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아재파탈. 아저씨를 의미하는 ‘아재’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남성을 뜻하는 ‘옴므파탈’을 합친 신조어다. 배우 조진웅(40)은 바로 이 아재파탈의 대표 아이콘이다. 각종 SNS에 ‘살쪄도 섹시한 남자’ ‘여자들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남자’ 등의 제목으로 그의 사진이 올라오는 일은 이미 부지기수. 특유의 능글거림과 유머 감각, 그리고 그 이면에서 숨어있는 남성적인 섹시함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여심을 사로잡았다.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하고 가장 멋있는 아재, 조진웅이 ‘아가씨’의 열풍이 가시기가 무섭게 신작 ‘사냥’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우연히 발견된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사냥꾼의 16시간 동안의 추격을 그렸다. 극중 조진웅은 정체불명 엽사들의 우두머리 동근을 열연, 선후배들과 함께 산을 넘나다니며 총격전을 벌였다.
“고생하긴 했는데 그걸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안성기 선배가 계셔서. 진짜 항상 저희보다 먼저 스탠바이하고 계셨죠. 제 생각에 그건 체력으로만 해결될 부분이 아니거든요. 오늘 내가 여기서 해야 할 몫이 있다고 하면 이건 분명히 해결하고 가리라는 본인의 의지와 의식이 있는 거죠. 보면서 정말 많이 느끼고 배웠어요. 때로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후배로서 울컥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거기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죠. 그냥 산에 가는 거 원래 싫어하는데 이젠 더 가기 싫어진 정도랄까?(웃음).”
조진웅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고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가 몸 바쳐 펼친 열연은 단연 이 작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특히 ‘사냥’은 조진웅이 난생처음 1인2역에 도전한 작품. 그는 동근을 연기하는 동시에 그의 쌍둥이 동생이자 처음 금맥을 발견하는 마을의 경찰 명근 역을 소화했다. 그렇게 조진웅은 동근과 명근을 오가며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을 분출시켰다.
“1인2역은 특별히 어려운 지점은 없었어요. 책에 나온 분량이 전부라서. 물론 더하면 나야 재밌겠지만, 영화적으로는 그 정도가 좋았다고 봐요. 다만 그의 어떤 행동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있었죠. 촬영하면서도 ‘내가 뭐하는 거지? 왜 내가 쫓고 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 없는 날엔 김한민 감독(그는 ‘사냥’의 제작자다)과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죠. 근데 감독님이 ‘그냥 그 느낌을 연기해보면 어떨까?’라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되겠다’ 해서 그 느낌을 그대로 표현했어요. 굳이 ‘지금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대사를 하진 않아도 그런 뉘앙스를 풍기면 될 거라고 봤죠.”
눈치챘겠지만, 동근(물론 명근도)은 이 영화의 악이다. 탐욕으로 가득 차 타인은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악질. 그간 숱한 작품에서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보여준 조진웅은 이번에도 낯설지만 익숙한, 익숙하지만 낯선 모습으로 관객을 분노케 한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악한 그를 보는 관객의 시선. 이제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지난봄 종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 이재한 형사의 여파다.
“할리우드 모 배우는 연기하는 동안 악역을 절대 안하겠다고 선포했대요. 근데 전 거기에 그런 특별한 개념을 가지고 있진 않죠. ‘시그널’ 전작이라 악역을 한 것도 아니고 ‘시그널’ 후라고 안할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오히려 안타고니스트가 더 매력적일 때가 있어요. 또 매력을 떠나서 진짜 극에 필요한 안티라면 그건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걸 원치 않은 대중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죠. ‘시그널’할 때 식당 주인아저씨가 그러더라고요. 이제 절대 악역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몰라요’ 하고 나왔는데(웃음) 뭐랄까, 좀 당황스러웠어요. 그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싶었죠. 그게 배우라는 이 직업의 특색이겠지만요.”
이미지 때문에 역할을 가리고 싶지 않다는 그의 차기작은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tvN 드라마 ‘안투라지’(가제)다. 동명의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스타와 엔터테인먼트의 실상을 가감 없이 그린 블랙코미디다. 극중 조진웅이 맡은 역할은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은갑. 현 소속사인 사람엔터테인먼트 이소영 대표를 교보재로 삼았다는 그는 “그때 왜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술을 사줬는지 이제야 알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과거 이 대표가 건넸던 조언과 위로, 선의의 거짓말 등을 대사로 뱉으며 조진웅은 또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드라마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지금 전 완전 여기에 빠져있죠. 원작은 못봤는데 미국에서 시즌8까지 나온 작품이더라고요. 어쨌든 대본도 재밌고 촬영도 너무 즐거워요. 이게 또 카메오가 많이 나와서 한동안은 진짜 매니지먼트 대표의 마음으로 다녔죠. 청담동에서 촬영하다가 길 건너 다른 촬영 팀이 왔다고 하면 가서 ‘요새 안투라지 카메오가 대세래’라고 흘리고 가고 그랬죠. 근데 이게 섭외에 실패해 보니까 진짜 내가 잘못 살았나 싶고 그렇더라고요(웃음). 제가 이런데 시나리오를 직접 쓴 사람들은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다른 입장을 이해하면서 더 작품에 빠지게 돼요.”
조진웅의 마음을 앗아간 ‘안투라지’ 김은갑 역은 사실 많은 배우가 탐낸 역할이다. 실제 모 톱스타는 직접 출연 의사를 밝혔을 정도. 하지만 제작진의 선택은 조진웅이었다. 왜 본인이 캐스팅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성비가 좋아서?”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물론 조진웅이 선택받은 이유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는 이제 누구나 함께 작업하고 싶은 명불허전 대한민국 최고의 톱배우니까.
“확실히 책임감이 커져요. 매뉴얼 같은 대답인데 그게 솔직한 제 심정이죠. 고등학교 때 고(故) 최진실 선배를 되게 좋아했어요. 지금이야 같은 업계에 몸담고 있으니 선배라고 부르지만, 진짜 당시 제 우상이었죠. 아마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어서 책임감이 더 커지는 듯해요. 가끔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 배우님처럼 되고 싶다’는 팬레터를 받죠. 좋기도 한데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요. 보면서 쉽지 않은 길인데 싶죠. 근데 그러다 또 문득 ‘나 같은 사람도 이 길을 걷고 있는데 거 귀한 집 자식들이 그걸 왜 못하겠어’ 싶어요. 그래서 이제는 무거움을 넘어서 저부터 좀 당당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