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예고편 나왔을 때 가족들이 묻길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랬죠. 엄마, 저게 내가 나오는 전부야(웃음).”
마주한 배우 천우희(29)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이번 영화에서 맡은 역할 이야기였다. 무려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그가 나오는 신은 모두 합쳐 고작 30분(사실 이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남짓. 하지만 그 속에서 천우희의 존재감은 압도적이고 독보적이다. 천하의 나홍진과 작업하면서, 무려 황정민·곽도원의 폭발적인 연기를 받아내면서 기어이 제 역할을 해내는 배우, 단언컨대 충무로 20대 여배우 중엔 그가 유일하리라.
천우희의 신작 ‘곡성’이 오는 12일 베일을 벗는다. 개봉 전부터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독차지한 이 영화는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추격자’(2008) ‘황해’(2010)로 관객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했던 나홍진 감독이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고 또 그 느낌이 되게 생소했죠. ‘아, 이건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궁금했어요. 욕심이 번뜩한 걸 수도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 거’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한공주’ 때도 ‘이건 내 거다, 내가 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이번에도 그런 거죠. 딱 보는 순간 내 거다 싶었어요. 그런 자신감으로 오디션을 봤고요. 아마 감독님도 이 작품, 이 인물에 대한 확고한 생각과 의지가 보여서 절 선택해주지 않았나 해요.”
극중 천우희가 맡은 캐릭터는 사건을 목격한 미스터리한 여인 무명.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종구(곽도원)에게 자신이 모든 걸 봤다며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범인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캐릭터의 성향은 물론, 존재의 유무조차 확실하지 않은 활자 그대로 ‘모호한’ 인물이다.
“연기할 때에 정확함은 있었지만 모호하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확실히 해버리면 제 정체가 드러나 보이잖아요(웃음). 그래서 작은 분량으로 끝까지 끌고 가려면 혼란, 모호한 부분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근데 또 ‘속일 거야’라는 의도를 품고 있으면 연기적으로 불순해지고 ‘다 드러낼 거야’라고 하면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했어요. 에너지 발산부터 완급조절이 꽤 어려웠죠. 뭔가 살짝 감추면서 아닌 척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어떠한 인물을 창조하는데 있어서는 괴로움마저도 즐겁잖아요.”
그에게 캐릭터 창조가 괴로움이자 즐거움이었다면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도 그랬다. 사실 나홍진 감독은 업계에서 까다롭기로 소문(?)이 파다한 감독. 천우희 역시 주변에서 “나홍진 감독님이랑 작업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함께 작업한 선배 황정민과 곽도원은 보기만 해도 기(氣)가 센, 충무로 베테랑 배우들이다.
“감독님하고 저 되게 잘 맞아요(웃음). 전 감독님이 어렵거나 겁나진 않았어요. 사실 보여지는 나홍진은 터프하고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섬세하고 통찰력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관통해서 바라보는 게 있어서 깨닫는 것도 많고요. 제가 생각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고 교감하니까 저 역시 촬영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죠. 선배들 역시 제 연기의 디테일을 알아봐 주시니까 오히려 너무 재밌었어요. 다들 기가 세다고요? 하하. 오히려 전 그 엄청난 기들과 협업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저 역시 에너지를 마구 낼 수 있잖아요.”
그래서일까. 천우희는 ‘곡성’이라는 작품을 두고 몸은 힘들었지만, 머리는 맑아진 작업이었노라 재차 말했다. 비록 촬영하나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도 있었지만, 이 작품을 찍는 6개월은 제대로 연기의 맛을 봤던 시간이자 딱 그만큼 더 연기에 대한 욕심과 갈증을 준 시간이었다. “덕분에 더 큰 만족과 성장을 맛보고 싶어졌다”던 천우희는 이내 “아무래도 난 정말 운이 좋은 듯하다”며 미소 지었다.
“항상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진짜 엄청난 천운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전에도 말했지만, 이렇게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이 적당한 속도감도 너무 좋죠. 물론 한편으로는 걱정도 돼요. 미래에 대해서요. 하지만 미래는 누구나 걱정하는 거니까, 걱정하면서도 기대하는 거죠. ‘앞으로 내가 내 배우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 갈까?’하는. 그래도 이제 30대로 접어들었으니 전보다 조금은 더 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만 하냐고요? 연애도 해야죠. 사실 연애는 늘 하고 싶어요(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