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어 피싱으로 ID·거래정보 빼내 거래처 위장해 송금 요구
은행 "중소기업 보안취약...해외계좌정보는 전화로 확인 필요"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 경기도 일산에 사는 무역회사 사장인 50대 A씨는 미국 거래처에서 지난 11월초 이메일을 받았다. 수입대금 계좌번호를 뉴욕은행에서 웰스파고은행으로 변경한다는 것. 갑작스런 은행 계좌 변경이 의아했지만, 연락을 주고받던 거래처의 e메일이 맞기 때문에 별도의 확인 없이 송금을 결정했다. 주거래은행인 B은행 일산금융센터를 통해 8만8000달러를 11월9일 송금했다. 은행에서도 미국 수취인 명의와 계좌 소유주가 동일했기 때문에 평소처럼 사전송금방식 통관수입 대금지급 명목으로 송금했다.
얼마 뒤 A씨는 거래처로부터 “수입대금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e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A씨는 “e메일을 받고 변경된 계좌번호로 송금했다"고 했지만, "우리 회사 계좌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수사기관에 의뢰한 후 A씨는 불특정 다수인을 노린 피싱(phishing)이 아니라 스피어 피싱(spear-phishing)’에 당한 것을 깨달았다. 스피어 피싱은 특정인의 정보를 캐내기 위한 피싱 공격을 뜻하는 말로 작살낚시(spearfishing)를 빗댄 말이다.
[사진=무역협회] |
11일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에 따르면 스피어 피싱 사기범은 A씨의 회사가 사용하는 e메일을 해킹해 계정정보를 손에 넣었다. 시간이 지난 뒤 e메일에서 물품 주문사실 등이 파악되자 해외에 개설된 사기계좌로 송금을 요청하는 허위 메일을 보냈다. 이 허위 메일에 A씨와 회사가 속은 것이다.
스피어 피싱 사기범들은 거래하던 해외기업을 사칭해 e메일을 보내기 때문에 기업이 쉽게 속는다는 점을 노렸다. A씨가 당한 것처럼 단골 해외 수출업체를 사칭해 국내 수입기업에 ‘이번만’ 평소와 다른 계좌로 대금을 지불하라고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들의 또 다른 사기수법은 해외 거래처 구매 담당자의 e메일과 비슷한 계정을 사용하는 경우다. e메일을 몇 번 주고 받아 거래처 담당자로 믿게 만든 다음 계좌 정보가 바뀌었다는 메일을 보낸다. 동시에 계좌 변경 요청서 스캔본과 하드카피 우편물까지 회사로 보내 송금하게 유도한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모 수사관은 “보안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상당수 e메일 해킹을 통한 피싱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전했다.
e메일 해킹에 당한 피해 사례 |
보안이 취약하다면 해외 거래처에 확인 작업을 철저히 해야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 또, 사기범들의 치밀한 계획에는 속수무책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스피어 피싱 사기범들은 e메일을 정교하게 조작해 혼동을 일으킨다. 가령 원래 거래처의 메일주소가 ‘susanlee@gmail.com’였다면, 사기범들이 보낸 은행계좌 변경 요청 메일 주소는 ‘susanleee@gmail.com’으로 아이디 끝자리에 ‘e’ 한글자만 추가한다. 아이디 알파벳 순서를 교묘하게 변경해 ‘susnalee@gmail.com’로 ‘n’과 ‘a’의 위치를 바꾼다.
또 다른 방법은 지메일, 핫메일 계정을 상용해 거래처 이름과 유사한 메일 주소를 만드는 경우다. 가령 미국 농산물 거래업체의 수출 담당자 주소가 Elee@usafood.com이었다면 사기범들은 ‘Elee.usafood.com@gmail’로 교묘하게 속인다. 지메일 등 대형포털사 서버보다 개별 보안서버를 가진 기업을 해킹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e메일 해킹 등을 이용한 해외송금 사기가 늘어나자 은행들도 주의를 당부하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해외송금서비스 이용약관’에 △ e메일로 전달받은 해외계좌정보는 반드시 전화 등의 방법을 통하여 계좌정상여부 등을 확인할 것 △ 수취인의 계좌번호 변경 요청이 있거나, 수취인과 수취은행의 소재국이 다른 경우 더욱 주의 바란다는 내용을 넣고 있다. 이는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물론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들도 시행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가 발생하면 즉시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182, www.ctrc.go.kr)에 신고해 달라”며 “국내 계좌로 송금했을 경우 금감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1332) 또는 금융회사 콜센터로 전화해 지급정지 요청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hkj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