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두 차례에 걸쳐 김수현 작가의 가족극을 무사히 마친 남규리(31)가 배우로서 또 한 번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2010)에서 재혼 가정의 막내딸 초롱이를 연기,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선보인 그는 최근 종영한 SBS ‘그래 그런거야’에서 엄마의 꼭두각시 딸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씩씩한 나영이로 변신했다.
캐릭터가 남달랐던 만큼, ‘그래 그런거야’를 통해 남규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기자의 길을 걸은 지 어언 7년째인 그는 ‘그랜 그런거야’를 작업하며 더 의연해지는 법을 배웠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배우, 스태프, 작가가 이루는 하모니를 몸소 느낀 게 가장 큰 수확이다.
“어릴 때는 뭣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빴어요.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죠. 그런데 ‘그래 그런거야’처럼 선생님들과 함께 작품을 하다 보니 내 감정에만 빠져 연기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변 상황에 따라 역할과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잘 표현하는 게 우선이었죠.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로워져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이제는 관찰자 시점에서 드라마를 보는 힘이 조금 생긴 듯해요.”
남규리가 그린 나영은 씩씩하고 밝았다. 무엇보다 사랑에 있어서 적극적이었다. 취업준비생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세준(정해인)에 호감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드라마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물론 난관도 겪었다. 극중에서 겹사돈 사이인 두 사람은 넘어야 할 산도 많았다. 이런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일부에서는 그 사랑이 현실적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시청자도 있었다. 남규리는 나영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세준에 반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작품할 때만큼은 온전히 나영의 편에 섰죠.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게 개연성을 찾아내려고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나영은 세준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느끼고 싶었던 듯해요. 나영은 어린시절부터 엄마 때문에 억지로 아역배우 활동을 했고 늘 억눌린 감정을 품고 살았죠. 반면 세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꿈을 만들어가는 청년이고요. 이 점이 나영에겐 호감으로 비쳤을 거예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세준에 반했던 거죠.”
유독 나영과 세준이 겹치는 신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남규리는 나영과 다르게 술에 약한 편. 체질적으로 술이 맞지 않아 마시는 일이 거의 드문 그는 취한 연기에는 타고난 기량을 뽐냈다. 술을 잘 못 마시면서 어떻게 만취한 연기를 잘했을까. 남규리는 “원래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이 술 취한 연기는 더 잘한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아마 관찰과 간접경험의 덕이 아닌가 싶어요. 늘 술자리에서 맨정신인 저는 취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죠. 술에 취하면 하게 되는 행동들, 말투, 특이한 술버릇을 많이 봐 왔기에 그게 도움이 많이 된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드라마를 마치고 여행을 계획했던 남규리는 일정이 무산돼 아쉽기만 하다. 함께 연기한 서지혜와 미국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가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에 캐스팅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됐다. 아쉬운 대로 제주도를 갈까 생각 중이다.
“‘그래 그런거야’에 또래 배우들이 많았죠. 그래서 드라마를 마치면 어디라도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했는데 흐지부지됐어요. 다들 솔로라 혹시 ‘남자친구가 생기면 봐주기’까지 했는데 아직 아무런 말들이 없네요(웃음). 그러다 지혜가 같이 미국에 가자고 했는데 ‘질투의 화신’에 출연하게 돼 미뤄졌죠. 지금은 제주도에 다녀올까 생각 중이기도 해요. 힐링도 되고 금방 다녀올 수도 있으니까요.”
드라마를 무사히 마친 남규리는 요즘 롱보드에 푹 빠져 산다. 안나 마리아 수잔느 영상을 먼저 접한 그는 고효주의 영상을 보면서 단숨에 롱보드에 매료됐다. 일단 롱보드와 먼저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할 예정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최근에 롱보드를 타는 천사를 봤어요. 바로 안나 마리아 수잔느와 고효주 씨예요. 고효주 씨가 롱보드 위에서 스탭을 밟는 영상을 봤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 분이 세계대회에서 입상도 했다는데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대요. 저도 취미 삼아 슬슬 롱보드를 끌고 한강으로 나가보려고 합니다. 일단, 친해지기부터 먼저 시작해야겠죠?”
가수에서 연기자로 7년째를 보내는 남규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다독이며 날마다 연기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다보니 직업병도 생겼다. 엄청나게 피곤한 날이라도 늘 청소를 해야 하루가 비로소 가는 기분이 든다. 오늘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집안일을 하며 그날 있던 일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남규리. 바닥을 닦으면서, 혹은 설거지를 하면서 연기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스스로 칭찬하고 반성도 한다.
“매일 청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요. 그러면서 오늘 하루는 제가 예민하진 않았는지, 맡은 바를 잘 해냈는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생각하죠. 청소하는 시간이 제 마음을 청소하는 시간이 돼버렸어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작은 장면이라도 재미있게 살리고 스스로 몰입했는지 확인해보는 거죠. 앞으로도 1년에 한 작품씩은 꼭 하고 싶어요.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고요. 더 갈고 닦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 항상 기대해주세요.”
[뉴스핌 Newspim] 글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