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합, 방통위 상대 제재취소소송 시민방송 승소 취지
"공정성 유지의무·사자 명예존중 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
[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대법원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영한 방송사에 대한 정부 제재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방송프로그램 내용을 심의할 때 매체와 채널, 프로그램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판례가 정립돼 향후 관련 소송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시민방송(RTV)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7명 다수 의견으로 이 제재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합은 "이 사건 각 방송이 방송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의무와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18.11.20 kilroy023@newspim.com |
앞서 시민방송은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 등 진보성향 역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두 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총 55차례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파이자 기회주의자로 표현됐고 박 전 대통령도 친일파였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방통위는 해당 프로그램이 일방적 자료만을 근거로 편향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등 이유로 이를 방영한 시민방송 관계자에 대해 징계·경고하고 이를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이에 시민방송은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2013년 11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방통위의 이같은 제재가 옳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합은 원심과 달리 "이 사건 각 방송은 시청자의 자유로운 접근이 제한된 유료 비지상파 방송매체 및 퍼블릭 액세스 전문 채널을 통해 방영됐고 시청자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이라며 "무상으로 접근 가능한 지상파 방송이나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 등과 달리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기존에 입론된 역사적 사실과 그 전제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 정도에 그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같은 다수 의견에 대해 김재형 대법관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행위, 특히 그 내용에 대해 행정제재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자율심의체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충의견을 냈다.
김선수·김성환 대법관은 "이 사건 재판 결과에 따라 국민의 역사 해석과 표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 한계와 정도가 판단된다는 점에서 법원의 입장에서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며 "공정성 등 유지의무 위반 여부는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내용을 갖췄는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본질적 징표를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이 곧 표현 내용 자체에 대한 국가권력의 중립적 자세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등 6명의 대법관들은 여전히 원심과 마찬가지로 이 프로그램이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한편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감독과 프로듀서 등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 형사사건은 지난 6월 서울고법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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