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배우 이민호(28)는 잘나가는 ‘TV 스타’다. 물론 지난 2008년 영화 ‘강철중:공공의 적’과 ‘울 학교 이티’에 출연한 바 있지만 그리 주목받지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일년 후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스타덤에 오른 뒤로는 줄곧 안방극장을 지켰다.
그렇게 이민호는 ‘개인의 취향’ ‘시티헌터’ ‘신의’에 연이어 출연하며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남자의 인상을 굳혔다. 그리고 지난해 ‘상속자들’을 히트시키면서 재벌남+로맨틱남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이제 그는 이름만으로도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드는 스타가 됐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브라운관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계획대로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 이민호는 충무로로 다시 눈을 돌렸다.
충무로에 돌아온 로맨틱가이가 손잡은 이는 다름 아닌 유하 감독.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하라 함은 원초적인 남성미를 부각하는 데 능한, 잔혹한 폭력 이면에 철학을 담는 감독이 아닌가. 게다가 그가 선택한 작품은 ‘비열한 거리’, ‘말죽거리 잔혹사’를 마무리 짓는 거리 유하 감독의 3부작 완결판, ‘강남 1970’이었다. 달콤한 대사만 내뱉던 이민호의 원초적 남성미라니, 이번엔 남성 팬들을 사로잡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강남 1970’(제작 ㈜모베라픽처스·쇼박스㈜미디어플렉스, 제공·배급 쇼박스㈜미디어플렉스)은 1970년대 서울, 개발이 시작되던 강남땅을 둘러싼 두 남자의 욕망과 의리, 배신을 그린 작품이다. 극중 이민호가 열연한 인물은 겁 없는 젊음 김종대. 가진 건 몸뚱이 하나, 믿을 건 싸움 실력뿐인 그는 잘살고 싶다는 꿈 하나를 위해 강남 개발의 이권 다툼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인물이다.
“이미지 변신, 혹은 유하 감독님이 워낙 남자 캐릭터를 잘 만든다거나 해서 선택한 건 아니에요. 그런 욕심이었다면 애초에 ‘상속자들’도 안 했겠죠. 그때 왜 또 이런 작품 하느냐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요(웃음). 어쨌든 그때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런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한 거고, 이제 영화 해야지 할 때 이 작품을 만난 거예요. 결과적으로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물론 감독님에 대한 신뢰는 있었고요. 어쨌든 영화 보니 기다렸다 하기 잘했다 싶어요.”
제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듯 영화의 배경은 1970년이다. 1986년생인 그는 태어나기도 전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대적 상황까지, 배경 자체가 생소할 수밖에 없을 터. 1970년대를 표현하느라 어려운 점이 있었느냐는 말에 그는 “우리 영화는 ‘시대’가 아닌 ‘감정’을 표현하는 영화”라는 답을 대신 내놨다.
“1970년대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현실 속에서 비슷한 감정을 찾으려 했고 저 역시 과거에 느꼈던 감정이라 자연스레 몰입됐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랄까. 대부분, 특히 남자라면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현실 속 막막함을 느끼잖아요. 종대를 통해 그런 출구 없는 막막함, 답답함, 처절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민호는 김종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아직도 같은 고민을 하는 친한 친구들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역시 그런 시절을 겪었노라 털어놨다. 지난 2003년 드라마 ‘반올림’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후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일 년간 병원 신세를 진 때다.
“사실 스무 살부터 스물네 살이 제 인생의 가장 암흑기였어요. 종대와 비슷한 감정을 수없이 느꼈죠. 교통사고로 일 년 동안 병원에 있었고 그 사고로 실제로 두 명이 죽었어요. 가장 밝고 좋았을 시기에 병원에 있으면서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죠. 밖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빨리 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죠. 종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제 딴에는 굉장히 깊은 고민이었어요. 딱 ‘꽃보다 남자’ 전까지인데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죠.”
어쨌든 (종대와 달리) 과거의 힘든 시절을 발판 삼아 그는 정상에 올랐다. 국내는 물론, ‘꽃보다 남자’로 시작된 그의 한류 인기는 절정을 맞이했다. 그 일례로 얼마 전 141개국을 도는 4개월여의 글로벌 투어 ‘2014 리부트 이민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끊이지 않는 팬들의 조공으로 ‘강남 1970’의 제작비를 줄어드는 사태(?)도 일어났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높아진 인기만큼 이십 대 후반 청년으로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떠한 위치 때문에 사적으로 포기하는 부분은 많죠. 어떤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상황들도 있고 팬들의 시선도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팬들의 사랑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거죠. 또 물질적인 거에 휘둘리다 보면 저만의 색깔이 흔들린다는 생각을 늘 해요. 그래서 그때그때, 최소한 일에 있어서만큼은 하고 싶은 거 제 색깔을 존중해주려고 하죠.”
아시아를 강타한 한류스타답게 흥행도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장난 섞인 질문에 그는 “그런 발언은 위험하니까 안 하면 안 되느냐. 한류스타 이런 건 좀 빼자”며 개구지게 웃었다. 첫 주연작이라는 부담감을 기분 좋게 웃어넘기는 모습에서 그의 호방한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물론 부담도 되고 어느 정도 흥행은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죠. 하지만 흥행만 노렸다면 또 부담감만 가졌다면 이 장르를 택하진 않았을 거예요. 잘 짜인 어떤 오락 영화를 택했겠죠. 물론 이제는 흥행까지 생각해야 하는 배우지만, 그 전에 나도 어떠한 발전이 있어야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흥행이 안 되면 속상하겠지만요(웃음).”
다행히(?) 베일을 벗은 ‘강남 1970’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 개봉 첫날 15만2578명(22일 오전 8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스코어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천만 영화 ‘국제시장’을 제친 기록이다. 첫 스크린 데뷔작의 흥행 청신호를 킨 그는 올 한해도 바삐, 그리고 부지런히 달릴 생각이다.
“우선 올해 스케줄은 정리했어요. 큰 목표는 올해 꼭 두 작품 이상 하자는 거죠. 중반기에 영화, 하반기에 드라마로요. 아무래도 환경이 편하다 보니까 영화하고 나면 영화만 하고 싶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물론 저 역시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하지만 드라마의 황금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죠. 그래서 지금 상황에 맞게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면서 좋은 작품, 좋은 모습 보여드릴 생각입니다(웃음).”
‘땅’종대, 그리고 ‘롤’민호?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