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를 통해 또 한 번 한계를 뛰어넘은 배우 김민희. <사진=이형석 사진기자> |
[뉴스핌=장주연 기자] ‘CF 스타’라는 단어가 있다. 활자 그대로 광고를 찍는 연예인들을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이 단어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본업인 연기가 아닌 CF‘로’만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을 꼬집을 때 쓰는 것. 대표적인 케이스가 여전히 대표작이 ‘아저씨’에 멈춘 배우 원빈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배우에서 ‘CF 스타’로 불리고 있다. 반면 역으로 ‘CF 스타’에서 진짜 배우로 거듭난 이들도 있다. 매 순간 따라다니던 ‘발연기’ 족쇄를 벗고 충무로 캐스팅 일 순위로 떠오른 배우, 김민희가 그렇다.
◆‘CF 스타’에서 ‘충무로 1순위 배우’로…흥행 보증 수표가 된 김민희·전지현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된 김민희는 1998년 모델로 발탁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 CF·잡지 등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연기를 시작한 건 이듬해 KBS 2TV 드라마 ‘학교2’를 통해서다. 그러나 연기자로서 시작이 순탄치는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보는 이까지 민망해지는 어색한 연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대중은 그런 김민희를 배우가 아닌 ‘CF 스타’ 혹은 ‘패셔니스타’라고 불렀다.
하지만 김민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고, 2006년 마침내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잡았다. 스스로도 연기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으로 꼽는 ‘굿바이 솔로’가 전환점이 됐다. 김민희는 이 드라마로 자신만의 연기 색깔을 찾았고 이내 활동 반경을 스크린으로 넓혔다. 이후 주 무대를 영화로 옮긴 그는 ‘뜨거운 것이 좋아’로 배우로서 가치를 재증명했다. 당시 김민희는 부산영평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대중은 ‘배우 김민희’에게 주목했고 거물급 감독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그렇게 김민희는 변영주 감독의 ‘화차’,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 이정범 감독의 ‘우는 남자’,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특히 ‘화차’에서 보여준 열연은 관객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실제 김민희의 연기에 극찬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 김민희의 이름 앞에는 CF스타 대신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연기 색깔은 뚜렷해졌고 소화할 수 있는 장르는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아가씨’로 박찬욱 월드까지 입성,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았다. 극중 히데코 열연한 김민희는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인생 연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출산 후 다시 복귀 시동을 건 배우 전지현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김민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이도 있다. 지난달 배우 이민호와의 드라마 출연 소식을 알리며 화제를 모은 전지현이다. 지금이야 작품을 내놓는 족족 히트시키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지만, 사실 그에게도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민망한(?) 시절이 있었다. 1997년 패션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전지현은 1998년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를 통해 곧바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유명세를 치른 건 드라마가 아닌 한 프린터 광고였다. 이 CF로 전지현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 기세를 몰아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출연했고, 전지현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자유로우면서도 발랄한 이미지는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전지현은 이를 무기로 다양한 광고와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력과 연기력이 점점 반비례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질타가 쏟아졌고, 전지현은 ‘본업이 CF 스타’라고 불리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본인 역시 과거 한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해 “‘CF 스타다’ ‘연기력 부족하다’는 말 들을 때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암울했던 시기였다.
그런 전지현이 배우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다. 지난 2012년 영화 ‘도둑들’에서 예상치 못한 활약을 펼치면서 관객의 시선을 빼앗은 것. 멀티캐스팅에도 불구,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급기야 영화 ‘베를린’ ‘암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등을 통해 액션부터 섬세한 감정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미지가 아닌 오롯이 연기력으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운이 트였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성적도 좋았다. 대중이 그를 배우로 인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영화 '언니가 간다' 에 출연한 배우 고소영(위)과 '하울링'에 출연한 이나영 <사진=시네마서비스·CJ엔터테인먼트> |
◆‘CF 스타’라고 쓰고 ‘15초 배우’라고 읽는다…보고싶은 언니들 고소영·이나영
앞서 언급한 원빈처럼 배우에서 단순 CF 스타로 전락해 버린 충무로 ‘언니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소영이다. 고소영은 지난 2007년 영화 ‘언니가 간다’와 드라마 ‘푸른 물고기’를 연이어 선보였다. 결과는 흥행 참패. 이후 고소영은 연기를 멈추고 오로지 광고를 통해서만 대중을 만났다. 9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 앞에는 ‘15초 배우’라는 웃픈 별칭까지 생겼다.
쉬는 동안 결혼과 출산(고소영은 지난 2010년 배우 장동건과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이라는 큰일을 겪었지만, 이를 감안해도 결코 짧은 공백 기간이 아니다.
이나영도 마찬가지다. 2012년부터 잠정적 휴업(?)에 돌입한 이나영은 남편 원빈 못지않게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인기 배우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얼굴을 본 기억은 꽤 오래전이다. 실제 드라마는 2010년에 방영된 ‘도망자 플랜B’가, 상업 영화는 2012년 개봉한 ‘하울링’이 마지막이다.
물론 이나영의 경우 지난해 3월 단편영화 ‘슬픈 씬’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창간 10주년을 맞은 한 패션지와 KT&G 상상마당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의 일환으로 그의 연기를 보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갈증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이나영은 그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영화 ‘아는 여자’ 등을 통해 특유의 신비로운 매력과 연기를 보여줬던 터라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배우에서 CF 스타가 돼버린 이들이 최근 복귀의 뜻을 내비쳤다는 데 있다. 출산 후 CF 촬영으로 몸을 푼 이나영은 현재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복귀작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영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킹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차기작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좋은 작품이면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고 출연할 계획이라는 게 소속사의 입장이다.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