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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지난주 미국과 유럽이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 가운데 블룸버그통신이 월가가 보는 이란 핵합의 협상 시나리오를 25일(현지시간) 소개했다.
24일 이란 외무장관이 핵합의 복원 협상과 관련해 미국과 직접 대화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미국 국무부가 직접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하면서 그동안 교착 상태였던 핵합의 협상 진전에 관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국제유가는 올해 들어 10%가량 급등해 현재 배럴당 85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고, 여러 시장 분석가들은 올해 후반에는 8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란의 세계 에너지 시장 복귀 여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일방적으로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한 이후 석유 시장의 관심은 이란의 복귀를 부를 JCPOA 복원에 쏠리고 있다.
이란과 'P5+1'(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국가들이 2015년 이란의 핵 개발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한 JCPOA를 복원하는 협상에 성공한다면 이란은 국제 유가가 하락할 정도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코 브랜치가 이끄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전략가들은 이란이 올해 석유 생산의 '와일드카드'라고 표현하며 "석유 시장에 다가오는 최대 리스크"라고 꼽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앞으로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 포괄적 합의에서부터 부분적 합의·현상 유지·협상 결렬까지 4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며 이에 따라 석유 시장이 받을 영향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전했다.
오스트리아 빈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 앞에 설치된 이란 국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포괄적 합의
이번 협상에 따라 지난 2015년과 유사한 포괄적 합의가 새롭게 이뤄진다면 석유 트레이더들에게 가장 약세 결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이란은 현재 상당 부분을 아시아 주요 시장에 보관 중인 약 8000만~9000만배럴의 원유를 판매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포괄적 합의가 이뤄질 경우 6개월 안에 이란의 산유량이 하루 평균 250만배럴 수준에서 380만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주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했다고 공개한 중국 내 정유사들이 이란이 이렇게 추가 생산한 원유를 가장 먼저 사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미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란산 원유의 대부분은 미국의 제재를 피하고자 다른 나라에서 오는 것처럼 위장된 채 수입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시장 분석 업체 케이플러는 지난해 이란이 외국에 수출한 원유가 하루 평균 64만1000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면 1년 안에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최대 4억배럴 늘면서 현재 초과 수요인 세계 석유 수급이 초과 공급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은행은 국제 유가가 올해 중반까지 배럴당 120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가 이란의 추가 공급이 유입되면서 4분기에는 배럴당 평균 71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부분적 합의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완전한 복원에 못 미치는 부분적인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동안 완전한 합의만을 원한다고 선언한 이란이 과연 석유 제재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대이란 석유 제재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이는 석유 시장에 강세 신호가 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적 합의는 최소한 페르시아만의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고 이란과 동맹국들이 비난받아 온 선박과 드론 공격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런던 소재 컨설팅 업체 FGE 등은 이란이 부분적 합의만 이뤄도 에너지 수출에 있어 상당한 양보를 받을 것으로 전망하며, 올해 2분기에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란이 연말까지 하루 평균 130만배럴 수준으로 원유 판매량을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란의 주요 원유 수출국 [자료=RBC캐피털마켓츠/블룸버그 재인용] |
◆ 현상 유지
이란과 'P5+1' 국가들은 지난해 4월부터 핵합의 복원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진전시키면서 협상을 질질 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상을 중단할지 등 내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몇 달 동안 지금의 교착 상태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RBC캐피털마켓츠의 헬리마 크로프트 수석 상품 전략가는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며 이러한 전망에 가세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까지 아무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본다"며, 이란이 2023년에나 원유 생산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2023년이 되어도 이란이 빠르게 시장에 복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아마도 2018년 이후 유전과 송유관을 비롯한 다른 인프라가 제대로 유지·보수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북해산 브렌트유가 올해 3분기에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르고 올해 전체적으로는 배럴당 평균 9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협상 결렬
이란이나 다른 국가들이 발을 빼면서 협상 자체가 결렬되어 이란 핵합의에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경우 아무래도 국제유가에 가장 강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RBC캐피털마켓츠의 크로프트 전략가는 "2015년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고, 이란은 이제 핵보유국인 만큼 그 지위를 기꺼이 포기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협상 결렬은 역내 선박과 드론 공격을 증가시킬 수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주 후티 반군이 아부다비 연료창고를 공격한 사건이나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카이크 원유 가공 플랜트에 대한 폭격과 유사하게 석유 시설을 타겟으로 한 공격이 이뤄질 수도 있다며, 이러한 공격은 유가 폭등을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라시아그룹은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공습을 감행할 경우 원유 가격이 최대 15% 급등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현재 유가를 고려할 때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시간으로 25일 오후 5시 54분 현재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0.73% 오른 83.92달러를,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0.75% 상승한 86.07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kimhyun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