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배군득 기자] ‘침묵, 눈물, 회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저녁 대우그룹 창립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동안 보였던 모습들이다. 김 전 회장은 두 귀에 보청기를 끼고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행사장에 입장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젊은 시절 세계를 호령했던 대우그룹 총수의 날카로움이 살아있었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 맨 앞자리인 11번 테이블에 앉아 옛 대우맨들의 회한과 눈물을 함께 나눴다. 특별히 기념사나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언급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행사 도중 ‘마이웨이(My WaY)’ 노래가 흘러나오자 무표정이던 그의 얼굴에 눈시울이 불거지며 감정에 북받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마 지난 1998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패망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자신의 길을 돌아보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김 전 회장에게 마이웨이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현재 베트남에서 청년 사업가 양성에 매진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경영 총수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메시지를 수많은 청년들에게 던졌던 그가 결국 재야에서 청년을 위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대우 정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400여명의 옛 대우맨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에도 마음은 아직도 대우와 함께 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가득했다.
이번 창립 45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대우는 왜?’라는 책 역시 이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분노 등이 함축돼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2일 창립 45주년 기념식 도중 `마이웨이` 노래가 흐르자 눈을 감고 경청하고 있다. <사진=김학선 기자> |
이 책은 지난 1967년 대우실업 설립부터 그룹 해체까지 대우가 만들어낸 각종 기록과 해외시장 개척에 얽힌 얘기들이 담겨 있다. 옥포조선소 준공, 1992년 북한 방문기, 리비아 사막 비행장 건설, 가전사업 진출 등 해외사업 도전기와 폴란드 자동차 사업 실패 등 좌절한 사례도 수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화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왜 대우가 해체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대우맨들의 회고다.
대우맨들은 “대우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만든 것은 정부의 인위적 개입”이라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대우그룹 해체 당시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마지막 그룹 구조조정 본부장 대행 김우일(현 대우M&A 대표)씨는 “대우그룹 해체시 김우중 회장과 당시 이를 주도했던 이헌재 금감위원장 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였다”고 증언했다.
최근 한 매체를 통해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이 발언한 ‘대우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라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부분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정부는 당시 구조조정을 부채비율 200%로 맞추도록 압박을 강요했고 이행치 못할 경우 퇴출시키는 강수를 뒀다. 대우는 팔수 있는 것은 다 내놓았다. 대우전자, 대우통신, 경남기업, 대우정밀, 대우부품 등 모든 계열사와 부동산, 주식 모두를 내줬다.
그러나 이를 사줄 바이어는 외국펀드와 국내 대기업 두 곳 밖에 없었다. 이 두군데 모두 대우를 농락하기 시작했다. 알짜배기는 인수하고 다른 것은 쳐다보지 않는 전략이었다. 얼른 대우가 망하기를 바라는 전략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자유시장 주의를 천명하며 수수방관했고 결국 그룹이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정부는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김우중 전 회장은 현재 베트남에서 청년사업가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그가 청년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김학선 기자> |
비단 김우일씨만이 아니다. 이날 창립 기념식 참석자 가운데 김우일씨와 같이 마지막 대우그룹에 몸담았던 몇몇 대우맨들은 당시 구조조정이 해체할 수준까지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태도를 취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유를 지금에 와서 논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이미 지난일을 되돌릴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우중 전 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수많은 대우맨들보다 김 전 회장의 마음이 가장 고통스러울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과 상처를 묻고 오로지 앞으로 나가기 위한 노익장을 내뿜고 있다.
그가 앞으로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실패한 경영자나 대우그룹 신화의 주역이 아닌 자신의 길을 걷는,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신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우중 전 회장의 남은 사업이 성공하길 바라는 것은 예전의 대우의 열정이 그리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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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배군득 기자 (lob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