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에 보고서 제출… "지금 생산성 올리지 못하면 생활 수준 하락"
민간·기업 보다는 정부, 개별 국가보다 EU 차원 대대적 투자가 필요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9일(현지시간) 유럽이 미국·중국에 더 이상 뒤처지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최대 8000억 유로(약 1187조원)를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에서 "유럽은 실존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금 생산성과 성장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유럽인의) 생활 수준이 하락할 위험이 있다"며 그같이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 [사진=로이터 뉴스핌] |
드라기 전 총재는 민간·기업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개별 국가보다는 EU 전체 차원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 부문의 도움 없이 민간 부문이 이런 대규모 투자의 대부분을 조달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유럽의 핵심 공공재 투자를 위한 공동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금이 대대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지출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통합된 대응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면서 "단결 속에서만 개혁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드라기 전 총재에 의뢰해 작성된 것이다. 분량은 약 330쪽 정도로 반도체와 청정기술, 국방, 인구, EU 효율성 등 170여개 분야에 대한 상황 진단과 정책 대안을 담았다. 오는 11월 이후 출범할 예정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 2기'가 추진할 각종 정책 곳곳에 반영될 전망이다. 드라기는 이 보고서에 대해 '죽기 아니면 살기(do or die)'는 아니지만 '지금 당장 하기 아니면 서서히 다가오는 극심한 고통(slow agony)'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복지와 환경, 자유를 타협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고도 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드라기 보고서는 EU 집행위가 경제 침체와 전쟁, 극우정당의 부상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새로운 5년 임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과거 어느 때보다 EU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연간 7500억~8000억 유로 규모의 공격적 신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4~4.7%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그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 본부에서 연설을 통해 "유럽의 생산성은 약하다. 매우 약하다"면서 "성장이 오랫동안 둔화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 무역은 줄어들고 있으며 유럽 국가에 대한 (다른 대륙 국가들의) 개방성은 떨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국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유럽이 인구 증가에 기반한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또 다른 난관이라고 덧붙였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보고서를 제출받은 뒤 "유럽의 경쟁력을 개선하는 문제가 (EU 집행위) 의제의 최우선 순위이자 우리 행동의 중심이어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는 2010년대 초반 유럽의 재정 위기를 해결한 주역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 출신인 그는 피렌체대 교수와 세계은행 집행이사, 이탈리아 재무부 차관보, 골드만삭스 부회장, 이탈리아중앙은행 총재 등을 거쳐 2011년부터 8년간 ECB 총재를 맡았다. 과감한 정책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재정 위기를 극복해 '수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1~2022년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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