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3일 이른 새벽에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위대한 행크 아론이 23일 미국 자택에서 향년 86세로 타계 했다"는 소식이었다. 행크 애런은 나와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82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프로야구가 탄생했다. 나는 프로야구가 탄생하자마자 삼성라이온즈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마추어의 때를 벗지 못한 시절이었다. 그랬던 시절에 꿈에도 상상 못했던 행크 애런이 1982년 8월에 한국에 내한했다. 홈런 레이스 경쟁도 했고 10월엔 삼성그룹에서 특별히 행크 애런과 팀을 초청해 이벤트경기도 했다.
행크 애런이 지난 1982년 한국에 내한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만 48세였다. 나는 만 24살이었다.[사진=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
지난 1월23일 타계한 행크 애런. [사진= 로이터 뉴스핌] |
미국메이저야구를 처음 접해본 시기는 중학교시절이었다. AFKN-TV 를 통해 행크 애런 선수가 백인선수들 틈에서 멋지게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TV에서만 보았던 행크 애런이 1982년 8월에 한국에 들어와 함께 홈런 레이스 경기를 펼쳤다. 그때 그의 나이가 만 48세였다. 나는 만 24살이었다. 야구를 시작하고부터 늘 동경하던 선수와 함께 홈런 레이스를 하고 개인 지도까지 받았으니 내게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삼성그룹의 초청으로 두번째 한국에 내한 했을 때는 좀더 가까이에서 많은 것을 묻고 지도를 받았다. 무엇보다 행크의 인품과 온화한 성격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본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던 시절 다운스윙을 하던 나에게 왜 레벨스윙을 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가며 찬찬히 설명해주고 땅볼을 많이 치던 나에게 볼 맞추는 포인트를 왼발 앞에 두고 치라는 팁을 주었는데 그 작은 팁 하나가 그 후 타격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강렬한 기억중 하나는 통역을 통해 나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이었다. "왜 땅볼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왜 공이 뜨지 않느냐?" 한번도 왜? 라는 질문을 지도자로부터 받은 적이 없던 시절이라 당황스러웠고 신기했다.
특별히 행크를 존경하는 것은 훌륭하고 뛰어난 야구 실력도 갖추고 있었지만 유니폼을 벗고 사회에 나와서도 항상 선한 영향을 사람들에게 끼치면서 한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흑인이라는 것 하나로 인종차별을 받던 시절이라 행크가 백인들의 전유물 같은 메이저리그에서 흑인선수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행크의 멘탈이 참으로 강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있었을까?
특히 행크는 흑인 인권운동과 사회봉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제는 차별도 없고 아픔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이만수(63) 전 감독은 헐크파운데이션을 세워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이자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8월 대표팀 '라오J브라더스'를 이끌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현역 시절 16년(1982~1997년) 동안 삼성에서 포수로 활약한 그는 KBO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로 손꼽힙니다. 2013년 SK 와이번스 감독을 그만둔 뒤 국내에서는 중·고교 야구부에 피칭머신 기증,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서는 야구장 건설을 주도하는 등 야구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