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공시 후 주가 급등…일부기업 악용해 개미 피해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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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정탁윤 이보람 기자] 주식시장에 때 아닌 '백지공시' 바람이 불고 있다. '계약상대방의 영업비밀 보호요청'을 이유로 계약 상대방과 계약금액을 빈 칸으로 남겨둔채 내보내는 공시가 잇따른다.
해당기업 공시담당자에게 전화로 물었다. "뭐 이런 공시가 있어요? 주가는 최근 급등세인데 계약대상과 규모는 없고, 뜬구름 잡는 소문만 돌고..."
이에 해당기업 공시담당자는 "오늘 P.O(Purchase 0rder, 구매주문서)를 받았는데, 계약 금액이 매출액의 10%를 넘으면 즉시 공시하도록 돼 있는 공시 규정(코스닥시장 공시규정 제 6조)을 따랐을 뿐입니다. 만약 다음날까지도 공시를 하지 않으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 때문에 규정대로 한 것입니다.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공시한 대로 계약 상대방의 요청에 의해 밝힐 수가 없어요."
공시담당자는 기자 외에도 개인 투자자들 문의 전화가 너무 많아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식시장에서 이 같은 '백지 공시'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지공시는 거래 상대방과의 계약 내용, 계약 금액 등 주요 항목을 빈칸으로 두고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 장비 업체인 엘오티베큠은 지난 6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조 장비 공급 계약 공시를 했다. 계약금액과 계약 상대방을 알리지 않은 백지공시였다. 다음 날 엘오티베큠의 주가는 16% 넘게 급등했다.
OLED 관련 업체인 영우디에스피 역시 지난 달 1일과 30일 잇따라 백지공시를 했다. 그 기간 1만1000원대이던 주가는 1만6000원대로 50% 가까이 올랐다.
반도체 공정 검사장비 및 의료진단용 분석기기 제조업체인 케이맥도 5월 30일, 지난달 15일, 24일 세 차례나 백지공시를 했다. 8000원대이던 주가는 1만원을 넘어버렸다.
백지공시가 곧 주가 급등으로 이어지다 보니 일부 투자자들중에는 백지공시 재료를 무조건 호재로 믿고 투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계약금액이 역대 최대라더라..", "상대기업이 글로벌 기업 A기업이라더라.."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현혹되기도 한다.
한 개인투자자는 "아무리 규정대로 하는 것이라지만 개미 입장에선 정보 비대칭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공시유보 기한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백지공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공시제도는 계약 상대방의 요청이나 영업기밀 등의 이유로 공시유보를 허용한다. 백지공시를 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을'인 중소기업인데, '갑'인 대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회사의 생존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상장사의 한 관계자는 "백지공시는 대부분 글로벌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대기업들의 영업비밀 요청에 의한 것"이라며 "특정 기술이나 계약 단가 등이 공개될 경우 거래하는 대기업과 납품 관계가 끊길 수 있기 때문에 요청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간혹 백지공시를 주가 부양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보가 적은 개미 투자자들의 막연한 추측성 매매가 손실로 이어질 수 있으니 제도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간혹 실적이 나쁜 기업이나 테마주가 백지공시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띄울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백지공시했을때 매매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증권시장 제도라는 것이 투자자와 상장된 기업 양 당사자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는데 중소기업은 을의 입장인 경우가 많아 그런 점을 고려해 주는 것"이라며 "공시할때 '블랭크(공백)' 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계약기간이 끝나면 정정공시를 통해 밝혀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정탁윤 기자 (tack@newspim.co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