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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우수에 찬 영원한 방랑자, 구스타프 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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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2)

말러는 교향곡을 주로 만든 20세기 초반의 작곡가이다. 그는 9개의 완성된 교향곡과 1개의 미완성 교향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교향곡을 내용면에서 그리고 연주 시간과 규모 면에서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올려놓았다. 또한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교향곡에 성악을 주입하는 시도를 자주 하였다.
그의 《교향곡 3번》은 일반적인 교향곡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긴 약 95분 시간을 소요한다. 또 일명 ‘천인 교향곡’으로도 불리는 《교향곡 8번》은 천 명이 넘는 연주자로 편성된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교향곡 중 가장 거대한 악기 편성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또 교향곡 일부에 니체와 괴테의 철학, 중세 종교 상징주의와 영성을 표현하는 가사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은 이제 세계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기본 레퍼토리의 일부가 되어 있다.
말러의 음악은 생전에는 그리 자주 연주되지는 않았고, 반응 또한 썩 좋지 않았다. 그나마 대중들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작품은 상대적으로 짧고 고전적 형태를 띤 《교향곡 4번》과 1910년 뮌헨 초연에서 좋은 반응을 보인 《교향곡 8번》 정도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 쓴 곡들은 그의 생전에 연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부터 레너드 번스타인에 의해 말러의 교향곡은 다시 주목을 받아 활발하게 연주되었으며, 말러 또한 오늘날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로 위상이 재정립되었다.

말러는 방대한 악기 편성과 거대한 구상을 가진 9개의 교향곡을 완성하여, 후기 낭만파의 웅대하고도 화려한 양식 속에 독일의 전통을 꽃피웠다. 그는 또 가곡 분야에서도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이처럼 작품이 교향곡과 가곡에 한정되고, 더구나 이질적인 분야가 훌륭히 융합된 예는 음악사상 드문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자신의 표현대로 말러의 교향곡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나 다름없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그의 교향곡 속에 담아내려는 듯 갖가지 악기들을 총동원해 온갖 신기한 소리들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교향곡에서는 알프스 산중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방울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군대의 신호나팔 소리나 술집의 밴드 소리가 끼어들기도 한다. 간혹 거대한 망치가 악기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하며, 썰매방울 소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회초리나 딱따기 같은 이상한 물건들도 오케스트라의 타악기로 당당하게 등장한다.
교향곡을 통해 인생을 표현하고자 했던 말러에게는 기존에 주로 사용되던 악기들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말러는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교향곡 6번과 7번에 사용된 소방울에 대한 일화이다. 말러는 오스트리아 산중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소방울 세트를 특별히 주문 제작했다. 그리고 리허설과 연주를 할 때마다 항상 가지고 다녔다. 1906년 11월, 뮌헨에서 교향곡 6번을 리허설할 때는 연주자의 목에 커다란 소방울을 걸게 한 후 앞뒤로 오가게 했다. 음악적 표현을 위해선 이처럼 우스꽝스런 연주법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말러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연주가들이 수시로 무대 앞뒤를 들락날락하기도 하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하면, 악기의 관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연주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말러가 악보에 지시한 특별한 음향효과 때문이다.
교향곡을 연주할 때 성악가들이 입장하는 시점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말러는 교향곡 속에 인간의 목소리를 편성함으로써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된다. 말러의 교향곡 2번과 3번, 4번, 8번과 《대지의 노래》에 등장하는 인간의 목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여러 악기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성악이 가미된 교향곡이라 해도 《교향곡 8번》과 《대지의 노래》를 제외한 나머지 성악 교향곡의 경우 모든 악장에 성악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독창자들이 언제 등장해야 할지, 합창단이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야 할지를 사전에 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러의 10개 교향곡 중에서도 2번 《부활》은 가장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품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거대한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가 이 제2번 교향곡의 작곡에 매진하고 있던 1889년에는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11월에 있었던 교향곡 1번의 초연은 말러에게 큰 실망을 맛보게 한다. 그에게 연이어 닥친 이런 불행은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교향곡 제2번의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제1악장은 ‘장송행진곡’으로 거인이 무덤에서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되며, 2악장에서는 과거의 회상이 순간의 햇빛처럼 찬란하게 그려진다. 3악장에서는 꿈같이 아름다웠던 현실이, 4악장에서는 독창자 알토가 등장해 ‘신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라고 노래하며, 마지막 제5악장에서는 부활을 노래한다. 이 제5악장은 부활교향곡의 백미로 가공할 만한 스케일과 신비감을 자아낸다. 또 여기에는 소프라노와 알토의 독창과 중창, 혼성합창이 골고루 사용되고 있다.

이 말러의 《교향곡 2번》을 가장 잘 지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정통 음악인이 아닌 금융잡지사 사장 길버트 카플란이다. 1965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말러의 2번 교향곡 ‘부활’을 숨죽이며 듣던 23살의 청년 카플란은 번개가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날부터 청년은 자신이 죽기 전에 말러의 '부활'을 직접 지휘해보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마음에 품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이라곤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경영학도였다.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카플란은 월가로 진출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그는 청년시절의 꿈이었던 말러의 ‘부활’을 직접 지휘해 보기 위해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1983년 카플란이 말러의 ‘부활’을 처음 들은 지 18년이 지났을 때, 그는 마침내 카네기홀 무대에 올라 아메리칸 심포니를 이끌고 ‘부활’을 지휘했다. 그가 처음 ‘부활’을 들었던 바로 그 장소이자 그 오케스트라였다.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의 지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호응을 받는다. 그의 지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전 세계에서 지휘 요청이 쏟아졌다. 런던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 등으로 부터…

말러의 천인교향곡 연주 공연 <사진=이철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1860년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 칼리슈트의 유대인 집안 열네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이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그가 여섯 살 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열다섯 살이 되면서는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연주법과 화성학, 작곡법을 배웠다. 3년 뒤에는 빈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안톤 브루크너가 거기서 강의하고 있었다.
말러는 대학에서 음악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도 공부했다. 대학에 다니던 중 첫 주요 작곡 시도로 칸타타 《탄식의 노래》를 지었다. 그러나 이 곡은 콩쿠르에서 낙방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작곡가가 아니라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기로 마음을 바꾼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여 가난한 집안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말러의 지휘자로서의 삶은 1880년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바트 할의 여름 극장에서 시작되었다. 그 다음해부터는 차례로 큰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 자리를 가질 수가 있었다. 1881년 류블랴나, 1882년 올로뮈츠, 1883년 빈, 1884년 카셀, 1885년 프라하, 1886년에는 라이프치히로 갔다.

1887년, 그는 몸이 아프던 아르투르 니키쉬를 대신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하며 명성을 확고히 다질 수가 있었다. 이처럼 점차 지휘자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경제적인 안정을 얻었고 명성도 높아지게 된다. 1891년 그는 함부르크 오페라와 생애 첫 번째 장기계약을 맺었고 거기서 1897년까지 머물렀다. 작곡가로서의 활약이 시작된 것도 이 기간부터인데, 그즈음 교향곡 1~3번을 작곡하였다.
1897년 37세가 되던 해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 들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적 지위인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의 감독직을 제안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당시의 법에 따르면 유대인은 맡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말러는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교로 종교를 바꾸게 된다.
그가 감독으로 재직한 10년 동안 빈 오페라의 레퍼토리와 예술적 기준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는 그의 치열한 성격과 완벽주의와 완고한 의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기간에 말러는 교향곡 4번부터 8번, 《뤼케르트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북 치는 소년》 등을 작곡했다.

한편, 말러의 개인적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1902년 말러는 알마 쉰들러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그런데 첫째 딸은 성홍열로 다섯 살에 죽게 된다. 딸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져 있던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든다. 자신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사로부터 운동을 제한하고 걸음 수를 세라는 처방을 받았다. 또 예술적 문제에 대한 그의 완고함은 오페라단 안팎에서 많은 적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에 언론의 반유대주의적인 공격은 그를 더욱 괴롭혔다. 결국 1907년 빈 오페라 감독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로부터 지휘자 제안을 받았다. 1908년 거기에서 한 시즌을 지휘했지만, 이듬해 토스카니니에게 밀려나게 된다. 때마침 뉴욕 필하모니에서 요청이 있어 1908년에서 1911년까지의 세 시즌 동안을 지휘했다. 이 시기에 그는 《대지의 노래》와, 마지막 완성작이 된 《교향곡 9번》을 완성했다.

그즈음 말러에게는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겹쳐서 일어났다. 우선 부인 알마의 외도이다. 말러의 부인 알마 쉰들러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팜므 파탈(Femme fatale)이었다. 그녀는 말러의 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부인이었고, 유명한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부인이기도 했다. 이처럼 알마는 세 번이나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 셋 중 누구의 성(姓)을 따를 것인지 난감해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879년 비엔나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알마는 미모와 지성으로 당시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었다. 여기에 17개의 가곡을 작곡한 재능있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알마의 아버지는 비엔나의 여러 지식인, 예술가들과 친분을 맺고 지냈다. 그중에는 구스타브 클림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마는 22세 때 말러에게 청혼을 받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당시 그녀의 부모는 극렬히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말러의 나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말러는 알마보다 20살이나 많았고 심지어 장인보다도 한 살이 더 많았다. 알마와 말러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치가 않았다. 알마는 음악과 회화에 조예가 깊었으나, 결혼으로 인해 예술활동을 계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말러 또한 알마가 예술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알마는 자기의 예술에 대한 열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예술가들과의 스캔들을 자주 일으켰다. 첫 상대는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였다. 이 사실을 안 말러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를 찾아가 자문을 받기까지 했다. 이후 말러가 1911년 세상을 떠나자 알마는 그로피우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알마는 그로피우스와의 결혼생활 중에도 여러 다른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1920년 그로피우스와 이혼하고 소설가 베르펠과 결혼했다.

말러의 또 다른 불행은 그의 만성적인 심장병현상이었다. 1911년 2월, 그는 연쇄상구균 감염으로 인한 발열이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연을 가졌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결국 심장발작 증세로 1911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나이 50세였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빈 외곽의 그린칭 공동묘지에 잠든 그의 딸 옆에 안장되었다. 이에 따라 작곡 중이던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말러의 인생은 결코 평탄하지가 않았다. 남들은 한두 개도 겪기 어려운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여러 가지 안고 살아가야 했다. 무엇보다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 출신이어서 당시 주류사회에 끼기가 어려웠다는 것, 열네 명의 형제 중 여덟 명이 어린 시절 사망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왔다는 것, 가톨릭으로 개종은 했지만 유태인이었기에 유무형의 차별을 당했다는 것, 사랑하는 딸을 다섯 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저세상으로 보낸 아픔을 안고 살았다는 것. 이뿐만 아니라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공공연한 불륜을 지켜봐야 했고, 자신의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까지 안고 살아야 했다.

말러는 스스로 이런 탄식을 했다고 한다.
“나는 3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안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대인으로서. 그 어디에서도 이방인이었고 환영받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닥친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커다란 영감과 에너지가 되어 위대한 말러 음악을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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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發 쇼크에 리츠업계 초긴장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 가치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장 리츠 가운데 사실상 첫 디폴트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개별 리츠의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며,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관련 시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필요 시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무너진 해외 부동산 가치…유동성 위기 예견됐나 30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투자운용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내 대형 독립계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제이알투자운용이 2020년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시킨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다. 벨기에 브뤼셀 중심부에 위치한 파이낸스타워와 미국 뉴욕 맨해튼의 498세븐스애비뉴 등 대형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해 왔다. 그러나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가 떨어지면서, 단기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27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매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해외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신 지연 등을 이유로 한 달 만인 2월 이를 자진 철회했다. 핵심 자산인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감정평가액이 급락하면서 현지 대주단과 약정한 담보인정비율을 초과했다. 임대료 등으로 발생한 현금 흐름을 대출 상환에 우선 충당하도록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 현금 동결)이 발동되더니 기업회생으로 이어졌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차입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헤지(환율 고정 상품) 정산금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의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며 "캐시트랩 해소를 위해서는 약 7830만유로(한화 약 1354억원)의 현지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제히 꺾인 리츠주…시스템 리스크 확산은 기우? 이 같은 악재에 상장 리츠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거래 동향을 살펴보면 이날 리츠 종목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큰 폭으로 미끄러진 것을 비롯해 한화리츠, 삼성FN리츠, SK리츠,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뚜렷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리츠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다. 한국리츠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개 리츠의 시가총액은 9조7778억원을 기록했다. 리츠 시장은 지난해 1월 8조103억원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9조2048억원을 돌파했고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몸집을 불려왔다. 그동안 일반 주식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최근 코스피 강세장 속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로 주목받은 결과다. 법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확실한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투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호재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전체 금융 시장으로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 리츠 22개사 중 해외 자산을 보유한 비중은 14.3%이지만,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하면 해외 자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 리츠의 총투자 자산 대비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파이가 극히 작아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자산 구성 및 투자 유형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주택이 44.0%로 가장 컸다. 오피스는 35.3%에 머물렀으며 리테일 6.4%, 물류 6.4%, 혼합형 3.6%, 기타 3.2%, 호텔 1.1% 순으로 나타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해외 오피스 리스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제이알리츠의 최근 기준 발행 잔액이 약 4000억원으로 전체 크레딧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리츠가 발행한 회사채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내 크레딧 시장 심리에 타격을 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이벤트가 단기사채 미상환으로 불거진 만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 시장으로 파급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최근 풍부한 단기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어음 금리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과거의 신용 위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국토부 방화벽 구축 총력전…상장리츠, 자산 다각화 과제로 다만 해외 부동산 자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리츠 종목들은 당분간 위축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는 KB스타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디앤디플랫폼리츠, 이지스레지던스리츠 등이다. 이 중 해외 자산 구성 비중이 100%인 곳이 3개사, 50% 이상이 2개사, 50% 미만이 3개사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디앤디플랫폼리츠는 일본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에 간접 투자 중이며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미국 소재 임대주택 및 대학 기숙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 자산의 장부 가치 비중이 각 리츠 총자산의 5~30% 수준에 그쳐 전반적인 쏠림 현상은 없다"면서도 "해외 자산을 보유한 개별 리츠의 경우 현지 대출 약정 위반에 따른 현금 흐름 통제와 국내 채무 차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한파도 부담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7% 떨어졌다. 고점을 찍었던 2022년과 15%나 증발했다. 런던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폭락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방화벽 구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김이탁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 한국부동산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점검 회의를 열었다. 리츠 시장 전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응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실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일 합동 검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대주주가 되는 앵커리츠를 공급하고, 변동성이 통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채권 및 자금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태 수습을 넘어 리츠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장 리츠의 주가를 궤도에 올려놓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된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우량 자산 편입과 리츠 간 합병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자산관리회사 역시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운용 현황과 배당 전략 등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을 거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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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방해' 尹, 항소심 징역 7년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방해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9일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국무회의 심의권 침해', '계엄 관련 외신 허위 공보' 등이 유죄로 뒤집히며 윤 전 대통령의 형량이 1심보다 2년 가중됐다. 내란전담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윤성식)는 이날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결정으로 재판은 생중계됐다.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된 '공수처 체포방해'·'국무위원 7인 심의권 침해'·'계엄 선포문 사후 작성·폐기' 등 혐의에 대한 윤 전 대통령 측 항소를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대 쟁점이었던 공수처 체포방해 혐의와 관련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직권남용죄 내용 자체가 내란 우두머리죄의 폭동 실행행위에 해당해 사실관계와 증거가 중첩되기 때문에, 직접 관련성 있는 죄에 해당한다"며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방해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9일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뉴스핌 DB] 또한 "피고인은 1차 체포영장 집행 이전부터 경호처 차장에게 수사기관의 공관촌 진입에 대한 불만을 발언하는 등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묵인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피고인이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해 특정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어도, 피고인은 경호처 차장과 공모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계엄 국무회의 당시 교육부 장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국가보훈부 장관·문화체육관광부 장관·환경부 장관·고용노동부 장관·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윤 전 대통령의 소집 통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국무회의는 국가의 중요 정책이 전 정부적 차원에서 충분히 심의될 수 있도록 운영돼야 하므로, 국무회의 소집 통지는 모든 국무위원에게 이뤄져야 한다"며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죄를 인정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소집 통지를 받았으나 국무회의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국토교통부 장관·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관련해서도 "국무회의 소집 통지는 모든 국무위원에게 참석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뤄져야 한다"며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한다고 봤다. 1심은 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된 '계엄 관련 외신 허위 공보' 혐의도 유죄로 뒤집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PG(프레스 가이던스) 중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지 않았다'는 부분은 경찰과 군 병력이 국회를 폐쇄한 사실 등에 비춰보면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며 "객관적 사정과 달리 과장하거나 단정적 표현을 사용해 잘못된 인식을 갖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양형과 관련해 "헌법은 계엄 선포에 앞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등 범행은 헌법을 위반해 그 위법의 정도가 크다"고 질타했다. 또한 "허위 PG 관련 범행은 계엄 선포에서 저질러진 피고인의 잘못을 은폐하는 것은 물론, 계엄의 적법성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외신에 전달해 국민의 알권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비난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두차례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한 범행은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자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죄질이 나쁘다"며 "설령 (공수처의) 수사권에 의문이 있어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함에도 물리력을 동원하고, 경호처 공무원을 사병화 해 사용하려고 했고, 공수처 검사와의 물리적 충돌의 위험을 야기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날 짙은 남색 정장에 흰색 셔츠, 노타이 차림으로 법정에 나온 윤 전 대통령은 선고 내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다만 일부 혐의가 유죄로 뒤집히는 대목에서 옆자리에 앉은 변호인과 귓속말을 나누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2026.04.29 pmk1459@newspim.com hong90@newspim.com 2026-04-2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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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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