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첫 여성 대졸 공채 입사자...첫 여성 임원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진두지휘...유리천장 돌파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주판이 없으면 은행 창구가 돌아가지 않던 시절, 입행 후에야 주판 공부를 시작했다. 의류학을 전공해 의상디자이너나 상품기획자(MD)를 꿈꿨던 그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시재가 틀려 마감을 제때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동료 직원들의 퇴근 시간을 늦추는 주범이었다.
장미경 농협은행 자금운용본부장(부행장)이 떠올린 신입 행원 시절이다. 1986년 농협중앙회 첫 여성 대졸 공채로 입사해 2017년 농협은행 첫 여성 임원이 됐다. 그의 화려한 타이틀과 달리 첫 출발은 서툴기만 했다. 그러나 장 부행장은 빅데이터 기반 고객 마케팅을 위한 '아이샘' 구축부터 펀드 판매 사업 진출까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진두지휘하며 커리어를 만들어 왔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장미경 NH농협은행 자금운용부문 부행장. 2018.08.21 yooksa@newspim.com |
◆ "불가능은 없다" 아이샘 구축·펀드 사업 '개척'
장 부행장이 은행원이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서울대 의상학과 재학 시절 학교에서 농협에 지원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운이 좋게도 합격으로 이어졌다. 준비하지 않은 직장이기에 초년병 시절엔 미숙했지만, 이후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고객관계관리(CRM)팀을 이끌 때 만들었던 '아이샘'이 대표적이다. 아이샘은 고객의 금융거래 내역을 한눈에 파악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툴이다. 6개월 동안 IT사업부 등 타 부서와 격렬한 토의는 물론 타행 염탐까지 김행한 결과물이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 회장이 농협 수신부장으로 있을 때였어요. 타행에 볼 일이 있어 갔는데, 창구에 앉자마자 '농협에 다니세요?'라고 아는 척을 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셨죠. 우리는 왜 이런 걸 못하냐고요. 지금에야 고객의 다양한 정보를 빅데이터화해서 영업에 활용하는 게 일반화됐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일일이 조회를 해서 알아보던 시절이었어요."
2001년 농협에서 처음으로 펀드 판매를 시작했을 때는 직접 판매 교육을 다니며 초기 정착을 이끌었다. 경남 거제, 제주도 할 것 없이 방방곡곡을 다니며 펀드 상품을 알리는 일이었다.
"펀드는 위험한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굳이 은행에서 팔아야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지금보다도 이자 수익에 치중해 있던 시절이라 고객에게 괜히 손해를 입힐까 두려워했어요. 펀드가 어떤 상품이고,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부터 설득해야 했습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장미경 NH농협은행 자금운용부문 부행장. 2018.08.21 yooksa@newspim.com |
◆ 생존수단은 자기PR…여성 금융인 멘토 역할도
장 부행장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자신을 알렸다.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유리천장이 높다는 금융권에서 자기 PR은 생존수단이었다. 입행했을 때만 해도 여성 책임자는커녕 결혼한 여직원도 흔치 않은 때였지만 장 부행장은 목표에 상한선을 두지 않았다.
"부녀지도과에 있을 때 당시 과장이었던 선임이 동기 부여를 많이 해 줬어요. 꼭 과장, 부장을 거쳐 책임자가 되라고 독려해 주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곳에서 주도적으로 일해 나를 알린 게 주효한 것 같아요. 그 직원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나야 경영자의 인력풀 안에 들어갈 수 있겠죠."
워킹맘으로서 고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딸의 엄마인 장 부행장에게 아이에 대한 걱정은 항상 따라오는 숙제였다.
"큰아이가 중학생일 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와 밥을 챙겨먹는 게 싫어서요. 가슴이 찢어지는 일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 농협은행의 자금운용부문을 이끌고 있는 장 부행장의 목표는 안정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다. 예금잔액에 대한 대출금 비율인 예대율,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각종 규제에 맞춰 자금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적기 채권 운용으로 중장기적인 수익성도 노리겠다는 포부다.
여성 금융인을 위한 멘토 역할도 이어 갈 계획이다. 장 부행장은 여성 금융인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최연소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단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여성을 필요로 하는데 그만큼 연한이 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해요.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고 네트워크 반경을 넓히는 등 준비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