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잘 버텼다, 덕선아. 다 네 덕분이야. 정말 잘했다.”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종영 이후 신원호PD가 여주인공 혜리(22)에게 건넨 말이다. 혜리는 마지막 컷 소리와 함께 들려온 신원호 PD의 따뜻한 한 마디에 울컥했다. 결국 울음은 터졌다. 그리고 쌍문동 골목길을 돌아보며 이별이 다가왔다는 걸 느꼈다.
‘응답하라 1988’ 시작 전만 해도 여주인공 혜리의 역량이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 시작도 전에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고 여주인공으로는 부족할 거라는 시선이 강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혜리가 덕선인지 덕선이가 혜리인지 분간이 잘 안 될 만큼 혜리는 그대로 덕선이였다. 혜리는 보란 듯이 ‘응답하라 1988’에서 제몫을 다하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차근차근 다졌다.
드라마가 흥행했기 때문에 지금이야 앞서 일었던 캐스팅 논란에 대해 덤덤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처도 받았을 거다. 하지만 혜리는 주변의 우려가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연기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라고 여겼다. 혜리는 그 상황을 침착하게 마주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자신까지 흔들리면 안되겠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방송되기 전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셔서 저까지 걱정하면 안되겠다 싶었어요(웃음). 생각보다 제가 상처받거나 심각하게 걱정한 적은 없어요. 제가 연기로 믿음을 드린 적이 없었잖아요. 그런 가운데 제가 ‘응답하라 1988’에서 중요한 역할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니까 (부정적인 시선이)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는 다 받아들였죠.”
혜리는 덕선이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걸음걸이부터 말투, 자세, 표정 하나까지 덕선이를 연구했다. 평소 어깨를 반듯하게 펴는 버릇이 있던 혜리는 사랑받기를 원하고 어딘가 모르게 늘 기가 죽어 있는 덕선이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구부정하게 앉았다. 걸음걸이도 씩씩하게 했다. 이처럼 작은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캐릭터 분석에 열심이었기에 빠른 시간 안에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저에 대한 여론이 긍정적이지만 않았죠. 저뿐만 아니라 감독, 작가도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첫회에 잡자. 그렇지 않으면 회를 거듭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해결법은 연습이었죠. 1, 2회는 두달간 연습했어요. 리딩도 일주일에 3번씩 PD와 같이 했고요. 연기 연습, 의상, 헤어, 개그, 춤까지 다양하게 준비했어요. 다행히 노력한 결과가 잘 보여졌고 노력한 걸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혜리는 ‘응답하라 1988’을 하면서 누구보다 덕선을 사랑했다. 그래서 자신과 관련한 댓글보다 덕선이와 관련한 글에 더 시선이 갔다. 안 좋은 댓글이라도 있으면 괜스레 더 속상해졌다. 마치 자신보다 가족을 욕하는 게 더 기분이 나쁜 것처럼. 그중에서도 “덕선이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타입)인 가봐”라는 반응이 가장 마음 아팠다. 극중 덕선이 선우(고경표)를 좋아하다가 금세 정환(류준열)에게 호감을 보이다가 또 택(박보검)에게 빠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댓글 중에서도 ‘금사빠’라는 말을 보고 가장 속상했어요. 선우, 정환, 택까지 많이 사랑했고 몰입했어요. 호감이 시작된 지점도 다 달랐고요. 그래서 금사빠는 아니에요. 10대 소녀였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부분이죠.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친구에게 설레기도 하잖아요. 물론 선우보다는 정환이에 대한 애정이 더 깊었던 건 인정해요. 택이는 눈에 밟히고 챙겨주고 싶었던 존재였고요. 사랑받고 싶다는 덕선에게 동룡(이동휘)이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봐’라고 조언했잖아요. 그 이후로 덕선이는 자신이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을 찾았고 그게 택이었어요.”
덕선의 남편이 택으로 밝혀진 후에도 ‘어남류’와 ‘어남택’ 사이에는 여전히 격렬하게 논쟁이 일어났다. 게다가 일부 시청자들은 남편 찾기 과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비판했다. 배우들 역시 남편에 대한 정보가 없던 상황에서 연기를 펼쳤기에 결과를 듣고도 고민이 많았을 터. 자신의 남편이 택이로 결정됐다고 들은 순간, 혜리는 어떤 생각을 먼저 했을까.
“누가 좋다, 누가 남편이 맞다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설득시킬까'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직전에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15화, 16화 감정이 어땠는지 계속 생각했어요. 덕선이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감독님과 많이 대화도 많이 했고요. 순수한 마음으로 사춘기 시절에 정환이를 좋아했던 건 맞지만 극 초반부터 덕선의 시선에 계속해서 들어왔던 건 택이었어요. 만나자마자 ‘잘 잤냐’ ‘밥은 먹었냐’라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로요. 그런 말이 먼저 나온 게 사랑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혜리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역시 무엇이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여럿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면서 자신이 받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드라마를 하면서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작품을 무사히 잘 끝냈으니 그 행복감이 엄청나죠. 이 고마움을 잊지 않고 다른 분들과 계속해서 나누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