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배우 정우성(43)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절대 빠져서는 안될 사람이 있다. 김성수 감독. 그는 정우성을 10대의 민(영화 ‘비트’, 1997)으로 데리고 와 ‘한국의 제임스 딘’이란 수식어를 안겨줬고, 이듬해 권투 선수 도철(영화 ‘태양은 없다’, 1998)의 옷을 입혀 정우성을 20대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서른 즈음에는 화려한 창솜씨를 지닌 여솔(영화 ‘무사’, 2001)로 배우 정우성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후 김성수 감독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된 정우성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고, 40대의 정우성은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이 새롭게 짠 판 한가운데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악인이 됐다.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의 네 번째 만남, 영화 ‘아수라’가 지난달 28일 베일을 벗었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47만6513명의 관객을 동원,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최다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극장가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아수라’를 하겠다고 했을 때 제가 아는 유일한 정보는 김성수 감독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거야’라고 말한 것뿐이었죠.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이었거든요. 다만 어떤 시나리오라든지 잘하자는 마음이었어요.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선배인 감독님이 명성을 되찾는 작업에 일조하고 싶었죠. 물론 시나리오 보고는 당황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웃음). 근데 그만큼 궁금하기도 했죠. 이해했다기보다는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그게 뭘까, 그걸 계속 파헤쳤어요.”
김성수 감독 하나만 믿고 출발한 이 영화에서 정우성이 맡은 역할은 생존형 비리 형사 한도경이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치료비를 위해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온갖 더러운 뒷일을 처리해주며 돈을 벌어왔다. 불행하지만 그럭저럭 평온했던 삶. 하지만 박성배 검거에 혈안이 된 검찰 김차인(곽도원)의 등장으로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무슨 스트레스가 이렇게 많나 싶었어요. 근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아주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폭력과 악행이 일어나는 곳, 거기서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사실 전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연기하는 동안 꽤 힘들었죠. 항상 찌들어 있었어요. 몸은 안힘든데 왜 이렇게 힘들까 생각해봤더니 늘 도경의 스트레스 안에 있어서더라고요. 감독님께 ‘나 힘들어 죽겠다’고 했을 정도였죠. 근데 감독님은 좋아했다던데요? 감독으로서 원했던 바였나봐요. 그래서 이를 갈면서 작업했죠(웃음).”
그렇게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하던 그는 이내 “사실 내가 김성수 감독을 좋아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며 김성수 감독을 치켜세웠다.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만의 에너지와 힘, 그 덕에 또 한 번 초심을 찾았다고 했다. 물론 함께 작업한 배우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 등도 김성수 감독 못지않게 좋은 자극제가 됐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타협하지 않아요. 계속 질문해요. 촬영하면서도 계속해서 배우가 낼 수 있는 소리와 반응에 고민하게 하죠. 자극제 역할을 되게 잘해요(웃음). 게다가 배우들 역시 자극이 많이 됐어요. 짜릿하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정말 그랬죠. 서로 보고 느끼면서 습득하고 배우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거기다 모두들 따뜻하게 서로를 바라봐주니까 이심전심, 마음이 통한 거죠.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연기하면서도 존중이 커지고 신뢰가 쌓이면서 애정이 됐어요. 서로가 원한 것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맞춰 가기도 했고요.”
감독과 배우의 신뢰, 배우들 간의 존중. 이 모든 게 진심이었으니 관객에게도 보이지 않을 리 없다. 실제 김성수 감독을 비롯한 다섯 배우들의 호흡은 피투성이가 돼 싸우는 동안에도 스크린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에 정우성의 절친인 배우 이정재, 그리고 정우성의 차기작 ‘더 킹’을 함께한 조인성 역시 부러움을 표했다.
“(이)정재 씨가 영화 보고 너무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10년, 20년 끝까지 업계와 팬들에게 회자될 영화가 될 듯하다고요. 화면 안에서 존재하는 대상들끼리의 하모니, 거기서 빈틈을 발견할 수 없어서 너무 좋아 보였고 그 작업과정이 얼마나 재밌었을까 상상하게 돼서 그런 듯해요. (조)인성이는 ‘아수라’ 보니까 ‘더킹’은 애들 영화라고. 어쨌든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에게 부럽다, 질투 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라 너무 뿌듯했죠. 영화에서 문선모(주지훈)가 그러잖아요.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고. 전 이긴 거예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