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 휴머노이드 기술의 초기 단계로 부상
삼성·LG전자, 후발주자로서 차별화 전략 모색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팔다리만 붙이면 로봇이죠."
서울 영등포의 한 가전양판점 직원은 로봇청소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단순한 청소 기계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라이다(LiDAR), 카메라, 자율주행 알고리즘이 들어간 로봇청소기는 사실상 '휴머노이드 로봇'의 초기 형태다. 외형은 납작하지만 기술은 인간형 로봇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 휴머노이드 로봇도 결국 '공간을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구조다. 지금의 로청에 팔다리만 더해지면 곧바로 그런 로봇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로봇청소기는 미래 로봇 시대의 테스트베드이자 초기형 기기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시장의 주도권은 단순한 생활가전 경쟁을 넘어 향후 로봇 플랫폼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납작한 로봇청소기 이후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등장했다. 노르웨이의 로봇 스타트업 1X 테크놀로지스는 인간형 로봇 '네오 감마(Neo Gamma)'를 올해 수백에서 수천 가구에 시범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로봇은 청소기 돌리기, 세탁 바구니 옮기기, 차 우려주기, 식자재 운반과 조리 보조 등 기본적인 가사노동을 수행한다.
![]() |
노르웨이의 로봇 스타트업 1X 테크놀로지스는 인간형 로봇 '네오 감마(Neo Gamma)'. [사진=1X 홈페이지] |
이처럼 이미 세계는 '가정 내 로봇'의 현실화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으며, 로봇청소기는 그 진입로이자 형태상 가장 먼저 사람들 곁에 도착한 휴머노이드의 일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늦은 시장 진입은 단순히 점유율 경쟁에서 밀렸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글로벌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 중국 브랜드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관련 기술을 고도화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이 격차는 단순한 점유율 문제를 넘어 향후 휴머노이드 기술로 이어질 플랫폼 주도권 싸움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 |
김정인 산업부 기자 |
특히 로봇청소기가 집 안 구조를 정밀하게 인식하고 사용자 패턴을 학습해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움직이는 센서'로 진화하면서 '보안'은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기술 격차를 단순 성능 경쟁으로 좁히기 어려운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신뢰'를 중심으로 한 보안 역량을 핵심 전략으로 설정했다. 늦은 진입을 만회하려는 차원도 있지만 로봇이 일상 공간에 깊숙이 침투하는 시대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안전'과 '프라이버시'라는 기술 가치를 선점하려는 포석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보안 플랫폼 '녹스(Knox)'를 로봇청소기에도 적용해 모든 데이터를 암호화 처리하고 인공지능(AI) 연산 과정을 기기 내부에서만 수행하는 방식으로 안전성을 강화했다. LG전자는 'LG 표준 보안개발 프로세스(LG SDL)'를 적용해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외부의 불법적인 접근이나 유출로부터 철저히 방어하는 설계를 택했다.
AI, 자율주행, 공간 인식, 보안. 미래 휴머노이드를 구성할 핵심 기술이 이미 우리 거실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다. 로봇청소기라는 익숙한 가전은 이제 미래 로봇 기술의 시험장이자, 소비자 신뢰를 놓고 벌이는 조용한 전쟁터가 됐다. 지금 쌓는 기술력과 신뢰가 휴머노이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미래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후발주자인 삼성·LG전자가 보안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한 만회가 아니라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갈 시대를 준비하는 장기 전략인 셈이다.
kji01@newspim.com