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창피하고 부끄러웠죠.”
자신의 첫 장편 상업영화를 본 소감을 묻는 말에 마주한 그가 수줍게 웃었다. 도저히 못보겠는 걸 남아있는 홍보일정(예컨대 지금의 인터뷰와 같은) 때문에 꽤 큰 결심을 하고 봤단다. 당연히 새겨들을 필요(?) 없는 겸손한 발언이자 괜한 걱정이다. 극장을 나오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김.태.리’ 이름 석 자를 검색하지 않는 이는 없을 테니까. 영화 ‘아가씨’ 속 신예 김태리(26)는 그만큼 강렬하고 그만큼 인상적이다.
김태리의 첫 장편 상업영화 ‘아가씨’가 지난 1일 베일을 벗었다.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하녀 숙희와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7년 만에 국내에 돌아온 ‘깐느박’은 1500여 명의 숙희 중 단 한 명, 김태리를 자신의 리그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흘러간 시간이 무색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심미안은 정확했다. ‘아가씨’는 개봉하기가 무섭게 흥행 궤도에 안착했고 대중은 김태리에 집중했다.
“흥행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사실 흥행이라는 거 자체가 제게 정확하게 적립된 느낌이 없어요. 지금은 그저 함께한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만으로도 좋은 거죠.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그만큼 많은 분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인기요? 무슨 제가, 아니에요(웃음). 지금 대중들이 보내주시는 관심은 그냥 못봤던 새로운 얼굴이고 또 워낙 영화 스토리가 좋아서 저를 좋게 봐주시는 거죠. 아마 시간이 지나서 영화 내려가고 ‘아가씨’ 인기가 사그라지면 제 인기도 같이 식지 않을까요. 하하.”
김태리의 데뷔 과정부터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대학 진학 후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연기에 흥미가 생겼다. 자연스레 배우를 꿈꿨고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반 즈음인 2012년 극단 이루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건 이듬해 초, 연예계에 발을 디딘 건 2014년 4월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면서다. 이후 CF로 데뷔한 김태리는 두 편의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몇 차례 오디션에 응했다. ‘아가씨’도 그중 하나였다.
“명확하게 ‘이게 될 거야, 하고 싶어, 할 거야’라고 생각한 건 배우라는 직업 하나였어요. 그렇게 쭉 연기한 거고요. 처음 이 작품 캐스팅된 날이요? 사실 기억이 잘 안나요. 그냥 어안이 벙벙하고 얼떨떨했죠(웃음). 게다가 캐스팅됐다고 해서 당장 촬영하는 게 아니니까 실감도 안났죠. 그저 시나리오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카페로 갔어요. 내가 참여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더라고요.”
출연 결정 후 더 간절해진 마음만큼 부담감도 커졌다. 수위 높은 노출신(알려졌다시피 ‘아가씨’에는 김태리와 김민희의 수위 높은 베드신이 나온다)도 있었고 시나리오는 화자가 다른 3부로 나뉘어있었다. 게다가 숙희는 도둑의 딸로 태어나 장물아비에게 길러진 고아이자 하녀, 동시에 아가씨의 친구이자 사랑인 복잡한 캐릭터였다. 3년 차 초짜 배우가 중심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성애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노출은 당연히 부담됐죠. 촬영하는 순간도 힘들었고요. 그래도 많은 배려 속에 여차여차 잘 마무리돼서 잘 나와 다행이에요(웃음). 연기적인 부분도 쉽진 않았어요. 제가 경험이 많이 없으니까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걸 놓치는 거예요. 아가씨를 속이는 하녀 입장과 17년 동안 살아온 도둑으로서의 삶, 이렇게 두 모습이 있잖아요. 근데 그중 하나를 계속 놓치는 거죠. 나중에는 이러면 안되는데 싶어서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다행히 연기적으로 어렵거나 혼란스러운 부분은 박찬욱 감독이 많이 잡아줬다. 김태리는 촬영 중 부족하거나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를 찾았고, 박찬욱 감독은 김태리가 주눅들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줬다.
“영화에 꼭 필요하고 이걸 알아야 잘할 수 있을 거니까 감독님과 많이 의논했어요. 물론 감독님이 워낙 유하고 열려있는 분이라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죠. 선배들에게는 특별히 연기적 조언을 받지 않았어요. 물론 처음에는 지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날 동등한 배우로 봐주는 거란 걸 알았어요. 존중받는 느낌이었죠. 또 워낙 앞에서 좋은 연기를 해주시니까 전 그냥 받아치기만 하면 됐어요(웃음). 무엇보다 다들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주셨어요. 긴장하지 않게 많이 풀어주셨죠. 그런 배려가 쌓이면서 안정이 많이 됐고요.”
이후로도 김태리는 제법 길게 선배 배우들에 존경심을 드러냈다. 정신적으로 꽤 많이 힘이 된 모양이었다. 이에 그들은 해준 게 없다고 했다는 말을 전하자 “저 혼자 받아먹었다. 흘리고 가시면 열심히 주워 먹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장난기 가득한 말투였지만, 그 한 마다가 앞으로 그려갈 김태리의 배우 인생을 기대케 했다.
“이제 다시 오디션을 보러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 지금은 홍보 활동 중이라 다음 계획을 세운 게 없어요. 그저 지금은 많은 걸 해보고 싶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숙희를 했다고 해서 완전 다른 캐릭터를 해야지 규정지은 것도 없고요. 물론 장르도 마찬가지죠. 그냥 지금은 모든 걸 열어놓고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전에 어떤 상황에서도 상식적인 사람이고 싶어요. 언제나 상식적인 선에서 사는 괜찮은 사람, 괜찮은 배우(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