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우려로 금리 상승에 유가마저 폭등
미국 증시는 조정 중…달러화는 예측불허
취임 정책…시장 붕괴와 불확실 해소 혼란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일이 다가오면서 자산시장의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저금리정책과 친기업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미국 국채 금리와 유가는 급등한 반면 나스닥 지수는 약세다.
◆ 트럼프 2.0 시대…인플레이션으로 금리인하 중단 우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024년말의 4.57%에서 올해 1월14일 종가는 4.78%로 0.21%포인트 급등했다. 국채금리가 5%에 육박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채금리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난 1월 10일(현지시각)에 발표된 미국 고용시장 지표가 예상을 뛰어넘게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더 우려하는 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기존에 예고했던 대로 '보편관세' 부과와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실제로 실행할 지 여부다. 이 두가지는 수입물가 급등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촉발한다. 이럴 경우 앞으로 금리인하는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국제유가 상승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정부는 러시아의 돈줄을 죄기 위해 에너지회사 가즈프롬과 자회사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고 발표했다. 또 몰래 원유를 수송하던 일명 '그림자 함대'의 선박 180여척도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이 정책이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던 중국과 인도 등에 영향을 미쳐 원유가격 상승을 부추길 거라는 우려가 높다. 실제 WTI원유 가격은 올해 1월14일까지 6.5% 급등한 76.37달러를 기록했다.
천연가스 또한 북미대륙의 기록적인 한파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가 연초부터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송을 중단시키면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에만 9.4% 급등한 3.97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지 않으면 금리인하는 불가능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미국이 올 하반기에는 금리인하 대신 금리인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미국 빅테크 주식과 장기채권 ETF 폭락
지난 2년간의 미국 증시 폭등으로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던 서학개미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올해 들어 미국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4% 하락한 1만9044포인트(1월 14일 종가)를 기록했다. 낙폭은 미미하지만 연초부터 기세 좋게 상승하기를 기대했던 서학개미들의 실망감은 크다.
한국인 보유 상위 10개 해외주식의 수익률을 살펴보면 보유금액 기준 1위는 테슬라다. 35조원(241억달러)을 보유 중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확신하는 종목이다. 작년에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힘입어 12월 한 때 488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올 1월14일 종가는 396달러로 400달러가 붕괴됐다.
한국인 보유 순위 8위인 양자컴퓨터 관련주 아이온큐는 올해 들어 -29% 하락해 한국인 보유 상위 10개 종목 중 가장 낙폭이 크다.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이 '양자컴퓨터'가 단시일 내에 상용화되기 어렵다고 발언하면서 시장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미국 빅테크 투자자보다 더 울상인 건 미국 장기채권 투자자들이다. 예상과 다른 미국 국채금리의 상승으로 올해 들어서만 -5% 내외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채권 투자자의 성향은 주식 투자자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점에서 심리적 충격이 큰 상황이다.
전반적인 금융시장 불안은 비트코인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작년에는 기관투자자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에 크게 유입되면서 비트코인의 시세상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월평균 3조원 이상 유입되던 자금이 올해 1월 들어서는 주춤하다.
◆ 낙폭과대 한국 주식은 반등 성공…지속될까?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 주식은 반등세가 확연하다. 지난해 폭락했던 한국 주식들은 낙폭과대에 따른 반발 매수세에 힘입어 올해 코스피 지수는 4%, 코스닥 지수는 5% 상승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스피가 -10%, 코스닥이 -22%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의 2025년 수익률을 살펴보면 셀트리온 한개 종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초 대비 상승했다. 시총 1위인 삼성전자는 올해도 1%대 상승에 그쳐 반등세가 미약하다. 엔비디아에 추진 중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납품이 계속 지연되면서 시장의 실망감이 크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시총 상위 10개 회사 중 유일하게 올해 두자리수인 14%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 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만나면서 양사 간 협력이 강화될 거라는 전망이 호재로 작용했다.
시총 3위인 2차전지 대장주 LG에너지솔루션은 4분기 실적 부진과 전기차 수요둔화, 배터리가격 하락,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 확대 등 다양한 악재로 반등세가 미약하다. 올해도 업황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은 편이다.
시총 4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초 유럽 소재 제약사와 약 2조원(14억1000만달러) 규모의 초대형 위탁생산(CMO)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하면서 주가가 8% 상승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전체 매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여 시장의 기대감이 크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24년에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한 데 힘입어 올해 주가는 4% 상승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삭감을 추진하면서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호실적에 비해 주가가 강하게 상승하지는 못하고 있다.
시총 10위인 HD현대중공업의 9%대 상승도 눈에 띈다.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기술이 뛰어난 한국 조선업의 업황이 크게 개선되면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급증한 영향이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의 조선업 기술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조선업이 최대 수혜 업종으로 부상한 영향도 있다.
◆ 관세부과 나비효과는? 불확실성 해소 시 반등 가능
작년과 비교해 보면 올해 한국 증시의 출발은 양호하다. 하지만 최대 변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다. 한국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KB금융과 네이버를 제외한 8개 종목이 수출주다. 관세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관세 부과율이 얼마로 결정될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중국에는 최대 60%,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 나머지 국가에는 10~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의거 대부분의 수출품에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한국 수출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낙관적인 소식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보편 관세에 대한 세율을 매월 조금씩 높여가는 점진적 방식을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급격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함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부과 의지가 강력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런 불확실성이 시장을 짓누르면서 글로벌 자산시장은 얼어붙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일이 다가오면서 변동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미국 국채금리, 글로벌증시, 금, 비트코인 등 대부분의 투자자산 움직임이 예측불허다. 달러화가 계속 강세로 갈지, 아니면 약세로 반전될지도 중요한 변수다.
비관적인 시장 분위기와 달리 불확실성이 걷히고 나면 의외로 글로벌 자산 시장이 크게 반등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과거부터 주식시장은 악재 그 자체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하는 속성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학개미와 동학개미들이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일 발표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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