자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각 국가들이 인력 충원에 한계가 있어 힘에 부치는 것 같다"며 "최대한 많은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쪽이 향후 첨단 반도체 시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환 교수는 "경쟁국가들은 반도체 설계 등 첨단 공정에 맞춘 고급 인력 확보에 힘을 쓰고 있다"며 "그래도 경쟁국가에서는 반도체 충원이 탄탄한 학령 인구 등이 있어 국내보다는 인력 확보가 원활한 만큼 국내 또한 최근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