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날카롭고 잔혹한 악역으로, 혹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배우 권현상(36)이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로 또다른 매력을 뽐냈다. 권현상은 최근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 '욱씨남정기'에서 러블리 코스메틱의 대리 박현우 역을 맡아 N포세대를 대변했다.
"주변 사람들이 재밌게 봤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좋아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모르는 분들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드라마를 보셨더라고요.(웃음) 아쉬운 부분도 많고 만감이 교차하는데 일단은 잘 끝나서 좋아요."
혹자는 극중 박현우를 '불쌍하게 시작해서 불쌍하게 끝나는 캐릭터'라고 말한다. 박현우는 대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넘었지만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고 그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제대로 못하는 답답한 인물. 결국 좋아하는 여자(황보라, 장미리 역)를 다른 남자(황찬성, 남봉기 역)에게 뺏긴다. 그러나 권현상은 "현실적이라서 더 좋았다"고 자평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둘이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죠. 드라마에서 박현우는 해소된 게 하나도 없어요. 가장 안타깝죠. 그래도 그게 가장 현실적이어서 만족해요."
사실 권현상은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다. 백지인 상태에서 역할을 위해 호칭 같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준비하고 새롭게 만들어내야 했다.
"직장생활을 한 번도 안 해봐서 걱정되는게 많았어요. 그래서 직장 다니는 친구들에게 많이 물어봤죠. 대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어떤 위치인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전반적인 것에 대해 다 알아봤어요. 사실 대본도, 인물 소개도 너무 간략해서 완벽하게 캐릭터를 만들고 갈 수 없었어요.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하고 방송이 되면서 점점 극의 흐름에 맞게 완성해 나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권현상은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으로 '정리해고' 신을 꼽았다. 을(乙)의 웃픈 현실을 잘 드러내고 많은 공감을 샀던 장면이었지만 오히려 권현상은 가식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연기로 표현하는 것도 고민이 많았다.
"똘똘 뭉치던 식구였는데 막상 자기 밥그릇만 챙기니까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죠. 떠나는 사람을 보며 슬퍼하는 게 가식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연기를 할 때도(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라서) 안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고민했죠. 반면 성추행 장면을 목격했을 때 나서지 못한 건 이해가 됐어요. 그 입장이라면 현명한 처사였다고 생각해요. 실제 저였다면 뒤엎었겠죠.(웃음)"
극 뿐만 아니라 '욱씨남정기'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은 말 그대로 똘똘 뭉친 식구였다. 윤상현이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 권현상은 현장에서 윤상현, 이요원, 김선영, 유재명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워낙 잘하는 분들이라 따라갈 지, 조화를 이룰 수 있을 지 걱정이 많았죠. 저도 많이 물어보고 선배님들도 같이 고민을 해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어요. 특히 (김)선영이 누나가 친누나처럼 대해주셔서 많이 의지했어요. 유재명 선배님과는 대기실을 같이 썼는데 그때 많이 물어봤죠. 선배님들이 생각지도 못한 리액션이나 톤으로 연기를 하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았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저도 용기가 생겼죠."
2008년 데뷔 이래 권현상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주로 악역과 강한 역할을 맡아왔던 그는 2013년 미국의 미디어기업 드라마피버가 주관한 어워드에서 '올해의 최고의 악역'을 수상한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선한 이미지가 강했던 첫인상과 달라 자세히 살펴보니, 권현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독특한 마스크였다.
"방송 되는지도 몰랐는데 많이 사랑해주셔서 정말 놀라고 감사했어요. 예전에는 악역을 하는게 재밌었어요. 연기를 하는 표현 수단이 많아지고 마음대로 여러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었거든요. 저와 다른 면을 보일 수 있어서 더 매력적이고 호감이 갔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제가 가만히 있으면 날카롭고 무뚝뚝해 보인다고 하고 웃으면 선해보인다고 해요. 두 가지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서 좋아요.(웃음)"
권현상에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꼬리표가 '임권택의 아들'이다. 이를 숨기기 위해 데뷔 때부터 가명을 사용했지만 우연치 않게 공개되고 말았다. 그래도 걱정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연기로만 권현상을 봐주고 있다. 오히려 변한 건 권현상의 마음가짐. 더욱 큰 책임감과 부담을 지게 됐단다.
"영화 '고사 두 번재 이야기:교생실습' 무대인사를 돌 때 김수로 선배님께서 모르고 말하셨어요. 좋은 뜻으로 한거였지만 당시에는 조금 속상했죠. 그런데 언젠가 밝혀질 일이니까요. 일부러 신경을 안 쓰려고 했어요. 대신 아버지 명예까지도 흠집낼 수 있으니 더 조심했죠."
부자관계가 드러났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아버지의 후광도, 지원도 없었다. 임권택은 아들의 진로를 처음부터 반대했고, 연기에 대한 얘기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임권택이 드라마 자체를 잘 보지 않아 '욱씨남정기'에 대한 코멘트 하나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권현상은 이런 부분들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사람들이 아버지 '빽(?)'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죠.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요. 사실 어릴 때 이미 아버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과분하니 굳이 지금까지 지원받을 생각 자체가 없어요. 부모님 두 분 다 연기를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지켜봐주시는 것 같아요. 직접적인 말은 없지만 그래도 알 수 있죠.(웃음)"
지난해 권현상은 아버지 임권택과 함께 MBC 예능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 출연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 작가와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었고, 출연 직전까지 결정을 못할 정도로 고심했다. 그러나 혼자서 출연하는 예능은 시켜만 준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당시 아버지 몸이 많이 안 좋아 마지막까지 망설였어요. 한 앵글에 같이 있는 게 부담도 됐죠. 그래도 취지가 좋았고 추억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출연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요즘 포맷도 다양하고 재밌는 것도 많아서 기회만 되면 하고 싶어요. 단 '진짜사나이'만 빼면요. 군대 다닐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웃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그가 꼽은 롤모델은 배우 최민식. 또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은 배우로 하정우를 꼽았다. 먼훗날을 그리기보다 주어진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권현상의 최종 꿈은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배우'다. 차기작을 검토 중인 권현상이 어떤 색다른 매력을 뽐낼 지 벌써 기대된다.
"하면 할 수록 어렵고 힘들고 고민도 많아요. 지금은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눈앞에 있는 일을 잘해내는 게 먼저죠. 가장 존경하는 최민식 선배님 인터뷰를 보면 배우에 대한 마인드, 가치관 공부가 많이 돼요. 영화도 수십번 돌려보고요. 하정우 선배님과도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웃음) 먼 훗날에 나이를 먹어서도 연기로 기억되고 싶어요.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그런 배우요."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 <사진=매니지먼트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