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재판부 전원 교체 후 두달 만에 재판 재개
"과거 수사과정 실시간 보도돼 예단 형성된 점 우려"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지난 2월 법관 인사로 재판부 전원이 바뀌면서 중단됐던 양승태(73·2기)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재판이 두 달 만에 재개된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은 새 재판부에 "과거 형성된 예단이 가장 걱정된다"며 "이 사건의 진실을 정확하게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4·12기)·고영한(66·11기) 전 대법관에 대한 122차 공판을 열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0.12.04 mironj19@newspim.com |
재판부는 구성원이 변경된 이후 처음 여는 재판인 만큼 검찰의 기소요지 진술과 변호인들의 모두진술을 듣는 공판갱신절차를 진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피고인 의견을 묻는 재판부에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부까지 광풍을 맞아야 했고 광풍이 불어닥칠 때 뒤를 생각할 여지도 없이 판단도 마비되곤 했다"며 "이제 잔해만 남은 상태에서 뒤돌아보면 객관적으로 그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나 그 과정에서 형성된 예단이 자칫 객관적인 관찰을 방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염려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얼마 전 검찰 고위 간부 한 분이 수사를 받게 되자 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구하면서 '수사상황이 시시각각으로 유출되고 수사결론이 수사관계인에 의해 계속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얘기했다"며 "오늘 이 법정에서 심리하고 있는 이 사건이야말로 당시 어떤 언론이 수사과정이 실시간으로 중계방송되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쉬지 않고 수사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한 과정에서 모든 정보가 왜곡되고 결론이 마구 재단돼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저 사람들이 정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젖어들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 광풍이 다 할퀴고 지나간 자국을 보면서 과거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저희는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쪼록 새로운 재판부께서는 그러한 상황을 잘 헤아려주셔서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실질적·진실적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앞서 변호인은 우선 공소장에 법관에게 예단을 줄 수 있는 불필요한 기재가 있고 직권남용의 공모관계가 불명확하게 적시돼 있는 등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을 문제삼아 공소기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개입 등 개별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법원의 사법행정은 법원행정처장을 중심으로 법원행정처가 주로 담당하고 대법원장의 역할은 중요업무에 한정된다"며 "피고인은 중요사항에 대해 사후보고만 받았을 뿐 사전에 구체적으로 보고받지 않았고 관련 지시를 한 적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재판부는 오후 2시부터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측 변호인들의 공소사실 의견과 피고인 의견을 차례로 들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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