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창작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저항할 수 없는 시대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에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 등 한국 창작 뮤지컬계에 흥행 신화를 쓴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 3인방의 작품으로 작년 초연 당시,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 3관왕에 오른 수작이다. 올해 윤나무, 강기둥, 정운선, 박란주, 안창용 등을 포함해 신성민, 이수빈, 장민수 등이 합류하며 호평 속에 순항 중이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2023.11.03 jyyang@newspim.com |
◆ 사라진 나라의 독재자, 대역배우를 맡았던 개인의 회한
'쇼맨'은 태어나서 마주하는 환경, 사회와 이데올로기 안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주인공을 통해 주체성과 진짜 나의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재자를 대신한 '네불라'와 거짓으로 신분을 속인 '수아'의 만남은 국적, 성별, 세대를 넘나드는 시간의 겹 위로 주체적일 수 없던 순간을 겪은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성실하지만 수동적이었던 인물들의 자기 고백을 통해 과연 사람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주체적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네불라 역을 맡은 신성민은 20대부터 노인까지 다채로운 연기력으로 성실하고 선량한 개인을 그려낸다. 그는 줄곧 악의없이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과적으로 독재에 부역한 셈이 됐다. 가장 빛나던 시절을 독재자의 대역 배우로 살며 자랑스러워했던 경험을 늙은 네불라가 부끄러움으로 표현하는 순간 관객들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2023.11.03 jyyang@newspim.com |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수아를 연기한 정운선은 '요즘 애들'스러운 면과 철두철미한 성격을 모두 지닌 인물이다. 놀이공원에서 만난 네불라에게 스스로를 사진가로 소개하며 거짓말한다. 그를 역겨워하고 동정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상처와 직장인 마트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네불라와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안창용, 김연진, 김대웅, 전성혜는 일인 다역을 소화하며 각 잡힌, 또는 개성 넘치는 표현으로 각 캐릭터를 생생하게 표현한다.
◆ 몰려오는 인생의 파고 속에서…다양한 층위의 주체성을 말하다
관객들은 극중 네불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것들을 알게 된다. 농장 일부터 아버지의 미소와 칭찬이 불러온 연기에 대한 욕망, 그리고 독재자의 대역 배우로 살아가게 된 그의 삶은 성실했지만 누군가에겐 부끄럽다. 네불라가 '이디엇 쇼'를 통해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비로소 찾게 된 순간, 비로소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하는 그의 에너지를 만나며 모두의 숨통이 트인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2023.11.03 jyyang@newspim.com |
혹자는 수아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도 네불라의 사연과 그래서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필요해서 또는 할 수밖에 없어서 지속했던 행동과 삶이 주체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쇼맨'은 네불라와 수아의 이야기를 통해 내 키만큼 높은 바다에 놓인 인간이 헤엄칠 줄을 몰라 힘껏 뛰어오르고, 웅크리고 숨을 참아야만 하는 장면을 상기시키며 깊은 깨달음과 짙은 감동을 안긴다. 어떤 작품보다도 유려하게, 그러면서도 직설적으로 주어진 환경과 시대와 상황 속 스스로를 찾으려 몸부림 치는 개인, 주체성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뮤지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