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김세혁 기자 사진 김학선 기자] 배우 이주승(26)이 신동엽 감독의 ‘대결’로 상업영화 첫 주연에 도전한다. 22일 개봉하는 ‘대결’은 청룽(성룡)의 트레이드마크 취권과 ‘현피’ 등 사회문제를 결합한 퓨전액션. 사실 ‘대결’은 중국 고전무술을 기반으로 한 점에서 여성관객의 외면이 예상됐고, ‘충무로 불사조’ 신동엽 감독 작품이란 점에서 험난한 행보(워낙 참패한 작품이 많다)가 예고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대결’은 신선했다. 여기저기서 “생각보다 괜찮다”는 호평이 이어지며 신동엽 감독의 입이 귀에 걸렸다.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엔 당연히 이주승이 자리한다. 액션스쿨까지 다니며 취권을 익힌 이주승은 ‘대결’의 이야기를 이끄는 동시에 절대악 오지호와 맞대결로 강렬한 액션쾌감까지 선사한다.
“요즘 세상에 무술영화라니, 솔직히 걱정했죠. 매니저 형한테 스토리를 들었을 때 ‘그게 뭐야’ 싶었어요. 근데 시나리오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죠. 제가 연기한 풍호 캐릭터도 좋았고요. 반응이 괜찮아서 기분이 참 좋아요. 취권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 옛날 냄새가 나지만 재밌게 봐주셔서 기쁩니다.”
풍호는 열혈형사인 형 강호(이정진)와 달리 하루하루가 팍팍한 취업준비생. 일자리를 찾기보다는 현피에 재미가 들려 가족들 속깨나 썩이는 인물이다. 온라인게임에서 유래한 신조어 현피는 게임 속에서 시비가 붙은 유저들이 실제로 싸움을 벌인다는 뜻. 신동엽 감독은 한때 사회문제였던 현피를 영화에 덧대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무술영화의 흐름에 변화를 줬다.
“취권 하면 성룡이고, 딱 떠오르는 게 1970~80년대잖아요. 당연히 요즘 관객에겐 지루할 수 있죠. 근데 감독님이 현피를 끼워 넣어서 현대적 감각을 살렸어요. 젊은 영화 팬들이 몰입할 수 있게 말이죠. 물론 추억을 자극할 부분도 부각했어요. 세련된 맛과 올드한 분위기를 믹스한 셈이죠. 취업이 힘든 요즘 세태를 반영한 풍호의 상황설정도 마음에 들었고요.”
이주승은 ‘대결’로 여러 가지 첫 경험(?)을 했다. 상업영화 주인공 타이틀이 그렇고, 취권도 마찬가지였다. 유년시절부터 9년이나 태권도를 익힌 이주승이었지만 취권을 우리나라 영화에서 선을 보이는 건 본인 입장에서도 생경했다.
“덜컥 부담되더라고요. 태권도(4단)는 예전에 한 거라 다리 찢을 때 덜 아픈 정도였죠. 마냥 걱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다 싶어 액션스쿨로 향했어요. 1주일에 네 번 나가 기초를 익혔죠. 다년간 취권을 갈고 닦은 사부와 하루 4시간씩 연습했어요. 남는 시간엔 하체 운동도 하고 체력도 길렀고요. 그렇게 꼬박 넉 달을 보냈어요. 근데도 화면을 보면 엉성해서 민망해요.”
영화 '대결'에서 이주승이 선을 보이는 취권 <사진=(주)스톰픽쳐스코리아> |
이야기가 나온 김에 취권에 얽힌 에피소드를 더 들어봤다. 극중 풍호는 술을 한 방울도 못하는 캐릭터다. 술을 마셔야 초식이 나오는 게 취권인 탓에 풍호는 술부터 배우느라 고생깨나 한다. 이주승은 “술은 원래 먹는다”면서도 “취권은 어렵기도 하지만 부끄러웠다”고 얼굴을 붉혔다.
“풍호와 달리 쉴 때는 술을 가끔 즐겨요. 술이 세진 않아도 소주 한 병 반 정도는 마시죠. 취권은 어렵기도 했지만 정말 부끄러웠어요. 상암동 액션스쿨이 되게 큰데 사람들이 다 쳐다봤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사부로 나오는 신정근 선배랑 그 과정을 꿋꿋하게 버텼죠. 덕분에 황노인(신정근)과 풍호의 관계가 꽤 자연스럽더라고요. 몸짓도 그렇고 대사도 툭툭 잘 나왔어요.”
영화 속에서 풍호와 부딪히는 상대역 한재희(오지호)는 성공한 게임회사 CEO이자 폭력에 주린 사이코패스다. 반듯한 외모에 젠틀한 성품으로 유명하지만 밤마다 희생자가 될 무도가들을 찾아 헤맨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오지호는 이주승과 비교해 체격도 크고 극중 이미지도 정반대. 신동엽 감독은 취준생과 재력가를 대비해 극적 쾌감을 극대화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죠. 풍호랑 한재희는 여러 면에서 정반대 캐릭터입니다. 감독이 의도한 바대로요. 풍호는 돈도 없는 취준생인데 재희는 뭐든 가졌죠. 서로 사용하는 무술도 달라요. 취권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감싸 안는 유려한 무술이고, 재희는 파괴력 있는 실랏을 써요. 체급도 높낮이도 서로 다르죠. 강하게 대비되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한 거예요.”
저예산영화 ‘소셜포비아’에서 변요한, 류준열과 두각을 드러냈던 이주승은 ‘대결’ 속 풍호가 무명일 때 자신과 닮았다며 웃었다. 주변에도 취준생이 많아 참고가 많이 됐다는 그는 배우 역시 직업이기에 느끼는 고뇌나 좌절은 일반인과 똑같다고 말했다.
“배우도 직장인이나 마찬가지에요. 배역은 하난데 몇 백 명이 몰려드니 취업 준비하는 거랑 다를 바 없죠. 저도 오디션을 하도 많이 봐서 기억도 안 날 수준이고요. 자기 스펙, 화술, 기술로 과연 오디션을 통과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이죠. 전 독립영화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상업영화는 흥미가 있어야 하니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상업영화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뭔가 줄이는 걸 배웠죠.”
‘대결’로 또 한 번 껍질을 깬 이주승은 이번 영화를 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 뭣보다 배려와 그에서 비롯되는 시너지를 배웠다며 웃는 이주승. “연기는 호흡”이라며 엄지를 들어보이는 그가 다음에 보여줄 미덕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배려심을 얻은 게 크죠. 연기는 호흡이더라고요. 자기 분량, 자기 것을 넘어서 다른 배우를 배려하는 게 중요해요. 함께 한 신정근, 오지호, 이정진, 손은서 선배가 다 그랬어요. 오지호 선배의 경우, 경찰서에서 속삭이는 신이 있는데 제 감정이 더 중요하다며 1대1 장면을 만들어줬죠. 원래 선배가 메인인 신인데 말이에요. 이정진 선배는 아예 자기는 특별출연이라며 ‘잔소리 안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고요. 선배들의 그런 배려가 결국 작품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죠.”
[뉴스핌 Newspim] 글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 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