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기반 맞춤형 속옷 브랜드 '소울부스터'
박수영 대표 "여성이 주인인 속옷 목표"
[뉴스핌=최유리 기자] "왜 남자친구나 남편을 위한 속옷을 고르죠? 평생 가장 오래 입는 옷인데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 하지 않나요?"
박수영(31) 소울부스터 대표는 당차게 물었다. 겉옷으로 감춰지는 시간이 훨씬 많은 속옷이지만 옷 자체의 화려한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게 부지기수다. 내가 입는 옷이 아닌 남에게 보여주는 옷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다. 예쁜 몸을 생각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가슴 성형이나 큰 패드만 떠올리지 몸에 꼭 맞는 속옷을 해결책으로 보진 않는다.
'예쁜 몸을 위해 입는 속옷'을 만들고자 박 대표는 직접 나섰다. 이를 위해 20대 끝자락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성형외과를 뒤졌다. 200여 개 봉제공장을 찾아 발로 뛰기도 했다. 그에게 영혼(Soul)까지 자신감을 불어넣는 맞춤형 속옷 서비스 '소울부스터' 창업기를 들어봤다.
◆ 회계사 그만두고 창업…CEO 오디션으로 선발
박수영 소울부스터 대표 <사진=소울부스터> |
박 대표의 첫 직장은 회계법인의 인수·합병(M&A)팀이었다. 특정 기업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사업을 물색하는 작업이었다.
"케이블TV 업체의 수익다각화를 위해 콘텐츠에 투자해야 한다고 봤어요. 당시 '이끼'라는 웹툰이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웹툰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콘텐츠를 플랫폼에 실을 수 있을뿐 아니라 2차 저작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엔터테인먼트 회사 쪽에는 중국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초 화장품 제조를 제안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런 게 되겠냐"는 싸늘한 반응만 돌아왔다. 보수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한계를 느낀 박 대표는 29세 12월에 사표를 던졌다. 직접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뒀다는 소식에 집에서 당장 나가라는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회계장부를 자동화하는 사업에 뛰어들어도 보고 온·오프라인 연계(O2O) 회사인 옐로모바일 패션사업부에서 경험을 쌓기도 했다.
두 번째 도전에는 좀 더 안정된 발판이 필요했다. 박 대표가 스타트업 지주회사인 패스트트랙아시아의 최고경영자(CEO) 프로그램에 도전장을 낸 이유다. 일종의 공개 오디션처럼 창업가를 발굴해 투자와 팀 구성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CEO 프로그램에 선발된 박 대표의 사업 아이템은 '패션'이었다. 의류브랜드 매장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경험을 녹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성들이 체형에 어울리는 옷을 찾아 똑같은 패턴의 쇼핑만 한다는 점에 착안해 몸을 보정할 수 있는 속옷으로 초점을 맞췄다.
◆ 성형외과부터 트랜스젠더까지 찾아…모듈형 생산으로 '승부'
여성의 몸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주위 여성들을 인터뷰해 봤지만 생각보다 자신의 몸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박 대표가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까지 뒤진 이유다.
이를 통해 가슴 구조를 알 수 있는 16개 질문을 만들었다. 가슴을 X, Y, Z축으로 나누고 3차원 구조를 파악하는 내용이었다. '밑가슴 둘레는 얼마인지?', '몸통 중심과 가슴 시작점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식의 질문에 실시간 채팅창도 더했다. 답을 토대로 속옷은 1152가지 패턴으로 분류된다. 가슴 구조에 따라 패드의 크기만이 아니라 위치나 각도 등이 달라진다. 맞춤형 브래지어 가격은 4만5800원으로 균일화했다.
문제는 생산 공장 확보였다. 그간 대량 생산에 집중해온 공장들은 다품종 소량 생산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200개가 넘는 공장을 알아봤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앙한 패턴의 속옷을 만들어봤자 모두 재고더미가 될 것이라고 봤던거죠. 그래서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는 모듈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브래지어 컵, 날개 등을 미리 만들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조립해서 배송하는 방식이죠. 모듈 방식으로 6개월 만에 공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영 소울부스터 대표 <사진=소울부스터> |
◆ 입소문으로 남성 구매자도 생겨…빅데이터로 종합 의류 목표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었다. 지난 5월 서비스를 론칭하고 소비자 반응이 돌아왔다. 20~30대를 공략한 서비스였지만 40~50대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입소문을 통해 엄마와 자매에게 추천을 받은 고객들이었다. 재구매율도 높았다.
"소울부스터 제품을 입은 날은 남자친구가 겉모습만 보고 왠지 달라보인다고 했다는 후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재구매를 하기도 했고요. 사업을 반대했던 깐깐한 어머니조차 '입을 만한 것을 만들었구나'라며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했죠."
지금까진 5만 여명의 데이터를 확보한 소울데이터는 내년 30만명으로 범주를 확대하는 게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신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종합 의류 브랜드를 내세웠다.
"여성들은 예쁜 가슴을 위해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속옷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요. 몸에 더 집중하면 훨씬 편안하면서도 몸매가 예뻐보이는 속옥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앞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속옷을 입었으면 좋겠어요."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