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현지 생산 확대는 기본…소재 수입선 다변화도 병행
유럽시장 투자 확대 '플랜B' 가동…지역 편중 리스크 분산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발 관세 전쟁에 따라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해서다. 다음달 3일부터는 150개 자동차 부품에도 관세가 적용된다.
배터리 산업은 직접적인 관세 부과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 등 해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배터리 물량이 존재하고, 배터리 셀 소재를 중국 등에서 일부 수입하기 때문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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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제공] |
◆트럼프發 25% 관세 폭탄…K-배터리 셀 원가 '직격탄' 우려
10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배터리 기업들은 25% 고율 관세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산업은 아직 직접적인 관세 부과 영향권에 들지 않았다. 국내 주요 업체들이 미국 현지에 배터리 생산 시설을 두고 있어서다. 다만, 유럽 등 해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배터리 물량이 존재하고, 배터리 셀 소재를 중국 등에서 일부 수입하기 때문에 영향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배터리 소재의 경우 별다른 대안이 없다. 배터리 셀 제조에 필수적인 원재료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극재의 경우 원재료인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을 미국에서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주요 소재는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LG화학 등 국내 기업이 한국 내 생산 시설을 통해 수출 형태로 미국 배터리 공장에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극재는 배터리 가격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지난 2023년 대미 수출 규모는 29억3000만 달러(약 4조3000억원) 수준이었다.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흑연의 경우 상황이 더욱 제한적이다. 전 세계 생산량 90% 이상이 중국에 집중돼 있고, 국내 배터리 업체들 역시 중국산 흑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게다가 미국 내에는 흑연 정제 및 가공 인프라가 부족해 단기간 내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 소재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의 생산 원가가 직접적으로 상승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IM증권에 따르면 향후 한국에서 공급되는 양극재, 음극재 등에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의 생산원가는 약 15% 상승될 것으로 추정된다.
정원석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현지에 대규모 배터리 셀 생산 라인을 보유한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의 제조원가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단 美 현지화 전략…"유럽 병행 전략도 가속"
결국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 외에 뾰족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일단 미국 현지 생산을 바탕으로 관세 리스크에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세 곳의 회사는 미국에만 500GWh(기가와트시) 이상의 생산라인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할 방법이 현지 생산과 조립뿐인 만큼 현지 생산 비중 확대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유지되는 한 첨단 제조 생산세액공제(AMPC)에 따른 보조금 혜택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현지 생산 확대 배경으로 거론된다.
국내 1위 배터리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합작공장(JV)을 포함해 미국 내 총 7개의 공장을 운영하거나 건설 중이다. 미시간 홀랜드 단독공장과 오하이오 얼티엄셀즈 1공장, 테네시 얼티엄셀즈 2공장 등은 이미 가동 중이며 조지아 현대차 합작공장, 오하이오 혼다 합작공장, 미시간 랜싱 단독공장, 애리조나 단독공장 등은 건설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신규 공장 증설보다는 기존 공장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리밸런싱 전략을 택했다. 이미 투자된 자산을 최적화된 생산 거점에서 최대한 활용해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침이다. GM과 세 번째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 3기를 단독 공장으로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삼성SDI는 지난해 12월부터 인디애나주에서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스텔란티스와의 두 번째 합작공장,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공장 프로젝트 역시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삼성SDI가 오는 2027년부터 관세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배경이다.
SK온 역시 미국 조지아주에 2개의 단독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일부 라인은 현대차용으로 전환해 맞춤화해 생산 유연성을 높이고 있다.
배터리 3사는 미국 현지화 전략이 IRA 보조금 확보와 관세 리스크 완화에 실질적인 대응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시장에만 집중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방향과 지속 여부가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로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 요건을 충족한 제품에 한해 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현지 생산 비중 확대는 미국 시장 내 가격 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라며 "당장은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긴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정책이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현재 결정이 오히려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배터리 3사는 유럽 시장 경쟁력 강화도 병행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리스크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위험 요소"라며 "북미 현지화는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유럽 시장에 대한 장기적 투자와 파트너십 확대도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게 전략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