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 소녀들'이 각종 논란에 휩싸인 후 포맷 변경에 들어갔다. <사진=JTBC '잘 먹는 소녀들' 홈페이지> |
[뉴스핌=이지은 기자] 방송 단 2회 만에 온갖 논란에 휩싸였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걸그룹 아이돌 멤버들을 데리고 ‘먹는 방송’을 펼쳤다. 그 결과 프로그램 이름부터 내용까지, 모든 포맷을 변경하는 처지에 놓였다. 좋은 말로 포장한다면 포맷 변경이지만, 현실 그대로 본다면 사실상 폐지라는 말이 맞다.
지난달 29일 첫 방송한 JTBC ‘잘 먹는 소녀들’이 사면초가다. 매일 밤 야식의 유혹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해 걸그룹이 직접 야식을 골라주는 기획 의도가 처음엔 신선했다. 내로라하는 아이돌 레드벨벳, 트와이스, 에이핑크, 시크릿, 나인뮤지스, 구구단, 오마이걸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생중계로 아이돌의 먹방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걸그룹을 내세워 호기롭게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단 2회 만에 ‘푸드 포르노’ ‘관음증’이라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말을 듣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이유가 뭘까.
우선 걸그룹 멤버 8명이 수많은 남성 방청객에게 둘러싸여 음식을 먹는 구조가 불편하다는 불만이 많다. 예쁘게 먹는 것을 포기하고 누구보다 많이, 맛있게 먹어야 하는 프로그램 원칙이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푸드 포르노 논란에 불을 지핀 '잘 먹는 소녀들' 방송 자막 <사진=JTBC '잘 먹는 소녀들' 캡처> |
‘잘 먹는 소녀’들은 먹방의 기본인 음식 맛 표현을 배제한다. 먹을 때도 방청객을 바라보며 섹시하거나 귀여운 표정을 지어야 하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없다. 제작진은 멤버들이 먹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거나, 입술 쪽을 확대한다. 양념을 빨아 먹는 입술의 소리를 강조한다. 이어 ‘닭발 먹고 섹시해진 입술’ 등 자극적인 자막을 더하며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참가자들은 음식을 먹으며 탄성을 내지르고, 방송에서는 이런 사운드를 강조한다. 결국엔 ‘푸드 포르노’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더욱이 패널들은 “예쁘게 먹어라” “빨리 먹어라”며 갖은 요구까지 한다. 새벽이 넘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녹화에서 걸그룹은 그저 먹기만 해야 되다보니 일각에서는 가학적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먹방의 승자를 문자 투표로 가리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평가기준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문자 투표가 가능하냐는 게 시청자 불만이다.
그러다보니 팬덤의 경쟁을 자연스레 부추기는 꼴이 됐다. 물론 제작진도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막기 위해 심사위원과 패널의 평가도 승부에 반영했다. 어차피 판정단 점수를 따로 매길 계획이었으면 굳이 시청자 투표를 할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뭣보다 모든 논란이 단 2회 만에 불거졌단 점이 뼈아프다. 심각성을 느낀 JTBC는 프로그램 포맷 변경에 나섰다. 말이 좋아 포맷 변경이지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다. 이와 관련해 성치경 PD는 “지금 포맷을 변경하기 위해 회의 중이다. 포맷이 변경되기 때문에 생중계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될지 고민 중이다.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애매하다”며 말을 아꼈다.
'잘 먹는 소녀들' 방송에서 문제가 된 장면들 <사진=JTBC '잘 먹는 소녀들' 캡처> |
가요 업계 관계자들도 ‘잘 먹는 소녀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 관계자는 “방송을 보니 안 좋은 얘기가 나오는 게 이해가 간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소속사들은 가수들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안 좋은 의견이 많다 보니 제작진이 이를 수렴해 포맷을 변경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이돌이 참가한 ‘먹방’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이번 논란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상당수의 팬덤도 이미 등을 돌렸다. 프로그램 이름부터 편성시간까지 변경했고 먹방, 생중계를 포기하는 등 2주 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잘 먹는 소녀들'의 추후 방송 날짜도 잡히지 않았다. 뭐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는 셈이다. ‘걸그룹을 가학한다’ ‘관음증 프로그램’ ‘푸드 포르노’라는 굴욕적인 말에 시달린 ‘잘 먹는 소녀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