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 기업 간 직접 협상 요구
민관협의회, 논란 속 오늘 첫 회의 갖고 출범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한일 과거사 문제 중 최대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민관협의체가 4일 첫 회의를 열었으나, 피해자 측은 일본 전범기업과의 직접 협상을 원하고 있어 해법 마련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이날 오후 회의에 앞서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관협의회 출범이) 이미 확정된 안에 '피해자 측 의사 확인' 등 포장을 씌우기 위한 절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사진=뉴스핌DB] |
피해자 측은 "(대위변제 안은) 대리인·지원단이 그동안 한국 정부로부터 전혀 고지받지 못한 내용"이라며 "또한 위 보도에 대해 외교부의 특별한 반박도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은 또 ▲한국 정부가 300억 안을 유력한 안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일본 정부와 조율하는 단계인지 ▲그렇지 않다면 보도가 이뤄진 경위를 확인했는지 ▲외교부가 왜 보도에 대해 적극 대응을 하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해줄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정부에 "피해자 대리인과 일본 기업과의 협상이 성사되기 위한 강력한 외교적 노력을 요청한다"며 "정부의 노력으로 직접협상이 성사되면, 피해자 분들의 동의를 구해 협상 기간 중 집행절차에 대한 조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피해자 측은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과의 협상이 3년 넘게 이뤄지지 않은 만큼, 피해자와 일본 기업이 만나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나왔던 무수한 안은 정부가 외교적 방식의 타협을 하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단 한 번도 (정부에서) 책임 있게 어떤 안이 피해자들의 의사가 맞는지 물어봐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피해자들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그간 피해자 측의 면담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아 왔기 때문에 쌍방 간 직접 협상이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민관협의회 첫 회의는 이날 외교부 조현동 1차관 주재로 정부 유관부처와 전문가, 피해자 측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비공개로 개최됐다.
윤석열 정부가 민관협의회를 발족한 것은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의 마지노선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매각)가 임박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과 11월에 각각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내용의 확정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배상 이행을 거부하면서 피해자들은 피고 기업의 국내 자산을 찾아 현금화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이르면 올가을 강제집행 시작을 위한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절차가 닥치기 전에 이를 피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게 급선무인 상황이다.
문제는 유효한 해법이 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은 물론이고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며, 국민 여론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외교가에서는 한일 기업 등 민간이 참여하는 자발적 기금을 조성하거나 한국 정부의 '대위변제' 등을 통해 일본 기업의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대위변제' 방안은 한국 정부가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고 차후 일본 측에 청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일본 측의 상응 조치, 특히 일본 기업들의 참여 혹은 부담을 끌어낼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어떤 형태로든 피고 기업의 참여는 대법원 배상 판결을 인정하는 성격이 된다는 점에서 거부하고 있으며, 피해자들 또한 피고 기업들에 결과적으로 '면죄부'만 줄 수 있다며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일 채널A 인터뷰에서 "민관 협의체는 피해자 측을 포함한 관련 당사자들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하고 우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방향을 모색하도록 노력할 생각"이라며 "마음을 터놓고 좋은 방안을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도 나름 노력을 해야겠지만 일본도 자연적으로 호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