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희준이 영화 '오! 문희'에서 가장 버거운 짐을 진 가장으로 가슴 뜨거운 감동의 이야기를 전한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극장가가 얼어붙은 가운데, 지난 2일 개봉한 '오! 문희'가 뚝심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나문희, 이희준 주연의 영화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홀로 6살 딸을 키우는 아버지 두원(이희준)의 이야기를 담는다. 자극적 설정도, 충격적인 전개도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누군가의 진짜 삶을 담은 가치있는 영화다.
"늘 작품 선택 이유는 같아요. 이야기에 공감이 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하면서 행복할 거 같다면 무조건 하죠. '오 문희'도 그랬어요. 정말 재밌을 것 같고 시골에서 청년이 어머니 모시고 딸을 기르면서 이런 일을 해결해나간다는 게 공감이 가고 신났죠. 감독님 만나서 당장 내일부터 찍자고 그랬어요. 하하. 게다가 상대역이 나문희 선생님이라 너무나 끌렸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오! 문희'에 출연한 배우 이희준 [사진=CGV 아트하우스]2020.09.08 jyyang@newspim.com |
최고의 배우인 나문희와 연기하며, 이희준은 꽤 많은 걸 배우고 느꼈을 법 했다. 영화 속 나문희는 오문희 역을 맡아 두원(이희준)의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로 등장한다. 두원의 6살난 딸이 뺑소니 사고를 당하지만, 유일한 목격자인 어머니의 치매증세로 모자는 난관에 부딪힌다.
"선생님은 당신이 느끼는 걸 바로바로 말씀하시는 편이세요. 그런 방식이 저는 익숙하고 좋았어요. 아쉬운데 말씀 안해주시는 것보다 다 얘기해주셔서 행복했죠. 잘 듣고 많이 해내려고 노력했고요. 촬영 1주일쯤 뒤에 '희준씨 너무 잘하신다. 마음대로 해봐. 내가 다 받아줄게' 하시더라고요. 촬영감독님도 엄지를 척 드셨어요. 선생님께 인정받았다고요. 하하. 연기도 연기지만 태도를 많이 보고 배운 것 같아요. 일상에서 어떻게 연기에 임하고 계신지 다 보이니까. 그냥 연기와 함께 사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이희준은 전작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다소 무거운 스토리와 역할을 담당하며 일부러 체중도 100kg까지 증량했다. 이번엔 두원 역에 알맞게 또 10kg정도를 감량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강하고 무거운 작품 하다가 숨통이 트이기도 하고 즐거웠다"고 '오 문희'의 촬영현장을 돌아봤다.
"충청도에서 선생님, 감독님, 좋은 스태프들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냈죠. 촬영만 열심히 했어요. 하하. 우리끼리 누가 어디 무슨 맛집 찾았다는 얘기 나누고요. 반면에 '남산의 부장님'에 비해서 책임감이 막중하긴 했어요. 그땐 이병헌, 곽도원 선배가 있으니 저는 거기 뛰어들기만 하면 됐거든요. 다른 영화에서 평소에 안해봤던 일들, 주연의 역할들을 하게 됐죠. 감사하기도 하고, 어른이 돼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다행히 개봉까지 잘 끌고 함께 와서 다행이에요. 시국이 이렇지만 영화를 개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오! 문희'에 출연한 배우 이희준 [사진=CGV 아트하우스]2020.09.08 jyyang@newspim.com |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또 홀로 딸을 키우는 두원의 역에 몰입하기 위해 이희준이 노력한 지점도 있었다. 처음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 직접 이렇게 살고 있는 중년 남성을 찾아간 것. 이희준이 그와 함께 자고, 먹고 지내면서 느낀 점이 두원을 그리는데 큰 힌트가 됐다.
"감독님이 촬영할 집을 논산에 헌팅을 했대요. 그집 아저씨도 치매 부모님을 모신다는 거예요. 옳다구나 싶었죠. 다음날 수박 사들고 찾아갔어요. 인사를 해도 저를 잘 모르시긴 했는데, 식사도 같이 하고 자고 가라고 하셔서 같이 자기도 했죠. 새벽에 치매 부모님을 어떻게 모시는지 옆에서 다 볼 수 있었는데, 정말 크게 다가왔어요. 가장 실감나게 알 수 있었죠. 새벽에 맨발로 부모님이 나가면 태연하게 '잠깐만' 하고 데려가서 다시 눕히고. 그렇게 속상하고 슬픈 일은 아니더라고요.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다들 버티고 산다는 게요. 주위에 모든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극중 두원의 처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동정과 연민을 자아낸다. 이희준은 연기를 하는 내내 억울한 감정에 내내 지배받았음을 털어놨다. 치매 어머니 모시기 하나만도 버거운데, 어린 딸까지 두고 아내 얘기가 나오자 저절로 두원에게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사랑한 사람이 뭐가 그렇게 지겨웠는지, 도망가버렸다는 게. 두원이 얼마나 큰 배신감과 아픔을 갖고 있을까 싶죠. 저도 결혼을 해보니 그게 얼마나 아픈건지 알 것 같아요. 극복해가는 과정이 심리학에 있다고 하는데 분노, 자책, 그리고 울다가 평정심을 되찾아 간대요. 두원은 분노에서 자책으로 넘어가는 단계 즈음일 듯 해요. 그래도 두원은 끝까지 지켰을 거예요. 딸아이까지. 그래서 더 멋있어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3차 세계대전을 막는 일은 아니지만 오히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오! 문희'에 출연한 배우 이희준 [사진=CGV 아트하우스]2020.09.08 jyyang@newspim.com |
영화의 배경은 충청도의 금산이라는 작은 도시지만, 두원의 상황은 사실 모두에게 조금씩은 해당되는 지점이 있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그렇다. 충분히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화두를 던질 만 하다.
"황두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가족이 짐짝같고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다 해줘야 하고 챙겨줘야 하는, 나한테 너무 버거운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죠. 그렇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가는 이야기예요. 묻어뒀던 옛 기억도 떠오르고 가장 가까운, 짜증만 내기 바빴던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느끼게 하죠. 조금 다른 방식의 힐링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다행히 이희준은 두원과 달리 든든한 가족의 존재로 위로받고, 지지도 받고 있다. 그는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 아내(이혜정)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아껴주니 더 힘을 받는다"고 말했다. 배고픈 시절도 있었지만 비교적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는 그에게, 연기는 유일하게 절실한 일이다. '천의 얼굴'이라는 그간의 평가처럼, 앞으로도 다작을 기대할 만 하다.
"아직 이만큼 재밌는 일이 없어요. 이번에 이승기씨랑하는 드라마 '마우스'의 대본을 보는데 너무 어려워요. 20년 넘게 하는데 연기가 왜 계속 어렵지. 더 쉬워지질 않고 더 어려워져요. 그래서 재밌어요. 영화로는 이성민씨와 함께 한 '핸섬가이즈'란 영화로 인사할 것 같아요. 뭘 하고싶다기보다 읽었을 때 가슴이 뛰고 '와 재밌겠다' 싶은 작품을 기다리고 기대하죠. 언젠가는 '연애의 목적' 같은, 지독하게 현실감있는 멜로를 해보고 싶긴 해요. 하하."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