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어느 날 ‘TO. LOVE’로 시작하는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면 어떨까. 더욱이 발신인은 평생을 마음에 품었던 오랜 첫사랑. 종이 가득 그 시절 차마 전하지 못했던, 그리고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빼곡히 적혀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오늘(24일) 개봉한 영화 ‘순정’은 바로 이 설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신인은 배우 박용우(45)다. 그는 생방송 도중 23년 전 첫사랑이 쓴 편지를 받는 DJ 형준을 연기, 희미해진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을 추억한다.
“장르, 구성, 소재, 주제, 내용 모두 이런 영화를 꽤 오랜만에 봤어요. 그래서 제가 출연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완성도도 있고요. 물론 객관적일 수 없겠지만(웃음), 양심적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관객도 아주 다르게 느끼지는 않을 듯해요.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조금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네요.”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말하지만, 사실 박용우는 이은희 감독의 출연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했다. 캐릭터의 색깔을 잘 살리고 그 감성을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은희 감독과의 오랜 대화는 그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기회로 사랑이든 일이든 복잡해질수록 단순하게 돌파하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결국 한다, 안한다 둘 중 하나니까. 그리고 결정을 내렸으면 그건 받아들였다는 의미고 받아들였으면 믿어야 하죠. 그래서 결정한 후로는 어렵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감독님을 믿었죠. 혹시 내가 모자라더라도 그 부분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분이란 걸 알았거든요.”
이은희 감독이 ‘순정’을 시작하는데 믿음을 준 인물이라면, 결과물에 확신을 준 이들은 바로 다섯 후배다. 실제 박용우가 연기한 형준의 어린 시절 범실 역의 도경수를 비롯해 수옥 역의 김소현, 산돌 역의 연준석, 개덕 역의 이다윗, 길자 역의 주다영은 탄탄한 연기로 영화를 무리 없이 이끈다.
“물론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죠. 어린 친구들이 한 작품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전 배우로서 최고의 칭찬은 ‘적역이다’라고 생각해요. 잘한다, 못하다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 역시 그 소리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하죠. 아무튼 이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한 게 모두 적역이었다는 거죠. 정말 다섯 명 모두 제 역할에 잘 어울렸어요(웃음).”
박용우가 예쁘게 바라보는 건 비단 다섯 후배의 연기만은 아니다. 그는 극중 이들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 훗날 소년에서 어른이 된 친구들이 추억을 공유하며 쏟아내는 눈물 역시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아프디아픈 결말에도 그가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이유다.
“공감도 됐고 이상하게 예쁘기까지 했죠. 물론 이상하다는 표현 자체가 제가 어른이 되고 타성에 젖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아무튼 좋았어요. 또 현재만 봐도 이제 형준의 아픔은 모두 치유됐잖아요. 그가 흘린 눈물이 치유의 의미죠. 아마 그렇게 쏟아내지 않았다면 수옥을 핑계로 더 나은 사랑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박용우는 스크린에는 나오지 않았던 형준의 또 다른 미래를 밝게 그렸다. 그는 이제 형준이 더 나은 사랑을 하는, 더 나은 사람이 돼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과거의 아픔을 쏟아냄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으리라. 박용우는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사람만이 또 다른 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요즘 저도 그런 기도를 많이 해요.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했으면 좋겠다, 믿었으면 좋겠다는. 그래야 남도 사랑할 수 있잖아요. 물론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저도 쉬운 것부터 실천하고 있고요. 예를 들면 생각한 걸 미루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요. 이런 일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거죠. 오롯이 나를 위해서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