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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마리아 칼라스

기사입력 : 2017년11월21일 12:00

최종수정 : 2017년11월21일 12:00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4)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개막식 때 아테네 주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장내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하였다.
“My Life is My Work. My Work is My Life.” 라 말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페라 가수가 될 거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게 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마리아 칼라스를 두고 흔히들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오페라의 여신', '오페라의 처음과 끝'이라고들 부른다.
오페라에서 소프라노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어서 ‘무대의 꽃’, ‘디바(Diva, 여신)’라고들 한다. 음악계에서는 소프라노의 역사를 마리아 칼라스의 전과 후(B.C, Before Callas)로 나누어 비교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그녀에 견줄 만한 소프라노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힘찬 소프라노부터 어슴푸레한 메조소프라노까지를 소화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음색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대부분 소프라노들이 고음으로 갈수록 소리가 작아지는 반면, 마리아 칼라스의 극 고음은 중저음 못지않은 성량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녀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음악 속에 숨겨진 미묘한 드라마와 감정과 성격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놀라운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근성도 강했다. 서른 살 무렵 2년 사이에 한때 95㎏에 달하던 체중을 30㎏이나 감량하면서 외모까지 완벽한 여신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칼라스가 라 스칼라와 메트로폴리탄 등 전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에서 여신처럼 군림하게 된 후 평론가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 “낯선 은하계에서 길을 잃은 별 같다.”고 말했다. 천부적으로 맑고 고운 목소리를 타고난 소프라노가 아니면서도 감정을 담은 목소리와 풍요로운 연기력으로 듣는 이들의 가슴속을 파고들면서, 당대의 어떤 가수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개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칼라스를 '오페라의 여신'으로 불리게 한 대표적인 배역은 벨리니의 《노르마(Norma)》와 푸치니의 《토스카(Tosca)》에서의 주연 역할이었다. 그러나 칼라스에게 최고의 영예와 명성을 안겨 준 이 배역의 여주인공들이 극 중에서 겪었던 불행한 사건은 바로 칼라스의 삶 속에서도 일어났다.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특히 《토스카》의 유명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가사는 마치 칼라스의 생애를 요약한 듯하다. 노래로 세상을 얻었지만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파멸과 죽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1923년 태어나 1977년 54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 그녀는 1923년 12월 2일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13세까지의 소녀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본명은 마리아 칼로예로풀루(Maria Kalogeropoulos)였다. 어린 시절 뚱뚱한 외모와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주위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십대 소녀 칼라스는 오로지 한 곳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다.
대공황 이후 미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칼라스의 어머니는 1937년 그녀를 데리고 고국인 그리스 아테네로 돌아간다. 여기서 그녀의 인생을 결정해준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를 만난다. 그는 칼라스에게 성악의 기본 창법과 철학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의 매너와 기교까지도 가르쳤다.
1940년 11월 칼라스는 그리스 아테네 국립오페라극장에 데뷔해 일하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뉴욕에서 배역을 얻어 보려던 노력은 계속 실패로 끝났다. 그러던 중 마침내 1947년 기회가 왔다.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 (La Gioconda)》의 주인공 조콘다 역을 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만난 지 5분 만에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칼라스는 회고했다. 세련됨과 교양 그리고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오십대 초반의 사업가 메네기니는 칼라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언자가 되었다. 스물여섯 살의 칼라스는 28세 연상인 메네기니와 결혼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칼라스의 시대가 열렸다.
《라 조콘다》는 칼라스와 메네기니에겐 운명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녀가 이탈리아의 무대에 처음 출연한 것이 이 오페라였고,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튼 것도 바로 이 오페라의 리허설 때였다. 그리고 그녀가 메네기니를 버리고 오나시스를 따라가기로 결심했을 때도 역시 《라 조콘다》를 레코딩하고 있을 때였다. 또한 칼라스가 죽음을 앞두고 쪽지에 남긴 글귀도 《라 조콘다》였다. 자살을 결심하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 주는 오페라 속의 아리아 가사는 현실에서도 그녀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끔찍한 순간에/ 내게 남은 건 그대 뿐/ 그대만이 내 마음을 유혹한다/
그것은 내 운명의 마지막 부름/ 인생의 노상에서 마지막 건너야 할 길...”

1950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녀에게 성악가로서의 행운이 뜻밖에 찾아들었다. 칼라스는 병이 난 레나타 테발디의 대타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입성해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배역은 오페라 《아이다》에서의 주연 ‘아이다’ 역이었다.
당시 테발디는 ‘라 스칼라’극장의 여왕이었다. 그런데 테발디에게 예기치 않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아이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극장 측은 서둘러 대역을 쓰기로 했다. 테발디의 대타로 등장한 가수가 바로 마리아 칼라스였다. 칼라스는 당시 아직도 무명이었고, 거칠고 모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다’의 감정을 너무나 잘 표현하는 목소리에 넋이 나간 관객들은 열광했다. 작가 헤밍웨이는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고 칭송했고, 공연을 본 관객마다 ‘새로운 디바가 등장했다’며 환호했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칼라스는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 후 오페라 팬들은 ‘마리아 칼라스 파’와 ‘레나타 테발디 파’로 갈리기 시작했다. 라 스칼라 극장은 칼라스와 전속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1951년 스칼라극장의 브라질 공연에서 대스타였던 레나타 테발디는 신인인 마리아 칼라스와 한 무대에서 교대로 노래를 불러야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테발디는 공연 전 자신이 먼저 나서 동료들에게 앙코르를 받지 말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정작 무대에서는 자신만이 앙코르 곡을 불렀다. 당연히 테발디가 칼라스를 위시한 전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거듭했다. 한번은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서 테발디가 키를 반음 낮춰 부르자, 마리아 칼라스는 시사 주간지 〈타임(TIME)〉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테발디를 비교하는 것은 샴페인과 김빠진 콜라를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두 사람의 언행과 갈등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 신문에 좋은 가십거리로 보도되었다.
1953년, 3일 간격으로 테발디가 출연하는 《라 발리(La Wally)》와 마리아 칼라스의 《메데아(Médée)》 공연이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리게 되면서, 누가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할 지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과는 칼라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칼라스의 공연은 표가 매진됐으나 테발디의 표는 조금 남아 있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칼라스는 테발디를 밀쳐내고 1인자 자리에 등극한다. 이후 테발디는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제2의 음악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둘은 라이벌로서 경쟁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음악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쳤고 결과적으로 관객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페라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는 디바, 마리아 칼라스 <사진=이철환>

한편, 칼라스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면서 점차 극장과 지휘자와의 마찰이 잦아지게 되었다. 결국 1947년부터 시작한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단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녀는 1958년 1월 2일, 로마 오페라(Opera di Roma) 극장에서 이탈리아 대통령 조반니 그론키 앞에서 《노르마》를 공연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몸이 좋지 않았다. 결국 약을 먹고 공연하였으나, 통증과 약기운으로 인해 도중에 공연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탈리아의 청중들은 그녀를 맹비난했고, 이 일로 칼라스는 극장 측과 격렬히 싸운 후 극장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이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에서도 잠시 동안 몸담아 있기도 했으나, 이 역시 극장 측과의 불화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1958년 12월 19일 파리에서 가진 갈라 콘서트에서 칼라스는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때 청중 속에 있던 오나시스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이 내린 목소리 마리아 칼라스는 그의 예술적 명성과는 달리 사랑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운명적인 여인이었다. 1950~60년대에 오페라 계를 풍미하던 그녀였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그리 순탄치 못하였다. 칼라스에게는 자신 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사업가 메네기니였다. 그는 칼라스의 첫 남편이자 매니저로서 그녀를 세계 오페라 무대에 당당히 등장시킨 인물이었다. 칼라스는 1947년 베로나 아레나 공연에서 만난 28년 연상의 메네기니와 동거하다가 곧 결혼하였다. 이후 남편 메네기기가 그녀의 음반과 각종 활동비용을 후원하였기에 칼라스는 노래와 오페라에만 전념할 수가 있었다.
두 번째 남자는 대지휘자였던 툴리오 세란핀이었다. 그는 칼라스에게 오페라 가수로서의 자신감을 심어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세라핀과 함께한 칼라스는 한 시즌에 바그너 《발퀴레》의 브륀힐데 역과 벨리니 《청교도》의 엘비라 역을 동시에 불러 이탈리아 오페라 계를 들끓게 했다. 어떤 소프라노도 이처럼 성격이 다른 배역을 며칠 사이에 완벽하게 바꿔가며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남자는 세계적인 거부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였다. 칼라스에게 오나시스의 만남은 그녀의 비극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칼라스가 오나시스와 첫 만남을 가졌을 당시 메네기니와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부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나시스의 초대로 두 사람은 오나시스의 요트를 타고 함께 여행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이 요트 여행이 끝날 즈음에 오나시스와 칼라스는 묘한 관계로 발전되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화목했던 메네기니와의 결혼생활은 막을 내리게 된다.
칼라스는 남편이자 후원자였던 메네기니를 버리고 오나시스와 동거생활을 하게 되었다. 1960년 초에는 오나시스를 따라 상류사회의 생활과 사교계에 다니는 가운데 작품 활동이 뜸하였다. 칼라스는 메네기니와 이혼 후 오나시스와 결혼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57년 칼라스는 메네기니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하였다.
오나시스는 칼라스를 철저하게 물질주의와 향락주의에 물들게 만들었다. 무대에 오르기보다는 오나시스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고, 자신의 연주 스케줄보다는 오나시스의 스케줄에 더 몰두하며 지냈다.
칼라스는 그야말로 몇 년간을 상류사회의 향락에 빠져 지냈다. 몇몇 사람들이 그녀에게 간곡히 충고하여 다시 무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온통 오나시스 한사람 생각으로만 채워져 있던 칼라스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오나시스를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고 핑크빛 꿈에 졌어 있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결혼을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그리스 국적으로 변경하면서까지 사랑했던 오나시스가 전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재혼을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칼라스는 이 무렵 아기를 유산하였다. 그의 목소리에도 이상이 생겼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공연취소가 연이어졌고 그에 따른 관객들의 비난이 쇄도하였다.

오나시스의 갑작스런 배신으로 그녀는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황폐해져 버리게 되었다. 목소리는 더 이상 전성기와 같지 않았고 연주에 대한 열정 또한 사리진 지 오래였다. 칼라스는 1965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의 ‘토스카’역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의 세월이 다 가버렸음을 알아차린 칼라스는 프랑스로 건너가 은둔생활을 하였다.
파리에서 조용한 삶을 살아가던 중 1973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절친한 친구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함께 순회공연을 떠나보았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육체적으로 무리한 공연일정을 마친 얼마 후 마리아 칼라스는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자신을 철저하게 배신했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여자가 되기를 원했던 오나시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이 소식은 칼라스에게 견딜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이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지내다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난 3년 후인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우울증 약물 및 수면제 과다복용 등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칼라스는 고독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했다. 칼라스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메네기니의 친구에게 메네기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는 메네기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칼라스를 다시 만나볼 것을 종용했으나 메네기니는 “떠난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돌아와야 한다”며 먼저 손 내미는 것을 거절했다.
이 시대 최고 오페라 디바의 쓸쓸한 임종을 마지막까지 지켜 본 사람은 오로지 그녀의 간호사와 집사뿐이었다. 한때 자살설이 돌기도 했다. 극심한 고독에 의한 자살이라는 것이었다. 마리아 칼라스는 죽기 얼마 전 이런 얘기를 남겼다. “지금까지 노래를 사랑해 왔지만, 나에게 남는 건 사랑밖에 없더라!”

수많은 비극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미스터리 속에 이 세상을 떠나간 마리아 칼라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가 살아생전 사랑했던 그리스 앞바다 에게 해에 뿌려졌다. 그 때 그녀 나이 54세였다. 이제 그녀는 갔지만 그의 목소리는 영원히 남아 지금도 온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특별한 감동으로 적시고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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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싣는 순서] 트럼프 100일의 승부1. 규제 대못 뺀다…AI·자율주행·은행업 '더 쉽고 빠르게'2. 압도적 격차를 향한 전격전...MAGA 휘날리며3. 우크라 전쟁 100일 만에 끝내고 북미 대화 실마리4. 에너지 패권을 향해 '드릴, 베이비 드릴'5. 만능 치트키 관세...역대급 중국 압박6. 뉴욕증시 지진계 '경고음 요란'...2018년의 기억7. 증시 불확실성 MAGA 수혜주로 돌파..끝판왕은8. 관세와 달러, 복잡한 함수 관계9. 높아지는 미국의 만리장성...反이민 장애물도 산적 현재 뉴욕증시 여건과 시장이 직면한 위험은 당시와 닮았다. 시장에서 2018년을 반추하며 올해 뉴욕증시도 유사한 길을 걷지 않을까 하는 우려섞인 관측이 대두하는 이유다.특히 2018년 급락장에 앞서 출현한 충격파의 전조가 이번에도 포착되고 있다. 그 지진계의 수치가 이례적인 수준으로 치솟아 불안감은 더 크다. 바로 '블랙스완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스큐지수다. 1. 3주 전 신호 스큐지수는 S&P500의 극단적인 하락 가능성에 대한 옵션시장의 우려를 보여주는 지표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주가 폭락에 대비한 풋옵션 수요가 높을수록 그 값은 올라간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시나리오에서만 가치가 있는, 그래서 당장은 가치가 없어 싼값에 거래되는, 즉 '외가격 풋옵션'이 높은 가격에 사들여진 결과다. 외가격 중에서도 가치의 무의미함이 큰 풋옵션 수요가 클수록 상승한다. 평소에는 헐값에 팔렸던 우산이 폭풍우가 예상되자 비싸져도 수요가 생기는 현상과 비슷한 셈이다. *스큐지수는 단순히 OTM 풋옵션뿐 아니라 OTM 콜옵션도 산출 대상에 포함된다. 구체적으로는 양자의 프리미엄 시세를 역산해 산출한 내재변동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다. 다만 실제 산출 과정에서는 OTM 풋옵션의 내재변동성의 비중이 더 크다. 급격한 시세 변동을 염두에 둔 헤지 상품의 수요는 가파른 가격 상승을 기대한 콜옵션보다 가파른 하락에 대비하려는 풋옵션에 집중되기 떄문이다. 따라서 산출 과정에서 자연스레 OTM 풋옵션의 내재변동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통상 스큐지수는 100~135 사이에서 변동한다. 135를 넘어서게 되면 옵션시장 참가자들이 급격한 하락 가능성에 대해 종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고 150이 넘어가면 극단적인 하락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스큐지수는 154다. 지금부터 3주 전인 지난달 24일에는 180으로 솟구쳤다. 두 달 전부터 수위를 높이더니 급기야 180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썼다. 지금은 이때보다 낮아졌지만 추세의 층위는 과거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형성돼 있다. 옵션시장 참가자들이 들어 올린 '가드'의 높이가 한층 더 올라갔다는 얘기다. 스큐지수의 수치에 내재된 '극단적인 폭락' 가능성은 대략 30일 내 실현을 상정한다. 스큐지수를 산출하는 데 사용되는 옵션의 잔존만기 대부분이 30일 안팎이기 때문이다. 예로 잔존만기가 20일인 근월물과 48일인 차근월물이 있다면 관련 만기의 옵션에 내재된 변동성(옵션의 프리미엄 시세를 역산해 산출)을 소위 보간하는 방법을 통해 30일치를 구한다. 그렇다면 현재 옵션시장에서는 2월 중순 안에 폭락장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 그렇게 될까. 2. 2018년의 잔상 2018년 여름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 2018년을 문두에 꺼낸 것은 당시와 현재 상황이 유사해서다. 2018년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전년도 주가 상승률이 19%가 넘어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였던 해의 이듬해다. 트럼프의 법인세 감면이나 규제 완화책, 인프라 투자 확대책을 반영한 결과다. 트럼프의 고율관세 공약은 '엄포'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듬해 경제도 좋았다.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금리 인상과 시장금리 상승 우려가 부담됐지만 강한 경제가 버텨주리라는 믿음이 더 컸다. 전형적으로 '우선 먹고 배아픈 건 나중에 생각하자'는 식의 장세였다. 2018년 스큐지수는 꾸역꾸역 고도롤 높여갔다. 당해 3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수위를 끌어올리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다. 2018년 3월 하순 120이 채 안 됐던 스큐지수는 7월 150을 넘어서더니 8월 16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 달 뒤 급격한 시세 하락을 예상한 스큐지수의 경고는 적중했다. 9월 2900선을 기록했던 S&P500은 11월 2600대까지 하락해 10% 떨어졌고, 그 뒤 하락세를 재개해 12월 2300선까지 추가 하락했다. 석 달 만에 20%가 무너졌다. *S&P500은 2018년 1~2월 당시 10% 떨어져 조정 국면에 진입한 적이 있다. 주가 하락의 발단은 고용통계 호조에 따른 장기금리 상승과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우려였다. 다만 그 떄 주가 하락은 빠른 시차를 두고 격렬하게 전개됐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변동성 하락 베팅 관련 상품(크레디트스위스의 VIX 선물 가격 역추종 상품<XIV>)가격이 붕괴해 시세 변동성을 증폭시킨 일이 있었다. 소위 '볼마게돈'으로 불리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당시에도 스큐지수는 한 달 전 135를 넘어 시세 하락을 예고했었다. 3. 진짜 '오싹'할 떄는 스큐지수의 경보음이 격렬해지는 순간은 그 수치가 오히려 지금처럼 하락할 때다. 주가 하락이 시작하면 스큐지수 산출 대상에 있던 외가격 풋옵션 비중이 자연스레 작아져 스큐지수의 값은 하락한다. 흔히 '공포지수'로 알려진 VIX는 주가가 떨어져야 그제서야 반응한다. VIX는 주로 ATM(등가격) 부근 옵션의 프리미엄 시세를 바탕으로 산출되기 떄문에 이미 멀찍이 있던 외가격에서 경보음을 낸 스큐지수보다 한발 늦다. ATM 옵션은 현재 주가와 행사가격이 '거의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장 옵션시장의 주가 상승과 하락에 대한 '양방향 베팅' 상황을 보여준다. 스큐지수가 건물의 '화재감지기'라면 VIX는 화재가 난 뒤에 내부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은 셈이다. '스큐지수의 하락→S&P500의 급락+VIX 급등'의 순서는 2018년 8월의 급락장에서도 동일하게 실현됐다. 최근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고 하락한 것은 주식시장이 이 패턴을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VIX는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달 24일 14를 기록했다가 현재 19.5로 올라선 상태다. 아직은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예고한다는 '20'을 넘어선 단계는 아니지만 방향성 자체가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P500도 지난달 6일 사상 최고가에서 4% 떨어지는 등 상기의 연쇄 흐름에 동참한 모습이 역력하다. 물론 스큐지수가 과거의 폭락장이나 거친 시세 흐름을 항상 예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지연 우려와 시장금리의 급등, 위안화 약세, 주식시장의 높은 밸류에이션, 조만간 출범하게 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의 관세 염려 등 주가 하락을 시사하는 퍼즐들이 짜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급격한 시세 변동 위험이 현실화될 개연성을 높인다. 특히 위안화 약세의 파급력은 2015년 갑작스러운 평가절하나 2018년 중반 급격한 약세, 2019년 '7위안 돌파' 등의 사례를 통해서 목도한 바 있다. 옵션시장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재료들이다. 4. 실질금리의 중력장 1월 중순에 진입한 현재는 불안감이 들불처럼 번지기 쉬운 시기라는 점에서 스큐지수 경고에 담긴 의미를 배가시킨다. 과거 통계상 계절적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간의 초입이다. 페퍼스톤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VIX 추이를 월별로 평균해 연중 추이로 그려본 결과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연초에는 기관투자자가 새로운 투자 전략을 실행하거나 기존 포지션을 조정하고, 또 관련 기간에는 기업의 결산 보고가 맞물려 있어 시세가 각종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위험자산군의 시세를 주무르다시피하는 '실질금리'가 뜀박질을 재개한 점은 계절성의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 물가연동국채 10년물 금리로 본 실질금리는 지난달 초순 1.89%에서 중순 2.25%로 급히 올라섰다가 이달 초 숨고르기를 거친 뒤 최근 7일여만에 2.32%로 '레벨업'했다. 지난달 초순부터보자면 한 달 만에 43bp가 오른 셈이다. 통상 장기국채의 명목 금리가 오른다고 해도 대게 인플레 전망을 반영해 상승한 결과여서 실질금리 상승폭은 상쇄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실질금리 변동성이 작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 만에 43bp라는 상승폭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트넷 전략가의 표현을 빌려쓰자면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은 '터너(전환점)' 임박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 하트넷 전략가는 실질금리 2.5%를 주시해야 할 지점으로 꼽은 적이 있는데 2.5%에 도달하면 금융시장의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봤다. 2.5%는 2023년 10월 하순에 기록한 최근 10년 기준 전 고점에 해당한다. 당시 실질금리는 같은 해 7월 1.48%에서 2.5%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같은 기간 S&P500의 시세를 10% 떨어뜨린 배경이 됐다. 하트넷 전략가에 따르면 현재 실질금리는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2%대로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까지 주식시장의 시세가 어느 정도 방어가 됐던 것은 '강한 경제 펀더멘털이 실질금리 상승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종전의 고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면 내성 역할을 해왔던 투자자들의 믿음에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고 봤다. 스큐지수의 급등과 급락이라는 전조가 보여준 경고는 실질금리 2.5% 돌파와 함께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bernard0202@newspim.com 2025-01-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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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샤오훙수 열풍에 고무된 중국매체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이른바 미국의 '틱톡(TikTok) 난민'들이 대거 샤오훙수(小紅書)에 가입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중국 매체들이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틱톡이 오는 19일부터 미국 내 서비스를 종료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 내 틱톡 유저들이 중국의 또 다른 SNS인 샤오훙수의 글로벌 버전 '레드노트(RedNote)' 앱을 다운로드해 신규회원으로 가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 조사기관인 센서타워의 조사에 따르면 1월 8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내 사오훙수 앱 다운로드 건수는 전주에 비해 2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중국 메이르징지신원(每日經濟新聞)이 17일 전했다. 전년 대비로는 30배 증가했다. 이달 들어 샤오훙수의 다운로드량 중 22%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이 수치는 전년 동기에는 2%에 불과했다. 미국 내 틱톡 난민들이 샤오훙수로 대거 이동하면서 샤오훙수의 다운로드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중국은행보험보는 이날 샤오훙수 앱은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 87개 국가에서 다운로드 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39개 국가에서도 10위 이내의 수위권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신규 가입자가 70만 명을 넘어섰다. 이같은 소식에 중국 증시에서는 샤오훙수 관련주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현재 샤오훙수는 글로벌 유저들을 위해 원클릭 번역 기능을 개선하고 있다. 샤오훙수 열풍이 이어지자 중국 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매체들은 미국이 2018년 이후 반중 정책 수위를 지속 높이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활발한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며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17일 환구시보는 논평기사에서 "미국의 많은 유저가 자신들을 틱톡 난민이라고 자칭하며 샤오훙수로 몰려들고 있고, 이는 뜻하지 않게 미중 양국 국민의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매체는 "미국 유저의 후기를 보면, 이들은 낯선 중국어 플랫폼에 접속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지만, 중국인의 친절한 응대에 놀라워했고, 중국인의 개방적인 태도에 경계를 풀게 됐다"며 "양국 네티즌의 교류 열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졌고, 대화 주제는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미국의 정치인들은 지속적으로 중국을 비방해 오고 갖가지 부정적인 표현을 쏟아내고 있지만, 양국 국민 간에는 교류 협력을 심화하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이어 "샤오훙수 현상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수립할 때 좋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SNS인 샤오훙수 자료사진 [사진=바이두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1-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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