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김세혁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스포테이너. 스포츠 스타와 엔터테이너를 합한 말. 넘치는 끼와 남다른 재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스포츠스타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원조 리듬체조요정 신수지(24)만큼 스포테이너와 잘 어울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현역 시절 화려한 기술과 눈에 띄는 외모로 사랑 받은 신수지는 지난해 깜짝 시구와 프로볼러 데뷔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보여준 남다른 예능감은 스타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한 뼘 거리로 좁혀버렸다.
주위까지 건강한 에너지로 빛내는 요즘 대세 신수지를 을미년 새해에 만났다. 양띠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에선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프로볼러 데뷔를 축하한단 인사에 특유의 웃는 상이 더 밝아졌다. 여유 만만한 미소. 하지만 그 뒤엔 늘 지독한 승부근성이 숨어있단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해 11월 프로볼러로 데뷔했으니 두 달이 채 안됐어요. 그동안 엄청 연습했고, 데뷔 후에도 쉬지 않았어요. 프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데다 남들의 눈이 있기에 좀처럼 볼을 놓을 수 없었죠. 리듬체조 출신이 볼링 쉽게 한다는 말을 들으면 안되잖아요.”
타고난 운동신경에 근성으로 뭉친 신수지가 볼링공을 든 건 지난해였다. 친구들과 한두 번 볼링장에 갔다가 ‘블랙홀’ 소리를 듣고 오기가 발동했다. 마침 리듬체조 은퇴 후 에너지를 쏟을 곳도 필요했다. 우연히 접한 박경신 프로의 경기는 신수지를 지금의 길로 이끌었다.
“친구끼리 팀을 짜 경기했는데, 제가 하도 못하니 다들 피하더라고요. 오기가 생겼죠. 그러다 박경신 프로의 경기를 봤어요. 친구를 통해 자리를 마련했고 제발 가르쳐달라 매달렸죠. 의지를 보여주면 그러겠다 간신히 답을 받았어요. 단 11월까지 프로자격을 따는 조건이 붙었죠. 가르침 자체가 엄한 분이에요. 체조선수 출신 신수지로 따지면 잘 치지만, 프로볼러로서는 아직 멀었다며 절 다그치죠.”
지난해 2월 본격적으로 볼링공을 들었으니 9개월 만에 프로자격을 얻은 셈이다. 신수지는 주목을 받는 만큼 더 잘해야 한다며 이를 악문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쁘다. 전화할 때마다 늘 어디선가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며 매니저가 걱정할 정도다.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는 건 리듬체조나 볼링이나 똑같아요. 목표를 정했을 때 매일 30게임씩 쳤고, 책자나 영상도 참고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어요. 물론 리듬체조보다 수월한 점도 있어요. 볼링은 공 들 힘만 있으면 롱런하는 종목이고 체조와 달리 무척 개방적이거든요. 볼링만의 매력이죠.”
“비인기 종목일수록 스타가 나오고 부각돼야 어느 정도 저변확대가 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볼링단을 중심으로 야외 이벤트 경기도 하고 크게 활성화하고 싶어요. 솔직히 언론도 많이 도와줘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볼링인구가 더 늘어나죠.”
비록 정든 리듬체조를 은퇴했지만 지금의 손연재 같은 스타가 있기까지 신수지가 만들어준 토대나 성과는 엄청나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작성한 올림픽 종합 12위라는 대기록. 누구보다 고달픈 환경에서 이룬 것이기에 12라는 숫자는 더 값졌다.
“리듬체조가 워낙 열악한 상황이라 거의 개척하다시피 했죠. 자랑은 아니지만 정말 힘들었고, 돈도 많이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하루 운동 안하면 어떡하나 계산이 확실할 정도였다니까요. 부모님은 올림픽을 바라보고 헌신하셨고, 저 자신도 목표를 잡고 이를 악물었어요. 인대가 끊어져 없어져도 무대를 버릴 수 없던 이유죠.”
세계를 놀라게 했던 신수지의 백 일루전(Back Illusion, 다리 하나로 몸을 지탱한 채 360° 뒤로 회전하는 고난도 기술)은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세계를 매료시켰다. 특히 아홉 번이나 이어지는 백 일루전은 신수지만의 전매특허로 남았다.
“현역 시절 러시아 코치가 제안했어요. 체격조건이 불리한 동양인은 뭔가 특별한 걸 보여줘야 한댔죠. 백 일루전이 그 중 하나였어요. 3회를 너무 쉽게 도니까 5회, 7회를 시켜보더군요. 차츰 늘어나서 9회가 됐어요. 시즌을 절반 뛰는 사이 백 일루전으로 유명해지더라고요. 제 체조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기도 해요. 에피소드도 많죠. 머릿속은 핑핑 도는데 몸이 알아서 움직인 적도 있어요. 일루전 후에 딱 정지해야 하는데 너무 어지러워 슬금슬금 움직인 적도 있죠.(웃음)”
신수지가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2008년 중국 베이징올림픽 무대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 그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아시아 여자리듬체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영예였다.
“올림픽 때 신기하게 안 떨었어요. 부담도 없고 어쩐지 당당했죠. 경기 끝나고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응원와준 분들 얼굴 보니 뭉클하더라고요. 손 흔들고 이름 부르고 저 혼자 신났는데 바로 끌려가 도핑테스트를 받았어요. 선수 몇 명만 무작위로 뽑는 건데 하필 그게 저였죠. 아마 9연속 백 일루전이 맨정신에 하긴 힘든 동작으로 보였나 봐요.”
이제 리듬체조를 내려놓고 볼링공을 드는 신수지. 다만 선수가 아닌 체조인으로서 인연은 계속된다. 이미 리듬체조 심판 자격증을 확보한 그는 박예은 같은 유망주를 돕는 데도 열심이다.
“지난해 볼링에 온 힘을 쏟았지만 체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올핸 체조에 더 관심을 기울이려고 해요. 포스트 (손)연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제 힘을 보태고 싶어요. 체조를 놓은 지 4년이 되지만 한 번도 떠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아니에요.(웃음) 그렇게 던졌다간 금방 팔꿈치가 고장 나요. 실제로 여자 프로볼링선수 대부분이 정석대로 공을 던져요. 왜냐면 무리를 했다가는 팔꿈치에 반드시 부상이 오거든요. 막말로 볼링은 ‘핀만 맞으면 장땡’이랍니다. 폼은 의미가 없어요. 가끔 여자선수 중에도 손목보호대를 풀고 힘으로 던지는 경우가 있지만요.”
작은 변수 하나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건 리듬체조나 볼링이나 마찬가지. 때문에 선수의 멘탈 관리는 필수다. 특히 볼링은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기에 더욱 정신력을 가다듬어야 한다.
“체조처럼 혼자 감당하는 운동을 해서 그런지 정신력은 자신 있어요. 다행이죠. 남들이 뭘 하건 전혀 신경 안 쓰고 제 경기만 집중해요. 체조는 금메달이 100개가 넘을 만큼 익숙했지만 견제가 심해서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볼링은 반대로 사람들이 절 의식하죠. 이제 막 시작했으니 전 부담이 없어요.”
24세라면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솔로라는 신수지. 지난해 말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나온 ‘썸’ 발언 탓에 이상한 소문만 났다며 울상을 지었다.
“왜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는지 억울해요. 지난 연말엔 외로운 영혼끼리 모여 파티했죠. 2015년엔 좀 달달했으면 좋겠어요. 이상형은 배우 송일국 씨에요. 제가 얼굴은 안 보는데 체격도 있고 운동도 잘하고 사람이 좋아요. 송일국 씨는 자상한 점도 엿보여서 멋져요.”
최근 여행가는 재미를 알아간다며 웃음을 터뜨린 신수지는 사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안 다녀본 나라가 없다. 늘 공항과 경기장만 오갔던 그는 어릴 적부터 동경해온 하와이로 떠나고 싶다고 했다.
“어릴 적 하와이에서 경기했을 때 저만 결선에 진출했어요. 먼저 떨어진 친구들은 죄다 와이키키 해변에 놀러가 버렸죠. 어린 마음에 온통 머릿속이 백사장과 푸른 파도였죠. ‘나중에 성인이 되면 꼭 하와이에 놀러가야지’ 그 때 다짐했어요. 정말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미국도 가보고 싶고요.” [장소협찬=여의도 스마일]
“제 진짜 성격요? 완전 푼수같아요!” 신수지가 바라보는 신수지의 성격은 푼수 같고 털털하다. 툭하면 잘 웃고 오지랖도 넓다. 밝은 성격에 내숭이 없어 마음에 뭔가 담아두지 않는다. 이 정도면 아주 무난한 성격인데? 하지만 신수지는 운동할 때면 다혈질로 변한다며 폭소를 터뜨렸다. “절 잘 아는 친구들은 다 그래요. 제가 평소엔 O형인데, 경기할 땐 글쎄 BBB형이래요. 저도 어느 정도 인정해요. 원래 안 그랬는데 운동하면서 좀 다혈질이 됐죠. 예전에 체조할 땐 정말 독했어요. 잘 웃지도 않았고 압박감이 심해 속으로 악을 써댔죠. 지금 볼링할 때도 안 풀리면 잠깐 어디 가서 가방이라도 걷어차야 좀 나아요.(웃음) 친구들이 운동할 때 성질 안보여주면 남자친구 생길 거라며 놀리던데요?” |
[뉴스핌 Newspim] 글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 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