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북 명인 고석진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겨울 끝자락 날씨가 훈훈했다. 고석진 북 명인과의 약속장소로 향하는 차창 밖에는 한강 물이 물컹한 비린내와 함께 넘실댔다. 예술의전당 앞 삼거리엔 사람과 차들로 북적였다. 대개의 공공기관 건물이 그렇듯, 예술의전당도 사람 향기 보다는, 딱딱한 돌덩이로 만든 무덤 같이, 혼이 없어 보였다.

약속 장소인 오페라 극장 1층 찻집 푸치니 통로에는 온통 영어로 된 안내 간판들이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찻집 입구에 놓여 있는 홍보물을 집어 들었다. 영·유아 및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부모 교육’ 자료집이었다. 유럽풍 의상을 입은 엄마와 소녀가 사진으로 박혀있었다. 씁쓸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의 혼이 그리웠다.

고석진 북 명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북 소리는 나를 몽환상태로 몰아넣었다. 곱슬곱슬한 머리, 강렬한 눈 빛, 긴 턱 수염, 팔작지붕 같은 어깨선, 길 가다가 멈춘 것처럼 보이는 절묘한 기하학적 다리 모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북소리는 풍류 그 자체였다. 북소리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런데 고석진의 북소리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심장이 뛰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목젖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 같다.

고석진은 가장 한국적인 남자이다.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가 우리 장단과 춤사위를 담고 있다. 엄마 뱃속에 잉태됐을 때부터 우리 장단과 춤을 배운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경남 고성에서 상여 소리꾼 아버지 고성일로부터 장구와 소리를 배우며 자랐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고성 오광대에 들어가 춤과 장구를 배웠다. 365일 장구를 치고 춤을 추었다. 친구들과 녹음테이프가 스승이었다. 특이 춤이 좋았다. 덧배기 굿거리장단에 몸을 맡기고 문등북춤을 추웠다.

전국청소년탈출경연대회에서도 이 문등북춤으로 개인전 1등을 차지했다. 자연히 공부를 게을리 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대학교 무용과에 시험을 치렀으나 떨어졌다. 후기로 수원대 무용과를 지원했으나 역시 낙방이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장구를 들러 매고 서울예술대학교 무용과를 지원했다. 면접시험 때 장구를 치겠다고 박일규 뮤지컬 교수께 건의했다. ‘춤 출 놈이 춤은 안 추고 장구를 치겠다.’ 했으니 엉뚱한 놈으로 비쳐졌을 것이나, 여백의 싹수가 있다고 보았는지 10: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대한민국 북 명인 1등이 될 수 있는 길이 닦여진 것이었다.

고석진 북 명인의 이력은 다채롭다. 경남 고성 철성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졸업,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한국음악과 졸업,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전수자, 소리꾼 장사익 음반 바라지, 이춘희 경기민요 사사, 진도씻김굿 박병천류 진도북춤 사사,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연희예술 타악과 출강, 서울예술대학교 무용과 출강 등이다. 국악인으로서 이론과 실전을 두루 겸비한 이 시대의 최고의 명인으로 예우하는데 손색없는 경력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모듬북이 유행이다. 김규형이 일본 북을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1명이 두 개의 작은 북을 친다. 한국은 1명이 5개 정도의 북을, 그것도 큰 북 작은 북을 모아놓고 치는 것으로 재창조했다. 그런데 북 모양새나 타법, 자세 등에서 일본 냄새가 진하게 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고석진에게 ‘모듬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 보았다.

“법고창신(法古創新)에 맞습니다. 일본 것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나, 장단을 우리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일부 국악인들이 따따, 따따 하는 일본 이분박으로 북을 치고, 북채를 하늘 방향으로 치켜드는 자세를 취하는 등 일본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심지어 어느 예술인은 일본 북을 그대로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북에 우리 장단으로 모듬북을 칩니다. 모듬북-1은 이동안류 올림채 가락, 웃다리 풍물의 칠 채, 경기도당굿의 도살풀이, 휘모리를 칩니다. 모듬북-2는 진양, 중모리, 동해안별신굿의 두나베기와 전라도 좌도풍물가락 짝드름, 경기도당굿의 사방치기, 휘모리로 합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제 예술의 기본철학인 셈입니다.”

강렬한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상이 예술의 전당에 우리의 전통 혼을 불어 넣고 있었다. 온통 서양풍뿐인 예술의 전당에 그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이 꿋꿋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인터뷰 전부터 메슥거리던 속이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개운해 지기 시작했다. 북은 어느 나라에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호흡으로 우리의 장단을 재창조하는 그를 보면서 문화강국의 대운이 성큼 당겨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자리를 두부 집으로 옮겼다. 칼칼한 두부전골이 끓었다. 그가 젓가락을 들었다. 끓고 있는 냄비를 두들겼다. 밥뚜껑을 때렸다. 밥상을 투 둑 투 둑 쳤다. 어깨가 들썩이며 신명이 굴렀다.

“보고 들으신 바와 같이 모든 사물의 소리가 타악 입니다. 생활 자체가 음악인 것 입니다. 생활을 즐기는 것이 음악을 즐기는 것이고, 음악을 즐기는 것이 생활을 즐기는 것 입니다. 즉 인생 자체가 즐거운 것이지요.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런데 국악인의 사고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 국악도 변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음악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는지 따져보며 법고창신(法古創新)해야 합니다.

김홍도의 씨름판 그림을 보면 엿장수가 엿가위를 들고 철컥거리며 장단을 칩니다. 여기에 착안하여 엿가위 장단을 만들었습니다. 곧 이 엿가위 장단이 새롭게 공개될 것인데 민속도구를 이용한 훌륭한 음악일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엿가위 장단이지만 전통을 전통의 방식으로 깨부술 때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짐을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맥주 집으로 또 한 번 자리를 옮겼다. 함께 시원한 맥주를 뱃속에 쏟아 부었다. 속이 얼얼했다. 고석진류(?) 북소리가 얼얼한 속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희망이 북소리, 도전의 북소리, 창조의 북소리가 밤하늘로 끝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靑 "원포인트 개헌 반대 안해" [서울=뉴스핌] 김미경 박찬제 기자 = 청와대는 3일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원포인트 헌법개정' 제안에 "사전 교감은 없었지만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뉴스핌에 "(당청 사이에) 특별한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오래전부터 원포인트 개헌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도 공약 사항으로 개헌을 언급했다"면서 "한 번에 전면 개헌을 하기 어렵다면 중요한 것이라도 먼저 개헌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DB] 한 원내대표는 이날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오는 지방선거와 함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다"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고 야당에 촉구했다. 한 원내대표는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면서 "헌법 전문 수록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야당의 초당적인 협조를 기대한다"고 거듭 야당에 요청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18민주화운동 전문 수록이나 비상계엄 요건 강화 등이 대표적인 개헌 의제"이라면서 "개헌을 하려면 국회 200석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2026.02.03 pangbin@newspim.com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는 우선 국회 논의를 두고보자는 입장"이라면서 "국회 논의가 잘 이뤄지길 바란다는 정도가 청와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 1호로 '개헌'을 제시했지만 아직은 개헌에 필요한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시기적으로 정권 초기에 치러지는 오는 6·3 지방선거를 계기로 개헌 추진에 시동을 걸어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나쁘지 않고 국정 장악력이 강하고 정권 초기라는 잇점이 있다. 하지만 개헌 카드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국정 동력은 물론 개혁 과제 추진에 적지 않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개헌 카드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어 이재명 정부가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강하게 밀어붙일지 주목된다. 이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일단 여당이 애드벌룬을 띄워놓고 국회 진전 상황과 정국의 흐름을 봐 가면서 무리하지 않게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pcjay@newspim.com 2026-02-03 12:37
사진
'법정소란' 이하상 변호사 감치 집행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법정 소란으로 감치 명령을 받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변호인이 3일 구금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한성진) 심리로 열린 김 전 장관의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재판 종료 직후,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으로 출석한 이하상 변호사에 대한 감치 명령이 집행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법정 소란으로 감치 명령을 받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변호인이 3일 구금됐다. 사진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 이하상 변호사가 지난해 6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심문기일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뉴스핌 DB] 재판이 끝난 이후 법무부 교정본부 직원들이 이 변호사의 신병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법원 구치감에 머무르다 서울구치소로 옮겨졌다. 감치 기간은 총 15일이다. 지난해 11월 한 전 총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김 전 장관에 대한 증인신문 당시 퇴정 명령에 응하지 않은 이 변호사와 권우현 변호사에 대해 감치 15일을 선고했다. 하지만 인적 사항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정당국이 수용을 거절하면서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후 이들은 감치 결정에 항고했으나 서울고법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권 변호사의 경우 감치 5일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hong90@newspim.com 2026-02-03 17:07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