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극장에 오래 걸리지 못해 기억하는 이가 많진 않겠지만, ‘좋은 친구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지난 2014년 여름에 개봉한 작품으로 우발적인 사건으로 의리와 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세 남자의 심리를 그린 범죄 드라마다. 흥행 면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이 영화가 꽤 또렷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건 스크린 속 배우 주지훈(34)의 연기 덕이다. 당시 인철 역을 맡은 주지훈은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 이런 배우를 몰라봤다는 사실에 괜스레 머쓱해질 정도로 배우로서 면모를 제대로 발휘했다.
그래서였다. 주지훈이 쟁쟁한 선배들과 ‘아수라’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을 때 걱정보다 기대가 앞섰던 건. 단순한 비주얼적 조합이 아닌 베테랑 연기장이들과 주고받을 주지훈의 연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더욱이 이 영화는 그때처럼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결과를 묻는다면 성공이다. 영화가 베일을 벗은 후, 주지훈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제 몫을 해낸 주지훈은 그렇게 또 한 번 기대를 충족시켰다.
영화 ‘아수라’가 28일 베일을 벗는다.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지훈 외에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정만식, 김원해가 출연했다.
“시나리오 받고 처음 든 생각은 ‘오~ 재밌다’였어요. 특히 우리 영화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위트가 있어서 실소가 터지는 부분이 많았죠. 뭔가 되게 진지한데 미학스러워서 웃긴 부분도 있었고요. 또 전체적으로 시나리오가 강약 중간약이 있어서 재밌게 봤어요.”
그렇게 주지훈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나리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문선모. 한도경(정우성)을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 후배 형사다. 하지만 우연히 박성배(황정민)와 한도경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박성배의 식구가 되고 그의 인생은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특히 그는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선에서 악으로 변하는 캐릭터다.
“선모를 쉽게 이해했어요. 전 인간은 대부분 닮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면서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어쩔 수 없음의 연속이죠. 또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능력이 부족해 생각보다 많은 걸 방관하고요. 그래서 전 영화 속 극적인 사건보다는 일상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어요. 또 사실 인간도 결국 동물이잖아요. 다만 사회적인 동물이라 교육을 받을 뿐. 그렇게 보니까 이해가 편했어요. 성배는 본능에 더 가까운 사람이고 선모는 교육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걸 잘 받아들이고 행하는 캐릭터죠. 선모가 성배에게 가서 잔인한 행동을 왜 그렇게 쉽게 하느냐고 묻던데 그건 자기가 맡은 미션에 대한 책임감이었다고 봐요.”
뜻밖에도 주지훈은 문선모의 변화도 악행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대한 간결하게 접근한 덕이다. 하지만 이해가 쉬웠다고 해서 표현까지 수월했던 건 아니다.
“뭐든 심플하게 가려고 해요. 이해되지 않은 걸 억지로 하는 게 힘든 타입이라(웃음). 이해가 안되면 (작품을)못하는 거고 이해가 되면 달려드는 거죠. 문선모는 사실 이해가 쉬웠다는 거지 구현이 쉽진 않았어요. 연기적으로 감정을 끌어내고 행위를 하기에 난이도가 높았죠. 근데 그걸 또 말로 명확하게 설명도 못하겠어요(웃음). 그런 거죠. 어떤 신을 찍었어. 감독님도 괜찮고 나도 괜찮아. 근데 석연치 않아. 샷도 좋고 다 좋은데 뭔가 아쉬워. 하지만 서로 딱 짚어 말을 못해. 정확히 뭔지 모르는 그런 거죠. 근데 또 그걸 계속 찾아내 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싫지 않았죠.”
과정이 마냥 쉽진 않다 보니 알게 모르게 견뎌야 할 시간도 많았다. 게다가 주지훈은 이번 영화로 난생처음 액션에도 도전했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된 건 네 명의 ‘귀여운(?) 형들’이었다. 주지훈의 말을 옮겨적자면 황정민과 곽도원은 순박한 귀여움이 있는, 정우성과 정만식은 의외의 귀여움이 있는 형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수라’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도 그에게 좋은 에너지다.
“우리 형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좋은 사람들이냐면 제가 (정)우성이 형을 넥타이로 목조르는 장면이 있어요. 넥타이는 매듭이 있는 데다가 제가 액션이 처음이라 흥분했죠. 그래서 우성이 형 목을 정말 세게 조인 거예요. 근데 형이 자기가 티를 내면 제 감정이 안나올까 봐 참은 거죠. 컷하니까 헉헉거리더라고요. 우리가 하도 장난을 많이 치니까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죠. 근데 그 와중에 연기에 방해될까 봐 저한테는 말 안하고 조감독을 따로 불러서 컷하면 바로 자기한테 와달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그걸 들었죠. 저도 형들이 좋아서 계속 집중하고 있으니까(웃음). 근데 정말이지 전 우리 형들이 진짜 너무 귀엽고 좋아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랑 하니까 기운도 나는 거죠.”
그 후로도 주지훈은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우리 형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원래 쌍방인 법. 그가 형들을 믿고 따르는 만큼 주지훈 역시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동생이 됐다. 실제 주지훈은 이름만 들어도 다가가기 무서운 그 형들 속으로 들어가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서운(?) 형들을 사로잡은 비법을 묻는 말에 주지훈은 “도발적인 귀여움?”이라며 웃었다.
“익숙해져서 그렇지 처음엔 되게 떨렸어요. 무섭다기보다는 관객으로서, 후배로서 너무 흠모하는 사람들이라 잘 보이고 싶고 친해지고 싶었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거의 촬영 초반이었거든요. 그때 뒤풀이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진짜 서서 먹었어요(웃음). 지금은 일 년이나 지났으니까. 물론 제가 선배, 어른들을 어려워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잖아요. ‘쟤가 나를 불편해한다’고 생각하면 밉진 않지만, 거리가 생기니까요. 친해지는 비법이요? 알코올? 그때 말했잖아요, 한 시간 만에 소주 네 병 마셨다고. 제가 술이 센 사람이 아니거든요. 몸이 연약하게 태어났어요(웃음). 근데 긴장해서 그렇게 마신 거라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주지훈은 이 영화로 “화이팅해서 힘든 세상, 모두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는 ‘아수라’ 속 주인공들과 달리, 이 어쩔수없음을 함께 견뎌보자고도.
“우성이 형 마지막 내레이션에 나오잖아요. ‘이럴 줄 알았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실제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죠. 우리가 정말 목숨 걸고 사는데 청년들은 취업도 잘 안되고 4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 당하고, 다들 힘들잖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린 극적으로 표현했고, 영화니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거로 끝이 나는데 반대로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이 어쩔 수 없음이 우리 개인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화이팅해야죠. 영화는 저렇게 끝났지만(웃음), 어찌 됐건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힘든 세상 잘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어쩔 수 없으니까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살자고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