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 방담] 기존 시각 벗어난 새로운 시도 돋보여
"마약 예방 위한 인프라 부족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법·제도 문제"
"모든 사람은 예비중독자라는 사실 알아야 사회서 마약 추방 가능"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4개월 동안 이어진 [마약중독자의 고백] 시리즈가 60편으로 마무리됐다. 마약중독자를 단순히 악마화하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마약을 과학적으로 보도해 한국 사회에 경각심을 일으켰다는 평가도 있었다. 기획기사에 미처 담지 못한 얘기를 방담으로 풀어봤다.
(방담=오승주 사회부장, 임성봉 윤혜원기자)
▲오승주 사회부장(이하 오): 취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윤혜원(이하 윤): 마약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약중독자의 수기를 보면 이들이 마약을 접한 시기와 장소, 동기 등이 무척 다양합니다. 마약을 손에 넣는 통로가 그만큼 멀지 않은 곳에, 구석구석 포진하고 있다는 얘기겠죠. 마약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하루빨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 중 하나는 관련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력과 시설도 턱없이 모자라고 이를 위한 법과 제도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습니다. 마약이 빠르게 확산하는 현실과 정반대입니다. 마약 문제는 여론과 정부의 관심을 잠깐 받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사건이 터지면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해왔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역량을 적극 투자하는 문제로서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성봉(이하 임): 저는 취재 자체가 무척 어려웠다는 생각부터 떠오르네요. 워낙 폐쇄적인 주제다 보니 한 발을 내딛는 일이 무척 어렵고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습니다. 관련 전문가를 찾는 일부터 섭외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한 단체로부터 받은 마약중독자의 수기를 하나씩 읽어보는 작업마저도 끔찍이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반면 황당하고 재밌는 기억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러 가면 꼭 듣는 얘기가 있었는데 “기자님, 혹시 마약 하는 거 아니죠?”라는 질문입니다. 1~2명이면 모를까 거의 모든 취재원이 같은 말을 하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경찰서를 찾아가 마약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들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경찰관들도 “임 기자, 마약 검사 한 번 받아야지?”라며 농담을 던지고는 했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기획기사 마지막 편은 취재팀이 직접 마약을 해보는 거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습니다. 물론 맹세하건대 저희는 결코 마약에 손대지 않았습니다.
▲오: 마약중독자 수기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사연을 꼽는다면요?
▲윤: 29편 <마약에 빠진 신학생...“신이 있다면”>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심지어 이른바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도 마약을 한 번 접하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사연자는 학창 시절 성적도 우수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신망도 두터운 ‘엄친아’였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권유로 호기심에 시작한 마약에 중독되면서 학교를 자퇴하고 조직폭력배에 들어가 폭력과 마약에 찌들어 삽니다. 단약을 결심하며 신학생이 돼서도, 취업해서도 결국 마약을 마다할 수 없어 다시 찾았고요. 최근 직업과 계층, 부와 명예를 떠나 누구든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는데 이런 현실이 이 사연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지 않았나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마약은 발 들인 이후에는 기존의 ‘나’로서 살아가기 무척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임: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수기 중, 다섯 번이나 구속되고, 수감 중 병으로 막내아들을 잃은 남성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기획기사의 1편이었는데, 마약중독자로서 겪는 고통이 가장 잘 표현된 수기였습니다. 이 남성의 사연을 기사로 옮기면서 가슴이 참 먹먹했습니다. 무엇보다 우여곡절 끝에 남성이 단약(마약을 끊는 일)에 들어갔지만, 과거 마약 투약 사실이 들통나 구속되는 것으로 수기가 마무리돼 더 안타까웠습니다. 또 남성이 구속되던 날은 군에 간 아들이 100일 휴가를 나오는 날이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이 기사를 읽고 “구속되고, 아내를 잃고,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수기의 주인공이 왜 마약을 못 끊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마약이란 그럼에도 끊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것’입니다. 기사를 쓰는 내내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을까?” 되뇌었지만, 저라고 다른 선택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오: 마약은 세계 공통적인 문제지만, 한국 사회만이 갖는 특징도 있었나요?
▲윤: 필로폰의 영향력이 가히 지배적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코카인이나 헤로인, 대마, 신종마약 등 다양한 마약류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가지각색의 마약류가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필로폰은 한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유지 중입니다. 저도 취재하면서 알게 됐지만, 여기에는 필로폰이 한국에서 이어온 나름대로의 유구한 역사가 반영돼 있었습니다. 이 역사는 전후 한국이 일본의 필로폰 생산기지로 동원됐던 시절부터 최근 동남아산 필로폰 생산과 중국계 범죄조직의 국내 밀반입 등 여러 국내외 여건이 겹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물론 마약 중독 치료·재활 시설도 필로폰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임: 다른 국가와 비교해 마약에 지나치게 무지하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는 마약, 도박, 성(性)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마약은 가장 천시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정부 역시 검거 말고는 이렇다 할 마약 퇴치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마약사범 1만명 시대’입니다. 또 우리가 마약 청정국이라는 헛된 환상에 취해있는 동안 한국은 국제마약범죄조직의 표적이 됐습니다. 국내에 밀반입된 필로폰 대부분이 태국산, 중국산, 북한산입니다. 우리 사회가 마약에 무지했던 탓에 이제는 누구도 마약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다른 특징으로는 중독자에게 치료·재활의 길이 지나치게 좁다는 점입니다. 마약에 무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우리 사회는 ‘중독=질병’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중독자 감소정책이 모두 실패했습니다. 중독자는 처벌을 받아도 마약을 끊지 못합니다.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자력으로 마약을 끊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오: 시리즈 중 인터뷰 기사도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누구인가요?
▲윤: 김은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독성학과장입니다. 국과수는 김 과장은 마약 감정 전문가로서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을 모발에서 검출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김 과장의 전문성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으로 당장 들이닥치는 마약 감정 의뢰를 처리하기도 바쁘기 때문이죠. 최근 신종마약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마약에 대한 연구와 신기술 개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재들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려면 이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겠죠. 하지만 전국 연구소를 통틀어 국과수의 마약 분석 인력은 15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마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느낀 대목 중 하나입니다.
▲임: 한 명을 딱 꼽기는 어렵지만, 굳이 가리자면 국립부곡병원 장옥진 의료부장과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에서 대구를 거쳐 창녕까지 내려가 진행한 인터뷰였는데, 중독 치료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병원 치료와 관련해 중독자 사이에서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 더 의미가 컸습니다. 가령, 병원에 입원하면 담당 의사가 환자를 수사기관에 신고한다거나, 한 번 입원하면 자발적으로 퇴소할 수 없다 등의 오해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중독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적은 소재였지만, 중독자에게는 국립부곡병원에 대한 정보 자체가 매우 귀합니다. 다행히 장옥진 부장이 치료과정부터 병원 분위기는 어떤지 등 작은 것까지 꼼꼼하게 설명해줘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장옥진 부장과의 인터뷰는 기자로서 중독 치료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오: 취재 전과 후, 마약에 대해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윤: ‘누구든 마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약은 조직폭력배나 연예인, 재벌가나 빈민층 등 소위 ‘일반적인’ 시민들과는 동떨어진 집단에서 사용하는 존재로 여겨졌던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저도 이런 인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마약이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마약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 중독될 위험성이 커졌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마약에 중독됐다가 치료와 재활을 통해 사회에 복귀하길 원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는 것입니다. 마약은 더이상 별세계 얘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얘기입니다. 마약이 그간 사람들과 좁혀온 거리감을 정부는 물론 시민들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면 마약 문제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도 들었습니다. 마약으로 인한 건강권 침해와 막대한 사회적 비용, 2차 범죄 피해 등은 이미 여러 차례 도마에 오른 바 있습니다.
▲임: 마약이란, 상상을 뛰어넘는 공포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취재 이전에는 마약을 ‘담배보다 조금 더 중독성이 강한 물질’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마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부터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본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 번 마약을 투약한 사람은 평생 악마에 쫓기는 신세가 되더군요. 10년간 단약 중인 사람도 눈앞에 필로폰이 있으면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독 치료에서는 환자가 자기 손으로 필로폰을 변기에 버리는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중독자 대부분 이 훈련을 힘들어합니다. 또 대마초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마초 합법화 현상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한국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번 취재 이전에는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취재 후에는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대마초가 필로폰이나 헤로인 등 다른 마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대마초 합법화는 기대와 달리 여러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이번 취재가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윤: 취재를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균형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마약의 실태와 위험성을 강조하면서도 마약에 대한 호기심이나 모방범죄를 부추기지 않는 중간점을 찾기 위해 매일 줄타기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호기심으로 마약에 손을 대고, 누군가는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괴로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독자들의 가감 없는 수기와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애쓰고 있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증언이 이러한 현실을 생생히 증명해줬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마약 중독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마약중독자의 고백] 시리즈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마약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임: 마약에 있어 우리는 모두 ‘예비중독자’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모든 비장애인은 예비장애인이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 신체를 헤치고, 마찬가지로 마약도 불현듯 나타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 마약을 추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마약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습니다. 마약과 싸워 이기려면 마약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마약의 종류부터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 마약에 노출됐을 때 이를 회피하는 방법, 중독됐을 경우 치료·재활을 요청하는 방법 등도 알아야 하지요. 마약에 무관심했던 우리 사회가 갈 길이 아직 멉니다. 끝으로 마약중독자의 고백 시리즈가 중독자에게는 위로와 응원의 말을, 예비중독자에게는 경각심을 심어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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