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왕샤오솨이(王小帥) 감독 작품 북경자전거는 ‘17歲的 單車(17세소년의 자전거)’라는 제목으로 2001년에 제작된 영화다. 북경자전거는 중국 고도성장의 어두운 이면, 농민공(農民工)의 소외된 삶을 그린 영화다. 2001년 제작된 후 51회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해 실버베어상을 수상할 정도로 서방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중국 국내에서는 영화가 개봉되지 못했다. 중국 당국은 영화 제작사측이 당국의 심사를 받지않고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했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 내 상영을 금지했다. 2000년초 베이징 올림픽 개최 신청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북경자전거가 과도하게 중국(베이징) 성장의 그늘을 조명, 심사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게 상영 불허 이유였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공식 개봉만 안됐을 뿐 영화제 출품 이후 해적판 CD나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중국 영화팬들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오랫동안 영화관 공식 상영이 금지됐던 이 영화는 제작 10여년만인 지난 2013년 7월 13일~14일 이틀동안 베이징 바이라오후이 영화관에서 특별 허가를 받아 방영됐다.
실제 북경자전거의 카메라 앵글은 도시(베이징) 의 열악한 주거구역 후통( 胡同 중국의 낙후된 골목) 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도시 소외계층인 농민공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바닥 깊숙히 들춰낸다. 도시 농민공들의 삶은 중국의 고도 성장과 화려한 도시 모습, 경제발전으로 부자가 된 상류층 사람들과 너무 동떨어진 모습이다.
정식 도시 호구(주민등록)를 가진 도시 주민들은 화려한 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멋진 옷으로 치장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음악까지 나오고 밥알이 떨어져도 주어먹을 수 있는 호화스런 곳이다. 북경자전거의 주인공들은 그런 화장실을 이용하는 도시인들을 부러워한다.
농민공들은 약자이며 도시의 하층민과 같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충돌해도 잘잘못을 떠나 자동차 주인이 자전거와 함께 널부러진 농민공에게 다가가 욕을 퍼붓고 발길질까지 한다. 농민공에게 도시 사람들은 ‘슈퍼 갑’과 같은 존재다. 영화에서 자전거 소유권을 받기 위해 주인공 쿠웨이가 꼼꼼히 적은 증거를 들이밀지만 콰이디(특송택배)회사 직원은 손사례를 치며 무조건 자신의 계산방식이 옳다고 억지를 부린다.
농민공은 개혁개방직후인 1980년부터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든 농민들을 일컫는다. 이들이 1세대 농민공이라면 영화 '북경자전거'의 쿠웨이는 1990후반 이후 도시에 온 1.5세대 또는 신세대 농민공이다. 농민공은 주택 의료 교육 복지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중국의 어떤 지식인은 이런 농민공들을 일컬어 형체는 있지만 그림자가 없는 도시의 유령과 같은 존재라고 지적했다.
북경자전거는 후퉁을 무대로 고도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이런 농민공들의 소외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중국 수도 베이징은 인근 허베이성이나 멀리 섬서성 등지에서 까지 숱한 농민공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북경자전거의 주인공 쿠웨이도 17세에 베이징에 올라와 어렵게 콰이디 회사에 취직해 자전거를 갖는 꿈 하나로 버티며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영화 북경자전거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도시 자전거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며 자전거라는 도구를 통해 농민공과 도시서민들의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쿠웨이에게 자전거는 택배용 생계수단이지만, 다른사람에게는 냉장고를 실어나르는 운반도구다. 또 자전거는 많은 사람들에게있어 출퇴근(등하교) 수단이며 또 다른 사람들(증류층 이상 사람들)에게는 레저나 운동기구다. 자전거를 놓고 쿠웨이와 갈등을 빚는 지안과 그의 멋진 여자친구에게 자전거는 더할나위 없이 맞춤한 데이트수단이다.
무엇보다 농민공 쿠웨이에게 있어 자전거는 목숨처럼 소중한 생존 수단이다. 당장 자전거가 없으면 일자리를 잃고 끼니와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그가 자전거를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도시 근로자가 내집마련 하는 것 이상으로 감격적인 일일지 모른다. 쿠웨이는 꿈에 그리던 그 날을 하루 앞두고 하필 백가지 복이 들어온다는 백복궁 목욕탕앞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하면서 겉으로 보기 보다 훨씬 더 비정한 도시의 ‘민낯’과 맞부딪치게 된다.
쿠웨이가 어렵게 자신의 자전거를 찾아냈지만 이미 그 자전거는 장물로 팔려 다른 사람(지안)의 소유가 되버렸다. 자전거의 원주인인 쿠웨이와 장물을 구입한 지안 사이에 소유권을 놓고 다툼이 벌어진다. 쿠웨이는 되찾은 자전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치 분신처럼 움켜잡고 절규한다. 끈질긴 다툼 끝에 두 소년은 한발짝씩 양보해 자전거를 번갈아 타기로 타협한다.
영화는 자전거를 매개로 쿠웨이의 고단한 도시생활과 그의 동년배인 도시 서민의 아들 지안이 겪는 젊은 날의 꿈과 고뇌를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후통 거리의 가난한 도시 서민 지안의 생활도 결국 농민공 쿠웨이의 고되고 힘든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영화는 농민공의 2중대와 같은 도시사회의 이런 서민 계층의 팍팍한 삶에 대해서도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지안과 도시불량배의 싸움에 우연히 휘말려든 쿠웨이는 자기 자전거를 부수는 불량배를 벽돌로 내리친다. 이 장면은 농민공 쿠웨이에게 자전거가 도시 삶을 지탱해주는 최후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부서진 자전거를 들춰 메고 자동차와 자전거, 행인들이 어지럽게 뒤얽힌 도심의 대로를 지나는 쿠웨이의 모습은 농민공의 좌절과 기약없고 불안한 그들의 미래를 투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속 시대 배경인 약 15년전만해도 베이징거리의 풍물이었던 도로를 가득 메운 자전거 물결은 시간과 함께 점점 기억속의 풍경으로 퇴색돼 가고 있다. 자전거 대신 전동차가 많아지고, 농민공들중에는 일부 소형 승용차를 모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호구가 없는 농민공들은 여전히 도시사회의 취약 계층이며 도시 주민으로서 응당 누려야할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전거라는 소품을 통해 개혁개방과 고도성장의 산물인 도농과 빈부 양극화의 부작용 등 현대 중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를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또 도시사회 농민공의 지위를 사실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북경자전거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중국 영화라 할 수 있다.
[뉴스핌 Newspim]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