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경찰서 신월1파출소 고영일 경사
교제폭력, 피해 당사자로 생각 안하는 사람 많지만
포기 않고 설득…재차 찾아가 대화 유도하고
휴대용 비상벨 '지키미' 사용하도록 해
노력 인정받아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 유공자에도 선정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이 XX, 그만 안 해!"
수화기 너머로 남성의 욕설이 먼저 들려왔다. 여성이 뭐가 문제냐며 항의하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교제폭력이다. 고영일 경사는 몇 초 만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가 근무하는 양천경찰서 신월1파출소에는 교제폭력 신고가 유난히 자주 접수됐다. 신월1·3동의 여성 1인 가구 비율은 양천구에서도 2~3위를 다퉜다.
고 경사가 교제폭력 피해자들에게 예방 서비스를 안내하게 된 이유였다. 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 말싸움으로 신고가 들어왔지만, 가해자를 멈추지 않으면 난동은 더 심해졌다. 깨진 그릇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진 현장을 보면서 고 경사는 "또 다른 폭력이 일어나기 전에 꼭 막아야 한다"고 거듭 생각했다.
고영일 경사가 지난 11일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에서 상을 받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
그는 올해만 87명의 여성에게 휴대용 SOS 비상벨 '지키미'를 지급했다. 서울시와 경찰청에서 고안한 지키미는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폭력 등에 노출된 이들을 위해 고안됐다. 지키미를 누르면 미리 등록해둔 지인 5명에게는 문자가 가고, 위치추적도 된다.
하지만 정작 지키미를 신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피해 여성들이 (남자친구인데) 이러다 말겠지,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분리 조치까지 했는데도 가해 남성이랑 잘 지내겠다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고 경사는 "발로 뛰는 게 중요하다"며 포기하지 않았다. 신월3동 주민센터와 협업해 '범죄예방 간담회'를 열어 여성들을 직접 설득했다. 사건 이후 피해자 주거지에 여러 번 찾아가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요새 잘 지내시냐, 가해자랑 연락은 하시냐, 신변 걱정은 없느냐 등등.
질문을 주고받다가 양천구에서 제공하는 '안심장비 지원사업' 서비스도 안내했다. CCTV나 현관문 이중장치를 설치해주는 사업이었다. 그러면 처음에는 괜찮을 거라며 미온적으로 생각했던 피해자들도 서류를 적어 건넨다고 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피해자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교제폭력 사건에서는 피해 당사자들이 추가 수사를 원하지 않는다며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이 심각한 사안이라고 판단해서 체포를 했을 때, 여성 측에서 오히려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며 경찰을 독직폭행으로 고소한 사례도 있었다.
고 경사도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현장에서 두 사람을 분리시킨 후 피해자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차분하게 설득한다고 했다. 비슷한 사건을 여럿 본 적이 있다며 이후 재범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경찰이 현장에서 사건을 종결처리할 경우 더는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진다고도 덧붙인다. 모든 피해자들이 고 경사의 논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면 절반 정도는 마음을 돌려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한다.
이러한 노력에 고 경사는 양천구에서 진행하는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 유공자'에 선정돼 지난 11일 표창장을 받았다. 올해 양천경찰서 내에서 이 상을 받은 경찰은 고 경사까지 2명뿐이다.
상을 받은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현장에서 큰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관할에서 112 신고가 감소되는 게 체감돼요. 요새는 데이트폭력이 잠잠한 거 같다고 우리끼리 얘기하다가, 내가 어느 정도 기여를 했구나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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