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백종범 교수팀, 강자성 유기화합물 구조(p-TCNQ) 개발
"영구사용, 인체 흡수되지 않아 MRI 촬영 시 조영제"
순수한 유기화합물 자석으로 주목…Cell 자매지 ‘CHEM’ 저널 게재
[서울=뉴스핌] 김영섭 기자 = 자석은 일반적으로 철을 비롯한 금속으로 만든다. 그런데 금속이 아니면서 자석 같은 성질을 지니는 물질이 국내 연구진 주도로 개발됐다. 탄소 원자가 포함된 순수한 유기화합물이 실온에서 자성을 띠는 ‘플라스틱 자석’이 구현된 최초 사례다.
3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총장 정무영)에 따르면 이 대학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백종범 교수팀은 ‘TCNQ(테트라사이아노퀴노다이메테인·tetracyanoquinodimethane)’라는 유기화합물에 반응을 일으켜 자성을 띠는 구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p-TCNQ로 이름 붙여진 플라스틱 자석은 세계적 권위지 셀(Cell)의 자매지, 켐(CHEM) 8월2일자로 공개됐다.
이번 연구는 유기물 기반 자성 재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또한 강자성을 띠도록 더 많은 자유 전자를 가진 새로운 구조체를 설계해 보다 강력한 플라스틱 자석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초석을 다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왼쪽부터 유정우 교수, 신동빈 연구원, 자비드 무하마드 연구교수, 박정민 연구원, 백종범 교수 2018.08.03 [사진=울산과기원] |
어떤 물질이 자성을 띠는 이유는 내부 전자들의 스핀(spin)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기 때문이다. 스핀은 전자가 갖는 벡터(vector) 형태의 고유한 양자수로 업(up) 스핀과 다운(down) 스핀으로 표현된다.
보통 분자에서는 스핀 방향이 반대인 2개의 전자쌍이 안정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전이금속 등에서는 상쇄되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자유전자의 스핀들이 모여 상호작용하면서 한쪽으로 정렬된다. 이때 커다란 자기(스핀) 모멘트(moment)를 갖게 되는데 이런 물질을 강자성체라 부른다.
금속이 아닌 유기물에서는 대부분의 전자들이 화학결합으로 단단하게 묶이며, 항상 업 스핀과 다운 스핀이 쌍으로 존재해 서로 상쇄되므로 강자성을 띠기 어렵다.
실제로 2004년 영국 더럼대 연구진이 네이처(Nature)에 보고한 유기물로 만든 플라스틱 자석은 재현성이 검증되지 않아 금속으로 오염된 것으로 추측된 바 있다.
(A) TCNQ 용액은 중합 전의 모습으로 용액의 점도가 매우 낮고, (B) p-TCNQ 용액은 중합 후 플라스틱의 분자량이 급격히 커지면서 용액의 점도가 매우 높아졌다. (A)에서 (B)로 변하면서 물리적 뒤틀림에 생겨 결합하지 못한 자유전자(하늘색 점)가 플라스틱 내부에 많이 존재하게 된다. 2018.08.03 [자료=UNIST] |
연구진은 155℃에서 TCNQ에 고분자중합반응을 빠르게 일으켜 원자간 파이결합이 다시 형성되지 못하도록 뒤틀린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p-TCNQ)에서는 전자 스핀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지는데, 서로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스핀 방향을 정렬시켰다. 유기물도 상온에서 강자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입증한 것이다.
백 교수는 “2004년 발표된 논문이 철회되자 플라스틱 자성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졌지만, 유기물에도 금속처럼 자유전자가 많아지면 스핀을 정렬시켜 자성을 띠게 만들 수 있다”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금속 오염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연구를 진행해 자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어 “플라스틱 자석은 녹슬지 않아 영구적으로 쓸 수 있고, 인체에 흡수되지 않아 MRI 촬영 시 조영제로 활용하기도 좋을 것”이라며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강자성의 세기를 더 높이는 등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imy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