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품목 수출 실적 신기록 경신 릴레이
올해는 G2 갈등·인플레·공급망 등 3중고
'반도체 원톱'에서 선도 품목 다원화해야
[편집자] 지난해 코로나19의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나라 수출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올해는 미·중 갈등과 공급망 위축, 코로나19 재확산 등 글로벌 악재가 수두룩한 상황이어서 '가시밭길'이 예상되고 있다. 당장 '원톱' 역할을 했던 반도체마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뉴스핌>은 올해 수출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대응방안을 모색해 본다.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가트 加入(가입) 14일 發效(발효)" 1964년 4월 12일 아침 국내 주요 일간지 경제면에는 일제히 이같은 제목이 달린 기사가 올랐다. 우리나라가 무역 통계를 처음 작성한 지 8년만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GATT)' 에 가입한 것이다.
당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데도 힘겨웠으나 GATT 가입은 우리나라 통상 역사는 물론 경제 발전에 새로운 기회를 안겼다. GATT 가입을 통해 우리나라 수출품은 최혜국대우 혜택을 받게 됐다. 수출국가로의 초석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에도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데 전념해 한국경제의 기초를 다졌다. 이제는 제조업 수출 주력 분야인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수출은 물론 한국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반도체를 뛰어넘을 주력 분야 발굴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국제사회는 갈수록 자국우선주의가 심회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않으면 어렵게 끌어올린 경제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 사상 최대 수출 기록…20대 품목 최대·최초·최고 기록 릴레이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1년 연간 수출 규모는 6445억40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6049억달러에 비해 366억달러 늘어난 규모다. 3년 만에 역대 최대 수출액을 다시 썼다.
지난해 수출을 보면 기록이 쏟아진다.
전년 대비 28.3%의 수출 신장세를 기록한 2010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출신장세를 나타냈다.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나 3년 만에 수출이 증가세로 전환됐다. 수출 순위는 지난해와 동일한 7위를 지켜낼 수 있었다.
분야별로 ▲반도체 ▲석유화학 ▲일반기계 ▲자동차 ▲석유제품 ▲철강 ▲선박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컴퓨터 ▲바이오헬스 ▲무선통신기기 ▲섬유 ▲플라스틱제품 ▲정밀화학원료 ▲농수산식품 ▲화장품 ▲이차전지 ▲가전 ▲로봇 등 20대 품목 모두 전년 대비 증가세를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처음 맞이한 지난해의 경우, 20대 품목 가운데 12개 품목이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는 올해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했다. 석유화학은 처음으로 500억달러를 돌파했다. 석유제품은 지난해 가장 높은 신장세인 57.9%를 나타내며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디스플레이도 4년 만에 플러스 전환됐다. 바이오헬스는 사상 최초로 150억달러를 넘어섰다. 차부품은 7년 만에 성장세를 나타냈다.
지난해에는 10대 글로벌 지역에서도 모두 성장세를 보였다. 2020년의 경우, 미국(1.1%)·유럽연합(0.6%)·베트남(0.7%)에서만 소폭 늘었을 뿐 중국(-2.7%)·일본(-11.7%)·아세안(-6.4%)·중동(-16.9%)·중남미(-26%)·독립국가연합(-15.3%)·인도(-20.9%) 등으로 수출 감소가 이어졌다. 코로나19 2년 차에 가뿐히 위기를 넘겼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다만 반도체를 제외하고 근본적인 산업별 구조가 개선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 품목이 골고루 성장했으나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체력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들린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전반적인 성장은 일궈냈으나 소비재의 감소가 아쉬운 한 해였다"면서 "수출 경기가 좋은 것은 인정해야 할 일이나 같은 산업 분야에서 기업마다 업황 체감도에는 차이가 컸던 부분은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평가했다.
◆ 코로나 재확산·G2갈등·인플레이션·공급망 등 수출 '가시밭길' 예고
수출에서 지난해 역대 최대치로 올라섰다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할지는 의문이라는 게 경제 및 통상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악재가 끊이질 않을 것이라는 예측에 오히려 무게가 실린다.
우선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예사롭지 않다. 외신에 따르면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최근 1주간 전 세계에서 1000만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4월 1주일 570만명 최고기록보다도 2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코로나19 2년 차에 우리나라 산업의 수출이 급성장했으나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변수를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전병서 경희대 CHINA MBA 교수(오른쪽)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9회 서울이코노믹포럼 패널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정대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 손수득 KOTRA 경제통상협력본부장, 전병서 경희대 CHINA MBA 교수. 2021.04.13 dlsgur9757@newspim.com |
다시 첨예해지는 미·중 갈등 역시 꺼지지 않은 불씨다. 미국은 오는 11월 초께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을 선출하는 중간선거가 예정됐다.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진 바이든 정부로서는 국정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 선언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 입법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담당자 제재 등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오는 10월이나 11월께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중국공산당 당대회를 연다. 3연임이 확정된 분위기이지만 외부 압박에 대한 중국의 강경 대응도 예상된다. 이는 미국의 반격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미·중갈등이 고조될 경우, 국내 수출기업에 직격탄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해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 공급망 정보를 요구했을 뿐더러 장비업체에 대해서는 대(對)중국 수출을 막기도 했다.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양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도 소홀할 수 없다"면서 "이 부분이 앞으로 지속적인 리스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인플레이션 역시 걱정거리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동성을 확대하면서 미국부터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됐다. 인플레이션이 주요 선진국으로 옮겨붙을 경우, 시장이 위축되면서 우리나라 수출 산업에도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서다.
공급망 교란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사안이다. 지난해 중국발 요소 대란 사태 이후 원자재 등 소재 확보가 올해에는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반도체 등 IT 산업에 필요한 희토류를 두고 중국의 가격 조정도 예상된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수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실 경제안보TF 위원장은 "조만간 국제 통상 시장에 큰 파도가 몰려와 위기에 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악재 등에 반도체 말고는 충분히 대처하기가 어려워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수출 n톱 분야 발굴·대체될 수 없는 기술 개발 절실
각종 악재 속에서 주력산업인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전 분야에서 수출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기저효과를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이며 한국 수출산업의 원톱 역할을 해주는 반도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진다. 반도체 산업처럼 한국 수출을 견인해 나갈 n톱 산업이 하루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뉴스핌]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13일 포항에 위치한 경북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특구에서 열린 이차전지 종합관리센터 준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2021.10.13 photo@newspim.com |
단순히 수출의 양적 확대에만 시선을 모을 게 아니라 산업구조의 질적인 성장 역시 절실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산업 현장을 들여다보면 대기업·중견·중소기업 간 산업 경쟁력 양극화 현상 역시 수출에 대한 각기 다른 체감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그나마 배터리의 경우,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이어받을 수 있는 유망 분야로 꼽힌다"면서도 "다만 자원 확보부터 우위에 있는 중국이 워낙 배터리 산업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차세대 산업으로 꼽히는 배터리 분야의 경쟁이 심상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연원호 위원장은 "모든 국가들이 이제는 전략기술에 투자를 하고 있고 이미 최강 기업이 나온 분야에서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서 "반도체처럼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아도 어떻게 보면 국내기업이 아니면 안되는 기술이나 품목을 개발하면 수출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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