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덕혜옹주'로 사랑받고 있는 배우 손예진 <사진=뉴스핌DB> |
[뉴스핌=장주연 기자] ‘리즈 갱신’이란 말이 있다. 축구에서 처음 시작된 말로 지금은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주로 쓰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전성기를 갱신했다는 뜻. 즉, 데뷔 후 자신의 스타가 가장 멋있고 예쁜 때를 일컫는다. 연기 경력 16년 차, 요즘에도 ‘리즈 갱신’에 한창인 이가 있다. 바로 배우 손예진(34)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리즈 갱신’이라 함은 단순 외모를 넘어선 모든 것이다. 당연히 주 종목인 연기도 포함된.
손예진의 신작 ‘덕혜옹주’가 쟁쟁한 대작들 사이에서 흥행 순항 중이다. 개봉 2주차 주말인 지난 13일과 14일에도 박스오피스 2위를 지키더니 16일 누적관객수 400만을 돌파했다. 이는 손익분기점 350만 관객을 넘어선 수치. 이로써 손예진은 또 한 번 흥행에 성공하며 충무로 ‘믿고 보는 여배우’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
물론 명실상부 최고의 여배우도 신인 시절이 있었다. 대중이 손예진을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한 화장품 CF에서였다. 당시 손예진은 CF 주인공인 김혜수의 보조 역할로 출연했다. 이후 영화 ‘비밀’(2000) 목소리 출연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이듬해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안방극장에 얼굴을 알린 손예진은 곧장 영화로 활동 반경을 넓혔고, 첫 주연작 ‘연애소설’(2002)로 단숨에 청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긴 생머리에 사슴 같은 눈망울을 한 채 “어떡하죠?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근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손예진의 모습은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손예진은 이 기세를 몰아 영화 ‘클래식’(2003),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2003),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드라마 ‘여름향기’(2004)를 연이어 내놓으며 ‘국민 첫사랑’ 타이틀을 따냈다.
손예진 주연의 영화 '연애소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내 머리 속의 지우개'·'아내가 결혼했다'·'작업의 정석' 스틸 <사진=코리아픽쳐스·CJ엔터테인먼트·쇼박스㈜미디어플렉스> |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가 ‘청순’이란 타이틀을 써먹은 기간 말이다. 분명 ‘청순’을 무기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 남아있었으나 손예진은 거침없이 방향을 틀었다. 영화 ‘외출’(2005)이 전환점이 됐다. 남편 불륜 상대의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사건이 벌어지는 이 영화에서 손예진은 난생처음 치정 연기를 선보였다. 이어 영화 ‘작업의 정석’(2005), ‘아내가 결혼했다’(2008)를 연달아 보여주며 관능적 매력을 발산, 장르변환이 가능한 배우로 인정받았다.
‘청순함의 대명사’는 그 후에도 소매치기 여두목(영화 ‘무방비 도시’, 2008), 치명적 비밀을 지닌 여자(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 2009), 아버지를 의심하는 딸(영화 ‘공범’, 2013)을 거쳐 해적단 두목(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 2014)이 됐다. 단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았다. 손예진은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배우로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올해 손예진은 또 한 번 연기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지난 6월 개봉한 ‘비밀은 없다’로 역대급 연기를 펼친 것. 딸의 실종 후 충격적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 정치인 아내 연홍을 연기한 그는 광기와 분노에 휩싸인 히스테릭한 연기로 관객을 압도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손예진의 열연에 평단과 대중의 극찬이 쏟아졌다.
손예진이 올해 선보인 영화 '비밀은 없다'(위)와 '덕혜옹주'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
하지만 놀랍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손예진은 보란 듯이 지난 3일 신작 ‘덕혜옹주’를 내놨고, 한 번 더 자신의 연기 ‘리즈’를 갱신했다. 역시나 데뷔 이후 최고 연기라는 찬사가 이어졌고, 손예진은 자연스럽게 ‘인생작’ ‘인생 연기’를 갈아치웠다. 배우 손예진의 성장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물론 이번 작품에서 시선을 끈 건 연기만이 아니었다. 연기 열정에서 이어진 영화 사랑, 그리고 통 큰 투자도 화제가 됐다. 이제는 너무 많이 알려졌지만, 손예진은 ‘덕혜옹주’가 촬영 중반 자금난에 부딪히자 무려 10억 원이라는 돈을 투자했다. 자신의 출연료 두 배에 달하는 돈이다. 당시 이 일이 이슈가 되자 그는 “배우들이 그런 경우가 종종 있지 않으냐”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쉽지 않은 선택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손예진은 지금 당장 보여지는 자신의 한 컷이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집중했다. 작품을, 그리고 연기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욱이 지난 주말에는 그의 부상 소식도 전해졌다. ‘덕혜옹주’ 무대 인사 도중 손예진이 무릎을 다쳤다는 것. 열 바늘 이상 꿰맬 정도의 부상이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고 남은 무대인사 일정을 소화했다. 병원을 간 건 무대인사가 모두 마무리된 후라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손예진 소속사는 “일정 소화에는 지장이 없었다”는 입장과 함께 너무 많은 관심에 손예진이 쑥스러우면서도 고마워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책임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일화였다.
'덕혜옹주'의 흥행으로 또 한 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손예진 <사진=뉴스핌DB> |
언젠가 인터뷰 자리에서 그에게 ‘손예진의 대표작’을 놓고 논쟁(?)을 펼치는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여준 적이 있다. 혹자는 ‘손예진=클래식’이라고, 혹자는 ‘손예진=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손예진=작업의 정석’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손예진=아내가 결혼했다’라고 했다. 그걸 본 손예진은 한참을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이게 내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때 알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도전’을 이야기하는 16년 차 배우에게 ‘한계’나 ‘끝’은 어울릴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을.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